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가끔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듣기도 합니다. 주변 사람이 이런 말을 할 때면, 잠시 멈칫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설마 진짜 죽고 싶다는 뜻은 아니겠지.’라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이런 표현을 자주 하거나 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보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자살 충동은 종종 이런 별것 아닌 것 같은 표현을 통해 나타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띄게 우울해하거나 낯빛이 어두워진 경우만 아니라, 밝게 웃으면서 “그냥 살아서 뭐 하나 싶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늘 하던 대로 일하고, 대화하고, 인사하면서도 속으로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살은 어느 날 갑자기 충동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전부터 반복적인 우울감, 삶에 대한 회의, “나 같은 사람이 없어지는 게 낫겠다”라는 표현 등이 선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주변 사람이 먼저 변화의 징후를 알아차리고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역할을 전문용어로는 ‘게이트 키퍼(Gate keeper)’라고 부릅니다. 위기에 놓인 사람과 도움을 위한 자원 사이의 다리가 되어주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주변에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돕는 것이 좋습니다.
1. 그 사람의 말을 부정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그대로 들어주세요.
“그런 생각 하지 마”라는 말은 좋게 들리지만, 자칫하면 상대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태도는 “요즘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라는 식으로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2. 자살생각, 충동이나 시도에 관해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혹시 요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니?”라고 조심스러우면서도 분명하게 물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자살에 대해 직접 묻는다고 해서 그 생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을 통해 상대는 그런 생각을 해도 괜찮고,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에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혼자 두지 마세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세요.
자살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는 일단 그 사람을 혼자 두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담센터나 정신의학과에 함께 가거나, 가까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결해 주고, 109(자살예방상담전화)나 1577-0199(정신건강상담전화)로 전화를 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좋습니다. 도움을 받으러 가는 길을 동행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4.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도록 이야기해 주세요.
"위험한 생각이 들 때, 나한테 연락해도 돼. 언제든 괜찮아.”라고 말해주세요. 이런 따뜻한 한 마디가 자살 충동을 겪는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되어줍니다. 자살은 고립 속에서 일어나고, 반대로 타인과의 연결은 생명을 지키는 보호막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이런 역할을 하게 될 때는 자신이 너무 무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정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살충동을 느끼는 이들에게 우리가 내미는 손길은 ‘세상과의 유일한 연결고리’가 되어줍니다.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옆에 있어주는 누군가일 것입니다. 이해와 공감의 태도는 누군가의 마음을 돌이키는 힘이 있습니다.
또,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혹시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는 분이 있다면, 꼭 한 가지 기억하셨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느끼는 마음의 고통은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삶의 순간마다 포기하지 않고, 나를 지키기 위해 애써 왔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너무 애쓰고 노력하다 보니 마음이 잠시 힘을 잃고 쉬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나는 살아남은 사람이고,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온 사람입니다.
지금 느끼는 죽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의 힘든 상황을 벗어나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다른 표현일 수 있습니다. 죽음이 마치 그 길에 다다르는 가장 편하고 빠른 방법이라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지금의 고통이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나 가족, 또 자살예방 및 위기개입을 위한 전화상담, 정신과 전문의, 심리상담사 등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많은 곳이 있습니다. 소중한 삶을 지킬 수 있도록 필요한 도움을 꼭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이호선 원장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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