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누군가를 용서하고, 또 때로는 용서를 구하기도 합니다. 용서는 개인적인 분노나 원한, 오해, 갈등과 관련된 것일 때도 있고 사회적 이슈, 정의에 관한 것일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개인적 차원의 용서와 공동체, 사회적 차원의 용서가 중첩되는 경우도 있지요.

이렇게 용서가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인 만큼 종교와 철학, 심리학 등의 영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용서를 주요한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라는 성경 속 예수의 가르침은 아마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도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 외에 불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에서도 용서에 관한 가르침을 전합니다. 

용서는 자신이나 타인에 의해 저질러진 불의나 잘못된 행동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한 잘못된 행위와 그 행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정서적, 인지적, 행동적 반응과 함께 용서할 것인가, 또 용서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용서에 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합니다.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Jaques Derrida)는 무조건적 용서를 강조하며 용서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않을 때 진정한 용서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즉, 용서란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용서하는 것으로서, 용서 불가능한 일을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서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시각은 홀로코스트로 인한 유태인 학살과 같은 반인류적 범죄는 용서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Vladimir Jankélévitch)의 견해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장켈레비치를 비롯한 무조건적 용서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용서하지 않을 권리, 용서하지 않는 것이 피해자 또는 불의를 당한 사람에게 갖는 의미에 주목합니다. 불의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조건적 용서는 피해자의 감정이나 잃어버린 권리에 대한 침해, 용서에 대한 강요가 될 수 있으며 불의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무조건적으로 용서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며, 잘못된 행동, 불의에 대한 교정이 이루어진 후에 용서가 가능할 수 있거나 용서 자체는 선택일뿐 의무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렇게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적 논쟁으로까지 파고들지 않더라도 진정한 용서가 무엇이며, 용서하는 것이 언제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고민은 아마 우리 누구나 늘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용서와 관련된 주제는 사회적 참사나 정치적 이슈, 공동체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안부터 아주 사적이고 때로는 사소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까지 다양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용서 연습과 실천의 이점에 관한 연구가 주로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용서에 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온 심리학자 에버렛 워딩턴(Everett Worthington)은 용서에 관한 다양한 책과 워크북을 저술했으며, 최근에는 홍콩, 인도네시아, 우크라이나,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의 4,598명을 대상으로 2주간 용서 워크북에 제시된 활동을 실천하게 한 후 그 효과를 살펴보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그들은 용서를 실천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우울과 불안 증상이 감소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 로버트 인라이트(Robert Enright) 역시 용서가 불안 감소와 같은 정신적 건강 증진과 혈압 감소, 수면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용서는 우리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향상하고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여주는 효과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가 주는 이점만큼이나 용서하지 않는 것이 갖는 의미, 혹은 이점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용서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용서할 때 우리는 괴리감,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채 용서하도록 희생을 강요받았다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마치 나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과거의 일과 그로 인해 현재 내가 경험하고 있는 그 일의 영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의든 타의든 용서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면 자기를 부정당하고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용서는 관계 회복, 원한이나 분노를 흘려보내고 상대방에 대한 악의를 선의로 바꾸며 새로운 미래를 그려 나가기 위한 원동력이 되는 것과 같은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잘못된 행동이나 불의한 일에 대해 느끼는 나의 타당한 느낌을 부정하고, 내 희생을 통해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갈등 소강 상태에 도달했다는 느낌만 받습니다. 또,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피해자인 내가 용서라는 짐을 오롯이 혼자 떠안아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용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용서가 갖는 힘과 긍정적 영향은 분명 존재하지만, 충분히 용서할 준비가 된 상태에서, 용서할 힘이 있을 때, 용서가 개인과 공동체에 좋은 작용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와 방법에 대한 숙고를 통해 용서가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용서가 과거에 일어난 잘못된 일을 망각하거나 없었던 일처럼 여김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일은 분명히 일어난 일이고, 그로 인해 나 또는 내가 속한 공동체, 사회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한 상태에서 그 일에 다시 새로운 이름과 의미를 부여하고, 이제는 내가 충분히 그 일을 다룰 힘이 있음을 인식하며 불의를 저지른 대상을 용서하기로 선택하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과정이 용서입니다. 

그렇기에 용서를 하기까지 이런 과정들을 먼저 충분히 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용서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기억하며, 용서를 지속적이고 과정적인 것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용서했다고 생각한 일에 대해서도 때로는 분노나 원망, 서운함, 미움과 같은 감정이 다시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용서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보다는 용서의 과정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작은 일부터 용서를 연습하며, 점차 더 크고 중요한 일에 대해서도 적절한 용서의 시기와 방법을 고민해 나가다 보면 용서하기 또는 용서하지 않기를 통해 삶이 안정되어 가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조언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키워드

#용서 #의무 #선택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