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읽어주는 영화, 열네 번째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의정부 성모사랑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유길상 전문의]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은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재임하였다. 그는 임기 중 경제회복을 위해 세출의 삭감, 소득세의 대폭감세,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 완화 등의 경기부양 정책을 펼쳤다. 레이건 행정부 임기 말 미국은 경기침체가 없는 최장 기간의 호황을 기록했다. 후대에 그의 경기 활성화 정책은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인 레이건이 알츠하이머 치매로 10년간 투병하다가 사망한 사실은 그의 경제 정책만큼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_내머리속에 지우개(제작_싸이더스픽쳐스)

 

손예진과 정우성이 주연한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조기 치매를 앓고 있는 여주인공과 그녀를 돌봐주는 남성의 따뜻한 사랑에 관한 영화다. 20대 후반인 수진은 유달리 건망증이 심하다. 편의점에 물건을 사러 가서, 산 물건과 지갑을 놓고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느 날 수진은 평소와 같이 편의점에 콜라와 지갑을 놓고 온 것을 깨닫고 다시 편의점에 들어선 순간 한 남성이 자신의 콜라를 훔쳤다고 착각하여 콜라를 뺏어 마신다. 그렇게 수진과 철수의 인연은 시작된다.

 

수진과 철수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여 결혼한다. 하지만 수진의 기억력 저하 증상은 점차 악화되어 심각한 수준에 이른다. 그녀는 요리를 하다 가스 불을 끄지 않아 주방을 태워먹고 매일 걷던 길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어버려 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수진은 기억력 저하 증상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병원에 찾아가 조기 치매를 진단 받는다. 그리고 철수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다고.

 

사진 좌_Alois Alzheimer 우_August D (출처_ 위키미디어공용)

 

영화 속의 주인공 수진이 앓고 있는 질환은 치매, 그 중에서도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다. 알츠하이머병은 1906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 병리학자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가 51세 여자 환자인 오거스트 디(August D) 증례를 통해 처음 보고되었다. 알츠하이머병은 가장 흔한 치매의 원인 질환으로 전체 치매의 약 55~70퍼센트를 차지한다. 수진의 가족은 기억력 장애의 집안 내력, 즉 가족력이 있었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는 유전적 요인, 음주와 흡연, 고혈압과 당뇨 등이 있다. 그 중에서 알츠하이머병의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는 고령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치매의 유병률은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에서 6.3~13.0%로 매 5세마다 두 배로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알츠하이머병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치매 말기 증상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 수진은 옷을 입은 채 소변을 보고 남편을 못 알아보고 예전 남자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말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은 식사하기, 옷 입기, 대소변 보기 등의 기본적 일상생활영역에 어려움을 보인다. 어떤 경우에는 가족뿐만 아니라 본인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일부 환자들은 누군가 집에 들어와 자신의 물건을 훔쳐간다는 도둑 망상(delusion of theft), 가족들이 자신을 버린다는 유기 망상(delusion of abandonment) 등의 정신병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치매의 치료는 어디까지 왔을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알츠하이머병 발병을 예방하거나 질병 경과를 역전시키는 약물은 개발되지 않았다. 현재는 치매 증상을 완화하거나 증상 발현을 지연시키기 위해 아세틸콜린 분해효소억제제인 도네페질(donepezil), NMDA 수용체 길항제인 메만틴(memantine) 등의 약물들이 처방되고 있다.

 

사진_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왼쪽)에서 정상인의 뇌(오른쪽)에 비해 아밀로이드 침착이 증가한 것을 PET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질환이 그렇듯이 치매 또한 예방, 조기 발견,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균형적인 식단과 꾸준한 유산소 운동, 금연과 절주, 두뇌 활동, 사회 활동 등은 치매를 예방하거나 발병을 늦출 수 있다. 기억 장애, 언어 장애, 실행 능력 저하 등의 치매 증상이 의심될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하다. 정확한 치매 진단을 위해서는 노인인지기능검사, MRI 등의 뇌구조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 최근 진단에 사용되는 아밀로이드 PET(amyloid PET)은 알츠하이머병 진단 정확도를 높였다. 추후 아밀로이드 PET은 임상 증상 발현 이전 단계로 치매의 진단 시기를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 기술과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 수명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고령인구가 증가한 만큼 불가피하게 알츠하이머병 발병률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는 치매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치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발병을 최대한 늦추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오늘, 당신이 아침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가? 친한 친구의 얼굴은 떠오르는데 정확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가? 치매 질환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권한다. 그리고 치매가 의심되고 걱정된다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진료를 추천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치매 또한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의, 전공의
(전) 포천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자문의
(전) 의정부 청소년 쉼터 상담의
대한정신건강재단 해피마인드 상담의, 대기업, 보건소 등에서 다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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