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명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지요. 그런데 깊은 관계는 그만큼의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고 그 감정들 중에서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감정은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걸 잘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심청전입니다.

 

사진_영어 에니메니션 '효녀심청' (EBS)

 

심청전은 많은 판본이 있고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공통된 부분을 갖고 이야기를 할 수 있죠. 겉으로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인데요, 조금 더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심청이 태어나고 1주일 만에 어머니가 죽어요. 그런데 심학규가 슬퍼하는 대목을 보면 이 분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을 낳아야 된다는 생각에 늙은 아내에게 아이를 갖도록 부담을 주죠. 그 대가로 아내가 죽습니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아이 앞에서 죽어가는 아내에 대한 연민은 없습니다. 그저 자기 혼자 어떻게 아이를 기르냐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오죠. 대단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인간입니다.

 

'그래도 동냥젖을 먹이면서 심청을 기르잖아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사회적으로 효가 중시되고 공동체가 중시되는 사회의 미덕입니다. 효가 국가적인 덕목이고 이를 지키지 않는 자녀를 벌할 수 있는 조선시대에는 아이를 기르는 건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투자이죠. 심학규의 행동을 보면 그가 정말 자녀를 생각해서 희생했을 가능성 보다는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공양미 삼백석도 그래요. 눈을 뜨고 싶은 심정이야 이루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걸 어떻게 감당합니까? 그리고 약속을 했어도 다시 찾아가서 아무래도 내가 실수했다고 해야죠.

 

그걸 딸에게 털어놓으면서 난 모르겠다고 하는 게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면 하기 힘든 거죠. 그런 아버지 밑에서 심청은 어떤 기분으로 자랐을까요? 아버지는 아들을 바랐지만 자신은 딸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낳다가 엄마가 죽었습니다. 즉 엄마를 죽인 장본인이라는 생각을 하겠죠. 거기다가 동네에서는 너희 아버지가 장님인데도 너를 훌륭하게 키웠다며 아버지 칭찬을 했을 겁니다. 그럼 이게 다 부담이 되는 거죠. 그래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아버지를 돕고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딸, 그리고 아버지는 신체적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여러가지를 도와드려야합니다. 부축도 해야 되고요. 그럼 어떤 일이 생기냐면 신체적 접촉을 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딸은 이제 성장하죠. 거기에 나중에 심학규가 어린 점쟁이를 만나는 장면을 보면 심학규는 아직 성적으로 건강합니다. 이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죠. 어머니를 치우고 자신이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건 도덕적으로 벌을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래서 심청은 대단히 피학적인 인간이 되었습니다. 사실 심청은 부잣집에 양녀로 들어가서 공양미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하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로 그걸 거절합니다. 그리고는 아주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요.

 

 

사진_영어 에니메니션 '효녀심청' (EBS)

 

나중에 심청은 임금과 결혼합니다. 판본마다 다르긴 한데 임금은 아버지의 나이와 같아요. 그리고 나중에 심청이 한 일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일은 뺑덕어미를 벌 주는 겁니다. 표면적으로야 아버지에게 잘못한 사람을 벌주는 것이지만 무의식에서 본다면 자신의 자리를 대신한 새 엄마를 벌 준거지요.

 

심청은 자신의 새로운 방법, 즉 허용적인 방법으로 아버지 뻘의 임금과 결혼하면서 이제부터 자신은 더 이상 아버지와의 관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심학규는 딸 뻘인 점쟁이와 결혼을 합니다. 아버지와 사이에서 스스로를 벌하게 되는 상황이 외디푸스적인 욕망으로 인한 괴로움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이해되는 것이죠.

 

부모와 자식은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그중에서 Freud는 욕망(이를 성욕이라고 표현했지만 많은 후대의 분석가들은 이를 사랑받고 싶고 독점하고 싶은 욕망으로 이해했습니다)이 생기고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성장에 중요한 요소로 보았습니다.

 

자녀와 부모 사이에는 여러 욕망이 교차합니다. 어떤 것이 상대를 위하는 것인지 구분하고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얼마든지 상대를 공격하고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참조

조두영, 심청전에 나오는 심청일가의 꿈,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 1997,8;196-222.

 

*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단 시 보험가입 불이익에 대한 청원이 진행중입니다. 정신의학신문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 드립니다.

청원 참여하기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11671

 

 

최명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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