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했어요.

제가 동생을 낳아달라고 부모님께 엄청 때를 썼던 날 밤, 아버지가 친구네서 멍멍이 한 마리를 데리고 오셨죠.

저는 정말 동생이 생긴 것처럼 기뻤어요. 저에게만은 진짜 동생이었죠.

하지만 멍멍이는 서서히 약해졌고,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더니 결국 지난주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가족들도, 친구들도 다들 제가 멍멍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멍멍이가 떠난 이후 제가 느끼는 슬픔과 절망만큼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가족이 떠난 것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애완동물이 죽은 거니까요.

힘들어서, 힘들다고 표현하고 싶은데,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더 조심스러워지고, 마음은 계속 힘드네요.

 

사진_픽셀

 

A) 오랜 기간 반려 동물과 함께하다 보면, 언젠가 이별의 순간이 와요.

그리고 모든 이별이 순탄하지만은 않죠.

 

반려 동물과의 사별에 대한 문제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종종 언급되는 주제예요.

반려 동물과 함께하는 문화가 정착된 지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에,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일반적인 반려 동물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죠.

또 애완동물에서 반려 동물로 명칭이 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의 소유물에서 가족으로 반려 동물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한 것도 한몫 하고요.

 

먼저, 사람을 포함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동물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어요.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도움을 받거나, 주는 경우가 종종 있죠.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눈빛으로 고마움을 표현하거나 느낄 수 있어요.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감정을 주고받아야, 의미 있는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어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뇌는 포유류에게만 존재한다고 알려졌어요.

우리 근처에 있는 반려 동물 대부분이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포유동물인 것은 우연이 아니에요.

파충류, 갑각류, 어류 등은 본능 즉,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구성된 행동을 주로 하죠.

쉽게 말해서, 내가 힘들 때 그것을 알고 위로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포유류고, 그렇기 때문에 포유류 반려 동물과는 의미 있는 관계가 만들어져요.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 분이 겪는 고통은 당연해요.

의미 있는 관계가 끊어지면, 사람은 고통을 느끼니까요.

 

사진_픽사베이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너무 힘든 날, 집에 들어왔는데 멍멍이가 뛰어와 안기죠. 그리고 볼을 핥아요. 덕분에 난 기분이 좋아졌고, 멍멍이를 안아주죠.”

이런 추억은, 내 마음속에 멍멍이의 이미지를 만들어요.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하는 존재’ 이렇게요.

 

추억이 쌓일수록, 멍멍이의 이미지도 더 깊어지죠.

그러다 보면, 밖에서 힘든 일을 겪게 될 때 눈을 감고 멍멍이 생각을 하게 돼요.

멍멍이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좀 좋아지거든요.

이건 실제의 멍멍이가 와서 위로해 준 게 아니죠. 멍멍이는 집에 있잖아요.

우리 마음속에 있는 멍멍이의 이미지가 작동한 거예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니 멍멍이가 안겨서 위로해줘요. 마음속에 있는 멍멍이의 이미지는 한층 더 강해지겠죠.

즉, 의미 있는 관계는 내 마음속에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요.

사별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실제 멍멍이가 죽으면서, 내 마음속에 있는 이미지가 흔들리고, 사라지는 것이 예상되고, 또 점차 흐려지게 되기 때문이죠.

 

물론, 동물과의 관계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은 이런 개념이 좀 어색할 수 있어요.

하지만 위 예시의 ‘멍멍이’를 ‘막내 동생’으로 바꾸면 바로 이해가 되시겠죠.

사랑은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처럼, 동물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추측은 할 수 있죠.

 

‘누군가가 나를 기억한다면, 나는 영원히 사는 거야.’

이 말의 의미가 바로, 마음속 이미지에 대한 말이에요.

그러면, 질문자 분은 멍멍이를 완전히 잊으실 수 있으세요?

아시겠지만, 질문자 분은 멍멍이에 대한 기억을 잊으실 수 없어요. 불가능하죠.

즉 멍멍이와의 사별의 의미는, ‘다시 직접 볼 수는 없게 됐지만, 그 일부가 마음속에서 영원히 함께 하게 된 것’이에요.

 

사진_픽셀

 

하지만 동시에, 이제 멍멍이와의 관계 변화를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변화를 인정해야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기간을 정해 놓고 장례 행사를 하는 거예요.

‘이 기간 동안, 돌아가신 분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애도하자. 그리고 이 기간이 끝나면 다시 일도 하고, 취미활동도 하고, 사회생활도 하는 걸로 하고, 나 자신이 이것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못하게 하자.’

이런 내용이 담겨있는 사회적 약속이죠.

이 기간에 충실하다면, 그 이후 자신의 언행은 고인에게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되니, 개인으로서도 사회로서도 반드시 필요한 행사예요.

 

그래서 멍멍이와 이별을 인정하기 위한 자신만의 의식을 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멍멍이 사진 정리나, 이별 편지를 쓰는 것, 혹은 추억 상자에 멍멍이 용품을 모으는 것 등이요.

의식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촛불을 쓰는 것도 효과적이죠.

이런 의식을 하면서 실제로 만날 수 없는 사별을 인정하고, 의식이 끝난 뒤에는 마음속에서만 만나는 관계로 새로 약속하고 시작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눈으로 보이는 멍멍이에 집중하셨다면, 이제부터는 마음속에 있는 멍멍이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마음속 멍멍이가 너무 까탈스럽지 않기를 바랄게요.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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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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