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명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지난달 21일에 동료 환경 미화원을 살해하고 동료의 카드와 전화기를 이용해서 수천만 원의 돈을 유흥비로 탕진한 용의자가 체포되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용의자가 피해자의 가짜 진단서를 위조하고 팩스로 휴직계를 제출하는 등 매우 치밀하게 행동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A. 무척 치밀했죠. 그런데 범인은 단순히 자신의 죄를 덮는 행동만을 하지 않았습니다. 휴대폰 내용을 보고 딸들에게 용돈을 보내고 전화가 오면 목소리를 위조해서 전화를 받는 것처럼 행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명의로 돈을 구해서 자신이 이용했죠.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살아있는 것을 조작하고 상대의 이름을 이용해서 자신의 삶을 즐겼죠.

 

사진_픽사베이

 

Q. 전 영화 리플리의 주인공을 보는 것 같았어요.

A. 맞아요. 영화 리플리에서 따온 리플리 증후군이 생각나죠. 전형적인 리플리 증후군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재능 있는 리플리 씨’라는 소설의 주인공 톰 리플리에서 따온 말입니다. 정확하게 병명으로 등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영화에서와 같은 정신 병리 현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반항아적 기질의 주인공 톰 리플리는 친구이자 재벌의 아들인 디키 그린리프를 죽인 뒤, 대담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그린리프의 인생을 가로챕니다.

즉, 톰 리플리가 아닌 디키 그린리프의 삶을 살아간 것이지요. 그러나 그린리프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그의 연극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영화에서 욕구 불만족과 열등감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상습적인 거짓말을 일삼다가 그 거짓말을 진짜로 믿게 되고 나중에는 그 거짓말을 지켜내기 위해서 살인도 불사하게 됩니다.

 

사진_픽사베이

 

Q. 처음에는 작은 거짓말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그 거짓말을 위해서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르는 거네요.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지만 정말 저런 일이 일어날까요?

A. 많았죠. 예전 문화 예술계에서 학력을 위조해서 대학 교수를 하고 큰 행사의 감독을 하려다가 그만두게 된 S 씨 사건도 있고요.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도 하고 모든 행사에 참가했지만 실제로 학교에 가지 않았던 사람이 결혼 이후 우연히 신분이 드러났던 경우도 있습니다. 도덕적인 판단, 죄책감, 양심의 가책이 무너져있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타인을 공격하고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반사회성 인격장애의 범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리플리 증후군은 타인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 한다는 점에서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특이한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Q. 그러고 보니 실제 존재하는 현상이네요. 어떻게 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걸까요?

A. 우리 모두에게는 질투의 감정이 있습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고 그것을 가진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만족이 있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의 남의 성취를 기뻐해 주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자신의 삶이 끔찍한 사람은 남들의 것을 인정해줄 여유가 없지요. 자신의 생활이 팍팍해지고 여유가 사라지면 타인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약화될 기회가 없지요.

타인에 대한 감정의 많은 부분은 자존감에서 기인합니다. 내가 만족할만한 사람이고 나에게 만족하면 타인에 대한 관심, 특히 질투와 분노가 줄어들게 됩니다. 물론 상대방이 누가 봐도 인정하기 힘든 문제를 일으킨다면 이건 우리 안에 있는 도덕심을 자극해서 분노하게 하죠. 하지만 상대가 가진 것에 대해서 울분을 느끼고 상대를 없애고 싶어 한다면 이건 자존감과 관련된 문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Q.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겠네요.

A. 맞아요. 분노라는 점만 보면 구분하기 어렵죠. 하지만 질투는 상대에 대한 부러움이 들어있습니다. 이게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죠. 상대를 부러워하고 상대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거기에 자신이 도저히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난 이후 자신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 발생하면 상대를 부숴버리고 싶은 정도의 분노가 발생하죠. 이 분노는 절제되기 어렵습니다. 사회 운동, 사회 참여의 형태로 건강하게 승화될 수도 있지만 리플리 증후군처럼 상대를 파괴하고 이용하게 되는 경우도 있죠.

결국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것, 자존감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기득권이 행동을 조심해야 되는 것도 있습니다. 가졌다고 능력이 있다고 너무 함부로 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행동을 넘어 상대에게 위협이나 자괴감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최명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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