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의 펜싱 결승전. 21살의 검객, 박상영의 얼굴 위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습니다. 남은 건 마지막 한 라운드뿐, 점수는 13대 9. 4년간 준비한 꿈의 무대에서 무려 4점 차로 지고 있는 상황. 잠깐의 쉬는 시간, 의자에 앉은 그의 표정은 무섭게 굳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의 “할 수 있다”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박상영은 홀린 듯 그 말을 따라 되뇌기 시작합니다.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재개된 경기에서 그는 5점을 연달아 득점했고, 기적의 역전승을 만들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박상영 선수가 “할 수 있다”고 반복해 말한 것은 일종의 ‘자기암시’입니다. 이는 일정한 관념을 반복하며 자기 자신에게 암시를 주는 것으로, 심리적 또는 신체적 문제를 개선하는 데 사용됩니다. 많은 운동선수가 훈련이나 경기에서 자기암시를 활용한다고 합니다. 의사가 영양제를 약이라고 속여 환자에게 처방하자 긍정적인 믿음으로 인해 병세가 호전되는 ‘플라시보 효과’ 역시 이러한 자기암시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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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암시의 종류는 △ 정신적 형상화 △ 심적 시뮬레이션 △ 암시 △ 최면 등 네 가지로 나뉩니다.

 

① 정신적 형상화(mental imagery)

실제 대상, 장면, 사건 등이 발생하지 않아도 그러한 지각적 경험과 상당히 비슷하게 떠오르는 마음속의 영상을 말합니다. 상상력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EHESS)의 Margherita Arcangeli 교수에 따르면 상상력은 자발적으로 발생하지만, 정신적 형상화는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납니다. 정신적 형상화를 거쳐 상상력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지요.

 

② 심적 시뮬레이션(mental simulation)

특정 행동을 실제로 하기 전 가능한 결과를 가상으로 수행시켜 예측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악보에 따라 자신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반복해 생각하며 연습하는 것도 이러한 심적 시뮬레이션에 속합니다.

심적 시뮬레이션은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인지 사고의 정보처리 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행동을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릴수록 ‘청킹’*이라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신경회로의 패턴들이 효과적으로 구축됩니다.

*청킹(chunking, 군집화 또는 범주화): 인지처리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 가운데 의미 있는 정보들을 연관 지어 기억하는 것. 사람의 인지적 용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청킹을 통해 방대한 양의 정보를 쉽게 기억할 수 있다. 

 

③ 암시(suggestion:including placebo)

감각, 관념, 의도 따위가 이성에 호소함 없이 수동적, 무비판적으로 전달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굳건할수록, 비슷한 경험의 유무에 따라, 비용(가치)이 더 크다는 것을 알수록 암시의 효과는 강해집니다. 

암시의 방법은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언어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베토벤의 소나타를 멋지게 칠 수 있다’를 강한 믿음과 함께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굳이 소리 내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단어나 문장 등 언어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④ 최면(hypnosis)

최면의 사전적 의미는 암시에 의해 인위적으로 끌어낸 잠에 가까운 상태입니다. 이때 몇 가지 신체적 특징이 나타납니다. 전신의 근육이 이완되며, 집중력이 향상됩니다. 심리적으로는 암시에 대한 반응성이 높아집니다.

 

미국의 한 의학생명공학연구소는 암시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새끼손가락 외향근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피실험자를 세 그룹으로 나눈 뒤, 1그룹은 실제로 신체를 이용한 훈련, 2그룹은 새끼손가락의 외향근에 대한 시뮬레이션, 3그룹은 아무것도 하지 않도록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1, 2 그룹의 외향근은 각각 53%, 35%씩 증가했으며, 3그룹은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심적 시뮬레이션만으로도 실제 훈련의 50% 이상의 효과를 거둔 것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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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기암시의 효과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주요 요인 세 가지가 충족돼야 합니다. 이는 독일의 라이프니츠 신경생물학연구소(Leibniz Institute for Neurobiology)의 실험을 바탕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재확인’으로, 목표에 맞는 예시를 반복해서 결과를 얻어내는 것입니다. 연주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발표를 듣고, 수상을 하는 등의 장면을 여러 번에 걸쳐 생각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반복’입니다. 이는 명시적인 언어의 형태로 반복하는 것입니다. 재확인의 반복뿐만 아니라, 앞서 나온 예처럼 ‘나는 베토벤의 소나타를 멋지게 칠 수 있다’와 같은 암시를 반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생리 반응의 능동적인 통제’입니다. 특정 부위가 간지럽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간지러워지는 것처럼, 건반을 누를 때의 촉감, 누르는 강도 등 신체적으로 경험하는 생리적 반응을 느껴 보는 것을 뜻합니다.

 

강한 의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운동선수가 근육을 기르듯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인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가 의지력에 대해 한 말입니다. 그는 자기암시와 반복 훈련을 통해 의지력을 향상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지만 약한 의지력 때문에 고민이라면, 강력한 자기암시를 걸어 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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