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읽어주는 영화, 열세 번째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의정부 성모사랑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유길상 전문의]

 

2006년 우루과이 출신의 패션모델 루이셀 라모스(Luisel Ramos, 22)가 거식증에 따른 심장 마비로 숨졌다. 6개월 뒤, 동생인 엘리아나 라모스(Eliana Ramos, 18) 또한 거식증에 의한 영양 실조로 사망했다. 2010년, 미국 남성 모델 제레미 길리처(Jeremy Gillitzer)는 섭식 장애로 38세에 숨졌다. 사망 당시 그의 몸무게는 30㎏에 불과했다. 모델 업계에서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자 프랑스, 스페인, 이스라엘 등 일부 국가에서는 지나치게 마른 모델들을 무대에 서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도입됐다.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 환자들은 왜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것일까?

 

사진_투더본 (배급사 넷플릭스)

 

최근 개봉된 영화, 투 더 본(To the Bone)은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의 일상에 관한 영화다. 주인공 앨런은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 수차례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앨런는 새어머니와 함께 식이 장애 치료로 명성이 높은 윌리엄 베컴 박사를 찾아가 재활치료소에 입소를 결정한다. 그리고 재활 치료소에서 다양한 사연과 증상을 가진 섭식 장애 환자들과 함께 치료를 시작한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들은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한다. 앨런처럼 그들은 음식별 칼로리를 정확히 외우고 있고 매일 자신들이 먹는 음식의 칼로리를 계산하여 음식 섭취량을 제한한다. 앨런은 살을 빼기 위해 수없이 윗몸 일으키기를 해서 등에 굳은살이 생겼다. 일부 환자들은 먹은 음식을 반복적으로 토해 손에 상처(russell's sign)가 있는 생기는 경우도 있다. 어떤 환자들은 지사제나 이뇨제 등의 약물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체중을 감량하기도 한다. 앨런과 같이 많은 신경성 식용부진 여성 환자들은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월경 중단을 경험한다.

 

사진_투더본 (배급사 넷플릭스)

 

앨런은 어떻게 신경성 식욕부진이 생기게 되었을까?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식이 장애 질환은 대부분 10대 중, 후반에 처음 시작된다. 청소년 시기, 음식 섭취 거부는 어머니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을 의미할 수 있다. 청소년들은 엄격한 체중 조절을 통해 자기 통제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시기에 체중 조절을 통한 자기 통제감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우 식이 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날씬한 몸매를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대중 매체 또한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발병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유전적인 요인과 가족 내 역동, 대중 매체의 영향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앨런의 유일한 취미는 블로그에 그림 올리기였다. 그녀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앨런의 그림을 좋아하던 한 소녀는 앨런을 동경하여 살을 빼기 시작했고 거식증으로 사망했다. 이후 앨런은 죄책감에 휩싸였고 식이 장애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녀에게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행위는 자기 처벌의 성격(self-punishment)을 가지고 있었다.

 

사진_투더본 (배급사 넷플릭스)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어떻게 치료할까? 지나친 체중 감소로 인한 전해질, 심장 기능 등의 내과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입원 치료가 필수적이다. 왜곡된 신체 이미지와 음식 섭취에 대한 과도한 불안에 대해서는 개인 및 집단 치료, 인지 행동과 가족 치료가 필요하다.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동반된 우울과 불안, 강박 충동 장애를 위해 약물 치료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이 질환에서 식욕부진(anorexia)이란 용어는 잘못 사용된 부분이 있다. 실제로 환자들은 질환 말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식욕이 유지된다. 그들은 방문할 맛집 리스트를 작성하고 간식을 아무도 모르는 서랍에 숨겨 놓는 등 음식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들은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미치도록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단지 이를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억압하고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환자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치료자 모두를 지치고 힘들게 만드는 질환이다. 환자들에게 음식을 먹는 것은 석탄을 삼키는 것보다 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역할은 그들이 한 조각의 “구구클러터”를 불안과 죄책감 없이 먹을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 하며 인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의, 전공의
(전) 포천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자문의
(전) 의정부 청소년 쉼터 상담의
대한정신건강재단 해피마인드 상담의, 대기업, 보건소 등에서 다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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