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7살 남자로 현재 13회차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까지도 불안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어요. 자신에게 기대치가 높고 그 기대치가 충족되어야만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만 사랑받는다.’, ‘남성스러워야만 여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처럼 ‘~해야만 한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평생 불안하고 타인의 높은 기준에 맞추려 가면을 쓰며 살다가 도달하지 못해 번번이 좌절하곤 했습니다. 삶이 잿빛처럼 느껴졌고 의욕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최근 상담을 꾸준히 하고 ‘내면아이’라는 이론을 접하면서 원인을 찾은 것 같습니다. 

제 불안의 근본적 원인은 초등학교 초반~중학교 무렵 동급생에게 억압받고 왕따당하고, 태권도를 함께 하던 형에게 맞으면서 마음에 문신처럼 새겨진 그 순간들이 잘못된 신념을 만들어 저를 괴롭힌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해도 못 들은 척 넘어가거나 주눅 들어 있던 건 어릴 적 따돌림당하고 애정 결핍이 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애정을 갈구하던 어린 제가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후 사회화되기는 했지만, 근본까지 바뀌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제 추측이기에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초라고 생각되는 제 역사를 돌아보고 그때의 제게 위로해주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알려주고, 내 잘못된 신념이 진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오늘 해줬더니 마음이 덜 불안해졌어요. 불안해도 이유를 알고 있으니 비합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올바른 방향으로 생각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언제나 의지할 누군가, 한 명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점에 고민이 되어 사연을 남깁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인간관계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는데, 저는 제 옆에 누군가 한 명을 꼭 둡니다. 그 사람을 통해 제 관심과 애정, 소통 욕구를 풀고 불안감을 해소하는 편이에요.

이런 존재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모든 신경이 집중되다 보니 질투도 많이 하고 거리가 멀어질까 두렵고 불안합니다.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에는 하나 되고 싶은 마음이 몹시 컸고 과도한 관심으로 친해지려 다가가다가 제가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다는 느낌이 들면 부담이 들었어요. 상대방이 질려 거리 두기를 반복하다가 사이가 안 좋아진 친구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저를 잘 수용해주는 두 살 누나와 이런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성적인 느낌도 있지만 애착 대상 같은 느낌이 들어 신경 쓰입니다. 타인이 접근하면 질투 나고 사소한 행동이 불안합니다. 자꾸 하나가 되려 하고 소유하려고 합니다. 이런 관계가 제 애정 욕구 충족과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건 알겠지만 건강하지 못하고 의존적인 관계가 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책에서는 자아 분리가 안 되고 미분화라고 하던데 확신 있게 말을 하기는 어렵네요. 이런 의존적 관계의 원인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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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을 읽으며 스스로에 대해 깊이 탐색하고 성찰하며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시는 사연자님의 의지와 잠재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상담받고 관련 책을 읽으시면서 이미 불안이나 현재 고민하는 관계에 대한 원인과 답을 어느 정도 많이 찾으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어린 시절 동급생 및 주변인들로부터의 폭력과 억압이 사연자님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짓고 타인으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존중받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되는 비합리적 신념들을 만들어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부족하고 못난 것처럼 느껴지는 스스로를 감추고, 더 친절하고 강한 사람이 되어 사랑받고 괜찮은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강해졌던 것이겠지요. 

