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용서, 

그것은 쉽지 않다.

쉽다면 논의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가장 어려운 것이다.

_ 토니 커시너(Tony Kushner)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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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자신에게 행한 잘못으로 인해 크게 분노해 본 적이 있으시나요? 그 분노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을 때 상대에 대한 미움의 감정은 점점 커져갑니다. 누군가에게 분노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오랫동안 가진다는 것은 사실 언제 터질지 모를 뜨거운 시한폭탄을 가슴속에 품는 것과 같습니다. 분노의 감정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하거나 해결되지 못한 채 우리 안에 자리할 때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하느라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용서한다는 것은 어쩌면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나를 위해 행해야 하는 결단일 수 잇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도, 또 그리 단순한 행위도 아닙니다. 여전히 상대에 대한 미움이나 분노의 감정이 남아 있는데, 용서에 대한 의지나 노력만으로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서란, 많은 경우 일차적으로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행위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용서하기에 적절한 시기나 방식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보다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언제,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와 같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답을 찾아가야 하는 여정입니다.

만약 누군가를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사람이 용서를 강요하는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혹은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세간의 눈초리가 의식되어 떠밀리듯 용서하게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닐뿐더러 가해자의 잘못에 대한 응당한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반대로 자신에게 가해한 사람을 너무 쉽게 습관적으로 용서한다면,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깊게 뉘우치지 못하고 피해를 주는 상황이 반복됨으로써 피해자는 점점 더 큰 가해의 희생양이 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피해자의 내면은 점점 더 병리적인 상태로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조건적인 용서가 반드시 좋은 것이고, 분노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잣대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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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조지프 버틀러(Joseph Butler)는 “인간의 본능적 분노를 신이 부여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자연스러운 감정으로서의 분노 자체가 악은 아니며, 분노는 순수한 것으로 오히려 창조주가 우리에게 준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가 불의, 상처, 포악함 등에서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상대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는 걸까요? 흔히 우리는 내게 큰 상처를 주거나 잘못을 저지른 상대를 용서하는 것은 그에 대해 가졌던 분노의 감정이 모두 해소되었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버틀러는 용서와 양립 가능한 분노가 있고, 그렇지 않은 분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분노에는 즉각적 분노숙고된 분노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즉각적 분노란, 어떠한 신체적 · 심리적 폭력이나 위협이 가해졌을 때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하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분노의 감정을 뜻합니다. 그러나 숙고된 분노란, 즉각적 분노에 머물지 않고, 분노하게 된 상황의 경위에 대해 사유하면서 분노의 정당성이나 분노하게 된 이유 등을 성찰하고 숙고한 후에 생기는 분노입니다.   

가해자에 대한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분노의 감정이 만약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감이 더 커지거나 증오심, 복수심 등으로 치달을 때,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즉각적인 분노감을 만약 숙고된 분노로 전환하여 분노를 일으킨 여타의 정황에 대해 숙고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어떨까요?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부당한 일에 분노를 느끼고, 그 분노가 파괴적인 복수심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유의할 때, 버틀러의 주장처럼 정당한 분노의 감정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피해자가 숙고된 분노를 통해 가해자에게 어떻게 반응할지, 부당한 일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등을 숙고하고 성찰함으로써 ‘분노’라는 부정적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가장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용서하는 사람의 ‘용서’라는 행위가 사회적 · 종교적 관습으로 인해 용서가 강요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함과 동시에, 용서하는 사람의 자기 존중과 자기 사랑의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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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는 용서의 성향이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아이일수록 용서하려는 의도가 낮고, 성인일수록 용서에 대한 관대함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는 사회적 조망수용 능력과 공감 능력은 용서를 촉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이것은 유아기부터 서서히 발달합니다. 이는 버틀러가 언급한 ‘숙고된 분노’와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회적 조망수용 능력이 분노하게 된 상황이나 여타의 정황에 대해 숙고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기능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도 누군가에 대해 오랫동안 미움과 분노의 감정을 품고 사는 것에 지쳤다면, 그래서 이제 그만 미워하고 용서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숙고된 분노’ 과정을 통해 상대를 용서하는 마음에 한 발짝 다가가 보시기 바랍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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