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두 아이를 둔 10년 차 워킹맘입니다.

제 고민은 시댁과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직장 생활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10년이었습니다. 그동안 친정어머니의 정신적, 물질적 도움도 참 많이 받았고요. 아마 친정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진작 일을 그만두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댁은 달라요. 시댁은 이제 저에게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들’입니다.

남편은 참 착한 사람이고, 성실합니다. 가정에도 충실하고요. 아마 자라면서 부모님에게도 좋은 아들이었을 겁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저희 집에 와서 가끔 아들 자랑을 실컷 하면서, 저에게는 하대하듯 집안일을 시키는 걸 보면 화가 납니다. 결혼 10년 차에 겨우 돈 모아 장만한 집도 ‘아들이 잘해서’라는 식이니까요.

 

마치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제가 노력해온 것에 대한 칭찬은 한 번도 없었어요.

이제는 시댁에서 집에 놀러 온다는 말만 들어도 화가 나고,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요. 그런데도 저도 모르게 시댁 눈치를 보기만 합니다. ‘노’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겁이 나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댁과 인연을 끊는 것이 해답일까요?

남편과 이런 문제를 조금만 상의하려 해도, 남편은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시댁 문제에 관해서는 ‘노 코멘트’라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이 자꾸 반복되니, 시댁에 대한 피해의식은 점점 커져만 가는 것 같아요.

사진_픽사베이

 

A) 안녕하세요. 짧은 글에도, 그간 시댁과 질문자님의 역동이 얼마나 얽혀있을지 짐작이 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이 겪는 고통이기도 하죠. ‘시월드’란 말이 괜히 나오겠어요.

시댁에서의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점차 쌓이면서, 시댁 식구와의 관계는 복잡한 사슬처럼 부부관계도 옭아매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시댁에서 질문자님의 마음을 미리 알고 조심한다면 최상의 경우가 되겠죠. 하지만, 실상 그런 일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상대방은 ‘절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시댁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질문자님의 관점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문자님께서 쓴 짧은 글에서, 시댁과의 관계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워킹맘으로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힘겹게 남편과 함께 노력하고, 겨우 내 집 장만을 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남편에게만 돌아가게 되는 상황이 참 억울하고 화가 날 것 같아요.

표면적으로는 부당한 일을 겪고 나니 화가 납니다. 남편과 자신을 평등하게 보지 못하는 시댁에 대한 원망도 클 겁니다.

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아직 시댁에서 자신을 더 인정해주길, 자신이 해 온 노력들과 그 결과물들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변화의 시작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정이라는 것에는 상대방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인정받고 싶다는 것은, 상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싶다는 것이고 결국 여기에는 상대방의 감정적 기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어디 우리 마음대로 행동하던가요?

이렇듯, 인정이라는 긍정적 단어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찌하지 못하는 상대방의 마음이라는 변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는 이제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어느 정도는 좌절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이 시댁의 말 한마디에 바람 앞의 갈대처럼 휘청거린다면, 거기에는 시댁의 관심과 인정을 바라고 있는 자신의 마음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사진_픽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얻지 못하는 인정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상황에 대한 자신의 무의식적 기대와 욕망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자신의 마음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던진 한마디가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면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상상하게 되고 그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또한 일어납니다. 일어나지 않은 파국적인 결말을 미리 예상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대표적인 인지 오류(cognitive error) 중 하나입니다. 즉, 마음이 만들어내는 오답이라는 말이죠.

시댁과의 상황에서 생긴 작은 잡음을, 스스로 나를 집어삼킬 커다란 돌풍으로 여기지는 않았나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왜곡된 마음은 큰 감정의 변화를 만들게 되거든요. 그러나 좀 더 거리를 두고 보게 되면, 두려움은 실체 없는 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면, 그다음 단계로 결단이 필요합니다.

지금 가정의 중심이 어디에 있나 생각해 봅시다. 두말할 나위 없이, 가정의 기둥을 이루고 있는 것은 부부지요. 시댁이든 친정이든, 주변적인 요소일 뿐이죠. 부부가 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글에도 적으셨듯, 남편분은 시댁의 기대를 받으며 성장했고 지금도 자랑스러운 아들 노릇을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질문자님은 분통이 터지지요. 시댁 간의 갈등이 부부간의 갈등으로 비화하는 순간입니다. 여기에 불씨를 댕기는 것은, 이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이겠죠.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상대방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추측할 뿐이죠. 갈등 상황에서의 섣부른 추측은 또 다른 갈등을 낳을 뿐입니다.

그러니 남편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의 끝은 서로에 대한 공감이어야 합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절대 감정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부부가 일상생활 중에서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부부간의 속내를 털어놓기 위해서 일종의 ‘시간 예약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서 부부가 마주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몇 가지 규칙이 필요합니다.

첫째, 해결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

둘째,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에는 잠시 ‘타임 아웃’을 외칠 것.

셋째, 상대방의 이야기는 무엇이든 끝까지 듣고, 맞장구치고 고개를 끄덕여 줄 것 등이죠.

부부간의 대화가 쌓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 한층 깊어집니다.

사진_픽셀

공감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자신이 이해받고 싶은 만큼, 남편의 삶의 자취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남편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살아온 것이 너무도 당연해서, 무엇이 메인이 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을지도 몰라요. 기대와 사랑을 주며 키워온 가족들에 대한 보답,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한 가정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죠.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남편을 이해하기보다는, 남편이 살아온 삶의 베이스 위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당신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느낌이 상대에게 충분히 전해진다면, 상대 또한 여기 응답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상대에 대한 관점을 바꾸려 한다면, 상대도 서서히 변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쉬운 것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닌, 내가 바뀌는 것이니까요.

 

시댁과의 갈등에 대해서, 아닐 때는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수한 연습과 지원이 필요하지요. 이 과정에서 시댁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부부 사이의 엇박자를 주의해야 합니다. 부부간의 강한 유대와 공감만이 이를 가능케 합니다.

정리하자면, 우선 관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중심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부부간의 공감과 이해를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요. 생각해보면, 시댁과 부부간의 관계는 부부가 얼마나 중심을 잘 잡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부디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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