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하도 속이 답답해서 질문합니다.

평소 어머니는 제가 게임을 할 때마다 게임중독이라며 잔소리를 합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냈는데, 며칠 전 WHO가 게임중독을 병으로 정의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보고 너는 게임중독자니 같이 치료를 받으러 가자고 하는 겁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계속 게임을 했었어요. 주로 MMORPG 였죠. 공부는 원래 관심도 없었고요.

하루에 짧게는 3-4시간, 주말이나 시험이 끝나면 밤을 새워서 했습니다. 게임 이벤트 기간에도 주로 밤을 새웠죠.

대학교는 그냥저냥 들어가서 휴학하고, 군대 가기 전에 왕창 하고 가려고 했던 것뿐이에요.

 

전 그냥 게임을 좋아하고 공부를 싫어해서 안 하는 것뿐인데, 이게 병이라니깐 너무 황당합니다.

원래 중독자들은 자기가 중독자인걸 모른다며, 알코올 중독자들도 술을 좋아하고 일을 싫어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어머니 말을 들으니, 그냥 답을 정해놓고 물어보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아니 제가 게임중독이면, 프로게이머들도 다 중독자 아닌가요?

 

사진_픽셀

 

A) ‘게임 중독’은 정신의학적으로 아직 논란이 있는 분야입니다.

의학적 논란이 이렇게 일반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흔치는 않지요.

 

정신과 의사가 진단을 내릴 때에는 주로 두 개의 기준을 참고합니다.

하나는 DSM이라는 기준이고, 다른 기준은 ICD예요.

‘게임 중독’은 최근 개정된 DSM에서는 정식 진단명이 아닙니다. 추가적으로 더 연구해야 할 분야에 포함됐을 뿐이죠.

 

예를 들어, 우울증에 걸리면 식욕도 떨어지고, 잠도 잘 못 자며, 심한 경우 환청이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증상이 우울증 병리로 설명 가능하다면 이 모든 증상을 ‘우울증’이라고 부르지요.

만약, 잠을 못 자는 이유가 코골이 때문이라면 이렇게 진단이 달라집니다. 우울증, 그리고 코골이로 인한 불면증. 이렇게요.

 

독립적인 질병으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그 질병만이 가지고 있고, 그 질병의 특징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병리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게임 중독’은 이런 연구들이 아직 충분하지 않아 논란이 있기 때문에 DSM에서는 정식 진단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중독은 크게 물질 중독과 행위 중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물질 중독은 알코올, 담배, 마약 중독을 포함하고, 행위 중독으로는 도박 장애가 있습니다.

게임 중독은 행위 중독으로 분류되겠지만, 게임 중독만의 특징적인 병리가 있는지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발목이 아프면 다리를 절기도 하고, 한쪽 발을 들고 깽깽이를 하기도 하겠죠.

원인은 같지만, 발현되는 형태는 다르죠. 이것을 각각 깽깽이 병, 절름 병이라고 할 수는 없죠.

이런 식으로 행위 중독이 게임을 통해서 발현된 형태라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행위 중독이 게임을 통해서 발현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일 수는 없습니다.

게임을 못하게 하면, 다른 중독 행동을 하게 될 테니까요.

발목이 아픈데 깽깽이를 못하게 하면, 절름거리거나, 주저앉는 것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왜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지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게임을 하기도 하며, 게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위해서 하기도 합니다.

게임 중독 때문에 정신과를 찾는 경우는 그 행동 자체가 문제이기보다는, 그 밑에 있는 문제들이 더 심각한 경우가 많습니다.

청소년의 경우 정신과 진료뿐 아니라 직업 상담이 필요한 경우도 있죠.

스스로가 미래가 없다고 확신하면, 빠른 시간 내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무언가에 빠지는 일이 흔하니까요.

 

프로게이머는 게임을 통해서 경제적인 수익을 얻을 뿐, 자신의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중독자로 보지 않습니다.

단순히 게임을 잘하기 때문에, 게임으로 돈을 벌기 때문에 중독자가 아닌 게 아니에요.

게임을 하는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중독자로 보지 않는 거예요.

만약 프로게이머라도 게임하는 행동을 조절하지 못해서 일상생활이 되지 않는다면 중독자겠죠.

 

(여담이긴 한데, 프로게이머와 게임중독자를 비교 연구한 논문들은 이미 있습니다.

뇌 활성도의 차이가 있어요. 프로게이머는 뇌의 일부분이 확실히 활성화되지만, 게임 중독자는 뇌 전체가 약하게 활성화됩니다.

하지만 이 결과를 해석하는 게 어려워요.

게임 중독자의 뇌 자체의 병리 때문에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져서 뇌 전체를 활용할 수밖에 없게 된 건지, 프로게이머의 도구적인 능력이 최적화돼서 뇌의 한 부분만 활용해도 충분하게 된 건지 등 논란이 있죠.)

 

사진_픽셀

 

질문자 분도 눈치채셨겠지만, 이 ‘일상생활’의 기준 때문에 어머니와 갈등이 있으신 거예요.

어머니의 일상생활의 기준과, 질문자 분의 기준이 분명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어머니는 질문자 분을 게임 중독자라고 부르고, 질문자 분 스스로는 아니라고 말하는 거죠.

물론 어머니의 일상이 질문자 분의 일상일 수는 없겠죠.

 

하지만 주변 사람 도움이 전혀 없이도, 질문자 분이 본인이 주장하는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고민하셔야 해요.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일이니까요.

만약 본인 혼자의 힘으로 현재 자신의 일상을 유지할 수 없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좋아하는 게임을 미래에는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요.

 

이렇게 게임 중독 자체에 얽혀있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은데도, 성급하게 질병으로 정의하려 하기 때문에 게임 업계와 유저의 반발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사실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으로만 본다면, 알코올과 담배, 도박을 따라갈 수 없죠.

하지만 우리 곁에 있는 대부분의 보통 유저 그 이상의, 상상을 뛰어넘는 중독자는 분명히 존재하며, 게임 제작자로서의 도의적 책임은 필요하죠. 위에서 언급한 다른 중독 업계에서도 어느 정도 책임을 지고 있는 것처럼요.

 

정신과 질환이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됐던 사례는 많습니다.

정신과 질환이 있는 사람은 불임시술을 받게 하거나, 이민자들의 지능 수준이 낮아서 이들이 자녀를 낳으면 지능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민을 막는 법 같은 거요.

게임 중독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이런 사례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게임 중독자로 분류돼서는 안 되죠.

아무튼, 이런 이유로, 게임 중독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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