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사연)  저는 30대 여자 직장인입니다. 저는 활발한데 다른 사람 눈치도 잘 보고, 예의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또 성격이 급하고 흥분을 잘 하는 면도 있어요. 감정 기복도 좀 있는 것 같고요. 잘 지내는 사람들과는 매우 가깝게 잘 지내지만, 내향인이라 그런지 정말 소수의 사람만 내 사람으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 외에는 나쁘지만 않게 지내려고 하는데, 친해지면 잘해 줘야지 하는 생각에 주변에 사람을 많이 만들지 않고, 만들지도 못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 속상한 일이 있었어요. 제가 일대일 운동 코칭을 받는데, 선생님이 매번 약속 시간보다 5분 정도 늦으세요. 약속 시간을 다르게 해도 항상 5분 늦으셔서 약속 시간의 문제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늦을 수 있다 생각은 하지만 이에 대해 사과하거나 양해도 구하지 않는 게 속상해요. 그런데 더 속상한 건 제가 일찍 와서 보면 선생님이 제 약속 시간까지 제 코칭 시간 이전 타임의 회원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제 다음 시간대 회원은 제가 수업을 마치자마자 5분 일찍 수업을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말하기는 좀 그런데 같은 돈을 내고도 똑같이 대우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식단 사진을 보내 주는 것도 심할 때는 반나절이 지나서야 대답을 해 줍니다. 또 선생님이 운동 코칭을 해 줄 때도 잘 못 따라 하니 답답해하거나, 굳은 표정으로 화난 듯이 말하고, 운동이 힘들어 “힘들다”, “아이고” 이런 소리를 냈는데 “운동하는데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네요.”라고 하는데… 무시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날은 울었어요. 

이전에는 선생님과 친해지려고 말도 걸고, 선생님이 아프다고 해서 선물도 보내고, 선생님께 뭔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제 나름대로 액션을 취했는데도 친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제 마음이 무시당한 느낌이 듭니다.

상대의 마음까지는 제가 어쩔 수 없겠지만, 이런 일로 속상하다고 주변에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운동만 해라.”, “너도 말하지 마라.”, “그냥 무시해라.”, “5분 정도 늦을 수도 있지. 네가 예민한 것 같다.”라는 조언을 들려주는데, 선생님의 태도에 화가 나고 속상해하는 제가 정말 예민한 걸까요? 제 마음은 선생님이 단순히 수업 시간에 5분 늦은 것보다 다른 사람한테 대하는 태도와 저한테 대하는 모습이 많이 다른 것 같아 속상하고, 무시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거거든요.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제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걸 보면 제가 예민한 걸까요? 대체 예민하다는 건 기준이 뭘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께서 올려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최근에 운동 코칭을 받고 계신 와중에 속상한 일이 있으셨네요. 운동 코칭을 받는 중에 선생님께서 자꾸 약속 시간에 늦거나, 문자 답변도 많이 지체되고, 친절하게 대해 주기보다 때때로 사연자님께서 무안함과 무시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선생님의 말이나 표정에서 속상하고 아쉬운 점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상대로부터 무시받는다고 느껴지거나 그런 대우를 받으면 속상하거나 화가 날 수 있습니다. 감정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습니다. 또 주관적인 것이기도 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사람들 기준에 비추어 평가받거나 그릇된 것으로 규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상대로부터 나름 그렇게 느낄 만한 이유가 있으셨다고 생각되네요. 