사연자님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으며 ‘내가 문제다.’,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되어야 한다.’라는 주문을 끊임없이 걸었던 것이 아닐지요. 그 당시에 사연자님께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해주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어린아이로서 감당하기에는 벅찼을 상황 앞에서 그 당시의 사연자님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마음속 내면아이로 남아 외롭고 불안해하며, 사랑과 관심을 주고 보호해 줄 누군가를 계속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애정 욕구에 대한 결핍을 보상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가까운 한 명의 사람을 찾아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 사연자님의 외로움이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깊은 애착을 맺을 수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특정 인물에게 모두 쏟아붓는 관계의 패턴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얻을 수 없었던 신뢰감, 안정감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대상이 나타나면 그 사람을 지나치게 이상화하거나 절대화하면서 사연자님 삶의 모든 중심이 되도록 해 오신 것은 아닌지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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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관계는 서로를 지치게 하고 의존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기 쉽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사이가 안 좋아진 친구들도 있었고, 애착 대상이 여러 명으로 더 확장 분산되며 지속 가능성을 갖기도 어려웠던 것이지요. 한 사람으로부터 모든 욕구를 충족받고자 하며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사연자님도 지치고, 상대방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이런 관계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애착의 대상을 분산해보 시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한 사람에게만 쏠렸던 에너지와 관심을 더 많은 사람에게 돌려보는 것입니다. 아직 사람을 믿고 마음을 주는 것이 쉽지 않기에 애착 대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정하기까지 상당히 숙고하며 많은 에너지를 쏟으시리라 짐작됩니다. 그렇기에 이런 대상을 여러 명 둔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 명에게만 쏟고 있는 관심과 애정, 기대의 수준을 조금 낮추고 남는 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도 더 기울여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사연자님의 주변에는 현재 의지하시는 누나 이외에도 사연자님에게 힘이 되어 주고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아직 사연자님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요. 

친구 관계를 맺을 때도 친구마다 나누는 고민이나 관심사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친구에게는 학업이나 일 고민을 나누고, 어떤 친구와는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또, 같은 사람이라도 인생의 시기마다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주제가 달라지기도 하고, 상황적 이유로 자주 소통하거나 만나기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한 사람만을 통해 모든 고민이나 애정 욕구를 충족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상대방에게 서운해하거나 일방적으로 내 욕구를 충족해 주기만을 바라다 보면 결국 서로가 지치고, 관계가 틀어지기도 합니다. 관계가 오래가기 위해서는 그 관계 외에도 비슷한 관계들을 더 형성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 사람이 아니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친구나 선배, 후배가 더 있다면 그들 중 여력이 되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연자님의 삶을 살다가, 친구가 마침내 조금 더 여유가 생겼을 때 다시 반갑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연자님도, 애착 대상도 서로에게 더 많은 심리적, 물리적 여유를 허락하며 조금 더 느슨하지만 연결된,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사연 말미에서 말씀하신 ‘자아 분화’의 측면에서도 이 관계를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며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로서 스스로 서게 됩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애착 대상과 내가 하나라는 느낌, 동일시와 소유욕으로부터 애착 대상과 나는 서로 분리된, 독립적인 인격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타인과의 정서적 융합, 즉 가족이나 애착 대상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부터 자신의 감정, 신념, 자주성을 가진 상태로 자아 분화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타인에 의해 쉽게 변화되거나 영향받으며 가치관이나 정체성이 흔들리는 자아는 ‘유사 자기’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 자기 확신과 신념을 갖고 타인들의 요구나 기대에 관계없이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자아는 ‘진짜 자기’라고 합니다. 

사연자님의 경우 그동안 사연자님 안에 자리하고 있던 내면아이와 유사 자기의 모습, 그들이 사연자님에게 끊임없이 외쳤던 메시지(비합리적 신념)를 인지하고 진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 하고 계신 내면에 대한 탐색과 내면아이를 향해 스스로 보내 주셨던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 비합리적 신념을 인식하고 합리적 신념으로 바꿔 가시려는 노력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작업입니다. 

상담을 계속 받으시면서 지금처럼 진짜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하시다 보면 궁극적으로 언젠가는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해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타인의 인정, 애착 대상을 통한 불안감 해소나 애정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소망도 자연스럽게 더 줄어들 수 있으리라고 기대됩니다. 능동적, 적극적으로 내면을 탐색하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많이 칭찬하고 격려해 주시고, 지금처럼 진짜 자기를 찾기 위한 여정을 이어 가시기를 응원합니다.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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