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_ 자크 데리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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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 씨는 오래도록 한 사람을 많이도 미워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영란 씨의 시어머니였습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그녀가 결혼해 시댁에 들어온 날로부터 사사건건 그녀가 하는 일에 트집을 잡으며 힘들게 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온갖 집안일과 농사일을 하느라 한시도 쉴 새가 없이 고된 하루를 보내는 동안에도 틈만 나면 영란 씨를 지적하며 그녀를 들쑤시곤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남편이었지만, 그 역시 영란 씨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영란 씨와 시어머니의 사이에서 마치 방관자처럼 늘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을 뿐이었지요. 

이렇게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던 영란 씨에게 도저히 잊히지 않는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그녀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영란 씨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였어요. 복숭아 농사를 짓던 시부모님은 상태가 좋은 복숭아를 시장에 내다 팔아야 했기 때문에 그나마 영란 씨가 맛볼 수 있던 것은 어딘가 흠집이 나거나 벌레가 먹은 것이었어요. 그러나 임신 중이었던 영란 씨는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해 좋은 상태의 복숭아를 먹고 싶었어요. 그런데도 영란 씨는 그러한 자신의 요구를 차마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영란 씨는 한밤중에 몰래 탐스러운 복숭아를 따기 위해 복숭아밭으로 들어갔어요. 그러다 그만 머리에 망태기를 뒤집어쓴 시어머니를 보고 뒷걸음질 치고 말았습니다. 밤새 복숭아밭에 들지도 모를 도둑들 때문에 시어머니가 보초를 선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던 거예요. 영란 씨가 시어머니를 보고 뒷걸음치던 순간, 그녀는 분명 시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보았음을 확신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 영란 씨는 다음 날 아침 시어머니로부터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한마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간밤에 복숭아 도둑이 들었었다.”

영란 씨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어요. 그 말이 바로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요. 그날부터 영란 씨는 시어머니와 그녀의 사이에는 결코 건널 수 없을 커다란 강이 흐르게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너무 넓고 깊어서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미움과 원망이라는 물줄기가 시간과 함께 흘러갔습니다. 마음속 깊이 미워하는 사람과 한 집에서 부대끼면서 사는 일은 큰 고통이었어요. 

영란 씨의 마음속 분노와 미움과 같은 부정적인 에너지는 남편은 물론 자녀들에게까지 불똥이 튀는 날이 많아졌지만, 변하지 않는 시어머니의 성정과 태도는 그녀를 무기력하고 절망감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시어머니의 기력도 많이 쇠해졌지만 어느새 영란 씨의 나이도 예순이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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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완전성과 미성숙함으로 인한 잘못된 행위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그리고 만약 그 관계가 가족이나 친구, 연인처럼 가까운 사이라면 피해와 상처의 깊이는 더욱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란 씨의 경우처럼 가해를 가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강한 권력을 갖거나 높은 위치에 있는 경우일수록, 또 물리적인 거리를 두거나 단절되기 힘든 상황일수록 피해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영란 씨는 오랜 세월 동안 시어머니의 부당한 대우를 참으며 자신의 마음속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가정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자신이 시어머니의 가해적 행위에 맞대응할 만한 위치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했을 때 가정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앞섰기 때문에 그저 참고 또 참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영란 씨는 시어머니로부터 끊임없이 가해 행위에 노출되었고, 상처를 받아야 했어요.

그런데 이쯤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영란 씨가 시어머니의 부당한 행위에 침묵했던 것은 그녀가 시어머니를 용서했기 때문일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종종 ‘용서’와 ‘묵인’을 혼동하곤 합니다. 사실 영란 씨가 시어머니의 가해 행위에 대응했던 방식은 묵인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묵인은 마음속으로는 부당하다고 여기는 일에도 정당한 대응을 포기함으로써 자기기만에 빠지거나 자존감을 갉아먹게 합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용서를 선택할 경우, 피해자의 분노는 정당해지고 가해자의 잘못은 분명해집니다. 물론, 가해자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거나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가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라는 행위는 가해자가 행한 가해 행위가 잘못된 일임을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 용서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찬 마음으로는 온전한 일상생활을 꾸려 가기가 어렵습니다. 용서는 지금 내가 느끼는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분노의 감정이 좀체 식지 않고 여전히 뜨겁다면 일단은 그 감정에 머무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용서하기를 미룰 수도 없습니다.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그 시간만큼 상처와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가 나의 내면을 제멋대로 뒤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란 씨의 경우처럼 내면에 억눌린 부정적인 에너지가 자신에게 머무는 것은 물론이고 남편이나 자녀와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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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심리학자로 가족치료의 어머니라 불리는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는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타인에 대한 분노 때문에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자기에 대한 용서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사티어는 용서란, 내적이고 무의식적인 과정으로 자신이 붙들고 있던 부정적 감정을 놓아 버림으로써 자신을 더 이상 상처와 고통 속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결국 용서는 상대방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용서하는 과정에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기 감정에 책임지기로 선택하면서 내면의 힘을 되찾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상처받은 과거의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묵인이 아닌,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당신이 아닌 나를 위해,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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