그렇게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을 품고 계속해서 담당 선생님께 운동 코칭을 받는다면, 운동에 집중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요, 사실 약속 시간에 한두 번 혹은 가끔씩도 아니고, 자주 늦거나 정해진 수업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은 수업료를 내고 코칭을 받는 회원으로서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런 사항에 대해 마음속으로 불만을 쌓기보다는 센터 관리자나 선생님께 말씀하셔서 정해진 시간을 준수해 줄 것을 요청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문자 답장이 늦어진다거나 선생님의 표정이나 말투가 좋지 않게 생각되는 것은, 사연자님을 코칭할 때마다 매번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건지, 아니면 어쩌다가 한두 번 그럴 때가 있는 건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만약 선생님께서 매번 그런 것이 아니고 가끔씩 혹은 어쩌다가 한 번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거라면, 선생님도 일하다 보면 그날따라 컨디션이나 기분이좋지 않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말이나 표정에 드러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 일할 때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거나 그로 인해 상대방이 불편감을 느낄 만큼 처신하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혹시 그날따라 선생님의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었나? 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너그럽게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죠. 아니면 장난치듯이 사연자님의 마음속 불만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회원님께서 운동이 힘들어서 “힘들다”, “아이고” 하는 소리를 냈을 때 선생님께서 “운동하는데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네요.”라고 답해서 무시받는 느낌이 들어 집에 돌아오셔서 울음이 날 만큼 속상하셨잖아요. 그럴 때 사연자님께서 정색하면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질 것 같아 참으셨을 테지만,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억울하셨을 것 같아요. 그럴 때는 가볍게 웃으면서 “너무 힘들어서 저도 모르게 말이 나오네요.”, “아이고, 선생님. 얼마나 힘들면 그러겠어요.”라고 가볍게 받아치는 거죠. 또 이렇게 사연자님도 재치 있게 응수하면 선생님도 그런 자신의 말들이 사연자님을 조금 불편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선생님이 사연자님을 대하는 태도가 매번 퉁명스럽거나 불친절하다면, 그것은 달리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당연히 회원을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센터 관리자를 통해 건의하거나 담당 선생님을 바꿔 보시는 것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시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조금 유연한 생각과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을 해 보실 것을 권유 드립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사연자님께서는 스스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잘 보고, 예의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편이며, 성격이 급하고 감정 기복도 좀 있는 편이라고 말씀해 주셨네요. 그리고 이번 일을 통해 스스로가 예민한 편인 건지 고민되고, 또 예민하다는 것의 기준은 뭔지 궁금하신 것 같아요. 우리가 타인의 언어나 표정, 행동 등을 잘 읽고 태도, 욕구, 의도 등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의사소통 기술 중 하나인데요, 이를 ‘대인 민감성’이라고 합니다. 대인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이를 잘 활용하면 배려 있거나 센스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너무 높으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타인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에도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거절에 민감하고, 타인의 의도를 비관적으로 해석하기도 하죠.

사연자님께서 이전에 선생님과 친해지려고 먼저 말도 걸고, 또 아플 때 선물도 보내 준 것은 정말 선생님과 친해지고 싶고, 걱정되는 마음에서였을 거예요. 충분히 선생님께 호의적인 태도로 호감을 표현하신 것이죠. 그런데도 생각만큼 친분이 쌓이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서로 성향이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요? 선생님이 사연자님을 무시해서라기보다 소위 ‘코드’가 맞지 않아서 쉽게 친해지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연자님께서 사연글의 서두에 적으신 것처럼, 지금처럼 ‘잘 지내는 사람들과는 매우 가깝게 지내는 것’에 포커스를 두시면 어떨까요. 모든 사람들과 꼭 어울려서 잘 지낼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 성향이 잘 맞지 않는 사람끼리는 초반에 잠시 친해져도 결국 그 관계가 오래가기도 힘들기 마련이고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좋아해 주고 아껴 주는 사람들과 편안하고 소중한 관계를 쌓아 가면 충분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생각보다 이런 작은 마음의 불편감을 느끼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너무 타인의 반응에 신경 쓰거나 마음속에 담아 둔다면 결국 힘들어지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에 사연자님께서도 작은 일들은 마음에 쌓아 두지 말고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도록 연습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주는 사회적 자극이나 신호에 너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적절히 반응하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신다면 좋겠네요. 또 이왕 시작하신 운동도 재미있게 꾸준히 해 나가셔서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매번 감사합니다. 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 "
    "너무 좋은 글이라는 걸 느끼고 담아갑니다. "
    "이런 글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