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제가 사는 집의 구조상 옆집과 앞집의 소음이 다 들립니다. 일상 대화 같은 것들이 생생하게 들리고, 이웃에서도 저희 집에서 나는 소음이 들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턴가 가족들과 대화할 때도 신경이 쓰여서 대화 내용보다는 이 말이 어떻게 들릴까 하는 생각부터 합니다.

그런데 저는 식당 같은 곳에 갈 때도, 옆 테이블에서 제가 하는 얘기를 들을까 신경이 쓰여 항상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합니다. 제가 말하는 게 어떻게 비추어질지 신경이 쓰이고, 저나 제 일행이 말을 하면 옆 테이블이건 이웃들이건 안 좋은 평가를 내릴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그런 기분을 갖고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최근에는 그런 생각 때문에 저 자신이나 가족 구성원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고, 자꾸 어떻게 비추어지고, 어떻게 들릴지 신경이 쓰여서 괴롭습니다.

제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현실에서 적용이 가능한 생각의 방법, 대처 방법 같은 게 있을지 궁금합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올려 주신 사연도 잘 읽어 보았습니다. 지금 살고 계신 집의 구조상 옆집이나 앞집의 소음이 다 들릴 정도라니 일상에서조차 불편한 점이 많으시리라 짐작됩니다. 

보통 집이라는 공간은 외부에서 활동하고 돌아와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또 당연히 프라이버시도 존중되어야 할 사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집의 구조적인 측면 때문에 이러한 점들이 잘 보호받지 못하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며 긴장을 이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가장 상징적인 장소가 바로 ‘나의 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집에서조차 ‘누군가 내가 하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많은 시간을 긴장감과 스트레스, 불안감에 시달리게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방음 문제로 인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을 받으실 정도로 불편하고 정신적으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으신다면, 실제적인 해결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방음 시공에 대해 고려해 보거나 가족들과 의논하여 비교적 방음이 잘되는 주거지로 이사하는 방법 등을 검토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데 사연자님께서는 비단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집에서만 이런 불편감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사연에 적어 주신 내용상으로는 외부 공간, 즉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며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용 공간(식당, 카페 등)에서도 유사한 불편감을 느끼고 계시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사연자님께서 누군가와 대화할 때 자신의 의견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평가되고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상당히 신경이 쓰인다고 말씀하셨듯이, 타인의 시선이나 비판에 많이 민감하신 편인 듯합니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만큼 타인의 시선이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배제한 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 과도하다 보면 나의 생각이나 감정, 욕구 등에 집중하기 힘들고, 외부의 시선이나 자극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을 실행할 때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해지는 어려움이 발생되기도 하죠.

특히,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를 예상할 때도 행여 스스로에 대해 안 좋은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과 염려가 많으신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더구나 “항상 그런 기분을 갖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그간 마음의 불편감이 상당하셨으리라 짐작됩니다.

사연자님께서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해지신 데는 선천적으로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기질적인 면이나 가정환경, 부모님의 양육 방식 및 대인관계 경험, 트라우마적 사건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연만을 통해 그 원인을 추적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여기서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이러한 요인들이 개인의 사회적 민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사연자님 자신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사회적 민감도를 낮추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만한 방법을 몇 가지 추천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누군가가 나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인지 왜곡’이 발생하기 쉽다는 점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셨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옆 테이블이나 식당 같은 데서 사연자님의 얘기를 들을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오로지 사연자님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상일 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며, 설령 그들이 사연자님의 이야기를 일부분 들었다고 해서 난생처음 보는 사연자님을 나쁘게 평가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만에 하나 사연자님께서 대화하는 극히 일부분을 듣고 사연자님을 안 좋게 평가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거나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상대의 좁은 식견이 문제이지, 사연자님께서 정말 그런 사람이라는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순간적인 평가가 사연자님의 삶에서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은 사연자님의 삶에 그 어떤 영향력도 끼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이러한 부분에 관한 걱정은 불필요한 감정적 소모가 되기 쉽습니다. 

즉, 실제적으로는 사연자님에 대한 낯선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가 비판적일 가능성은 굉장히 적을뿐더러, 설령 그들이 안 좋은 평가를 내렸다면 그것은 그들의 부정적이고 좁은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지 사연자님께서 정말 그런 사람이라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더불어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시선이나 평가는 사연자님의 삶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등, 타인의 시선에 대한 ‘왜곡된 신념’을 ‘합리적인 신념’으로 대체해 가는 연습은 사회적 민감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또 다른 추천할 만한 방법은, 사람들의 시점에 의해 관찰당하는 사연자님의 위치를 거꾸로 바꾸어 사연자님께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점과 위치를 바꾸어 보는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누군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평가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관찰당하는 쪽의 입장이라면 관찰자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연자님 자신을 더 이상 관찰당하는 위치가 아닌, 관찰하는 위치로 역할을 전환해 본다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한번 사람들의 표정이나 개성 있는 모습 등을 관찰해 보세요. 그중 마음속에 특정한 사람을 정해 놓고 나이는 몇 살일지, 어느 동네에 살지 등등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셔도 좋겠습니다. 

이렇게 나의 시점을 타인이 아니라 오로지 내게로 가져오는 연습을 통해 더 이상 스스로를 평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서도 훨씬 자유로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는 그 누구도 사연자님을 함부로 평가하도록 놔두지 마십시오.”라는 말씀을 끝으로 답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전문의 홈 가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