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조금 된 대학생입니다.

고3 때 수험생활을 하면서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느낌이 들고 원체 소화불량도 있어 항상 내가 죽을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불안에 떨었습니다.

어머니가 간호사셔서, 제가 대입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오히려 건강에 비정상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것이고 실제로 건강은 문제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켜주셨는데, 그런 말을 들어도 듣는 순간은 조금 나아지는 듯하였으나 다시 제 건강에 대해 불안해했습니다.

정작 대입은 스트레스만 많이 받고 남는 것 하나 없이 끝났습니다. 유학을 준비 중이었는데 필수로 준비해야 하는 네 가지 시험 중 하나는 응시조차 하지 않았고, 제대로 준비한 것은 단 하나의 시험뿐이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원서접수 직전이 돼서도 준비가 안 된 상태였는데, 매번 준비도 안 하고 시험 보면 망하기밖에 더할까 라는 생각에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구구절절 썼는데 한 마디로 말만 번드르르, 목표와 꿈만 높았지 이루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상태로 재수를 시작하면서는 건강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재수도 죽 쑤고 삼수를 했는데 삼수 때는 공부 신경 쓰기 바빠서 역시 건강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한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삼수 때 제가 집중을 너무 못하여 스스로가 성인 ADHD인 게 아닌지 의심할 지경이었고 로컬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때 성인 ADHD보다 우울증이 의심된다며 우울증 검사를 하였는데 우울증도 딱히 없었고 제 근본적인 정신 건강 문제에(남을 믿지 못함) 대해서는 입시 끝나고 상담하자며 그렇게 상담은 끝났습니다.

지금은 대학에 합격해서 이제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굉장히 만족하고 스트레스야 없을 수 없지만, 대학 다니는 게 행복합니다.

 

그런데 요즘 다시 몸 건강에 대한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네요.

도대체 왜 이런 건가요?

사진_픽셀

 

A) 안녕하세요. 신체질환에 대한 걱정들로 고민이 많으시군요.

실제로 몸에 큰 이상은 없지만 건강에 이상이 있지 않은지,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반복적으로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증상은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 혹은 질병불안장애(Illness anxiety disorder)로 불리면서 신체증상과 관련된 정신건강의학과적 질환의 하나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신체증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프고 병이 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거나, 이로 인해서 불안해하고 비합리적인 질병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께서도 아마 이런 류의 고민들, 특별한 질병이 없음에도 죽을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드는 고민들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과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것으로 보아, 삼수 당시에는 증상이 심해 잠시 우울증상까지 왔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고3부터 지금까지 신체질환에 대한 기저의 불안은 지속적으로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먼저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질문자님께서 지금 이러한 고민들이 정신과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계신 것 같다는 부분입니다.

죽을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불안해하지만, 그 생각이 비합리적이고, 질문자님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시고, 또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질문을 남겨주시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건강염려증, 질병불안장애 환자분들은 질문자님처럼 스스로의 걱정과 불안이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대체로 잘 인지하지 못하곤 하십니다.

대부분은 실제로 병이 있는 건 아닌지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끊임없이 검사에 검사를 반복하곤 하죠.

병원에서 전반적인 검사와 진료를 마쳐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쉽게 믿지 못하거나, 다시 불안감이 올라와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더 자세한 검사를 하게 되는 형태로 말입니다.

사진_픽셀

그렇지만 질문자님께서는 비교적 스스로 불안감이 과도하다는 것,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서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건강염려증은 훨씬 더 좋은 예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몸 걱정을 하는지, 내가 왜 이렇게 무슨 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자꾸 하게 되는지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궁금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내가 왜 이렇게 과도하게 불안해하는가를 궁금해하면, 불안의 근원을 향해, 몸 건강에 대한 불안이라는 껍질로 감춰진 질문자님의 진짜 두려움을 찾아가고 해결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건강염려증을 만드는 진짜 두려움, 불안의 근원이 도대체 뭐냐라고 물으실 수 있겠지만, 사실 거기에 대해서는 결코 누구도 정답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사실은 질문자님 스스로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근원을 향해 가는 길이 어렵고 혼란스럽다면 상담을 통해 길잡이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질문자님의 짧은 글로 질문자님의 그러한 역동을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잠시 짧게라도 소설을 써보겠습니다. 그저 그럴 수도 있겠다 수준의 참고만 해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질문자님에게 계속해서 '죽을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라는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무의식, 스스로 인식할 수 없는 마음속 깊은 곳의 생각에서는 '차라리 죽을병에 걸렸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이 있으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의학의 교과서적으로는 대부분의 건강염려증, 질병불안장애가 현실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환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를 회피하려는 노력 중의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과도한 대입 스트레스, 대입에 실패했다는 자존감의 상처, 삼수를 거쳐 대학에 왔다는 열등감 등의 스트레스는 '차라리 내가 죽을병에 걸렸다면 이런 스트레스를 피할 텐데'라는 1차원적인 회피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적인 생각, 무의식적인 소망은 현실적인 상황, 합리적인 상황판단을 하지 않고 유아적 사고처럼 저절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간호사인 어머니가 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직업이신 만큼, '내가 죽을병에 걸린다면 편안하게 어머니의 간호와 보살핌을 받고 관심을 받으면서 지금의 이 무거운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어린아이가 할 수 있듯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1차원적인 생각은 지금 질문자님의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고, 질문자님의 의무, 책임감에 크게 어긋나는 '잘못된 생각', '발칙한 생각'일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질문자님은 어린아이가 아니니까요.

그런 질문자님의 무의식적인 불편함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된다', '절대 죽을병에 걸려서는 안 된다', '혹시 죽을병에 걸린 건 아닐까? 그러면 안되는데'하는 과도한 불안감으로 점점 자라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_픽셀

방금 위에서 장황하게 이야기한 과정들은 건강염려증이 발생하는 흔한 레퍼토리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질문자님의 상황과 들어맞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고, 비슷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질문자님만의 상황과 사연들에 맞게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위에 제가 늘어놓은 정신역동을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씀드린 까닭은 질문자님께서 "도대체 왜 이런 건가요?"라며 스스로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그 생각 이면에 질문자님 스스로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질문자님의 또 다른 생각들과 감정들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 지금 질문자님을 이렇게 불안하도록 만드는 현실적인 고민들, 스트레스들, 과도한 책임감이나 압박감, 열등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돌아봐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불안감이 심해서 매일 그 생각을 곱씹고, 그래서 일이나 공부에 도저히 집중하기 어렵고 일상생활에 불편감을 겪고 있다면 잠시 약물치료의 도움을 받아보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가벼운 수준이라면 상담치료 없이 약물만 복용해도 증상이 충분히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계속 이런 불안들로 고민하고, 또 이런 불안에 대해 궁금해지신다면 본격적인 정신분석, 혹은 상담치료를 받아보시길 권유드립니다.

모쪼록, 불안을 해결하고, 궁금증의 해답을 향해 나아가시길 응원해드리겠습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처럼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직업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힘을 많이 얻습니다. 정성스런 상담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 자신에게 궁금했던 질문에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