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력을 왜 알아주지 않는데?

정신의학신문 | 심금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탈감 사례 2-B: 내 노력을 왜 알아주지 않는데?

경수는 원했던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하였다. 이 대학에 수시 합격을 했을 때만 해도 이제야 원했던 삶이 열리고 세상이 내 편인 줄 알았는데……. 경수는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머리도 좋고 성실해서 중고교 시절 내내 전교권 등수를 놓치지 않았고, 인강 외에 학원이나 개인과외 같은 사교육 없이도 학교 공부를 잘하는 소위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이 뛰어난 학생이었다.

경수는 초교 고학년 이후로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휴대폰을 하는 식으로 시간을 허투루 보내 본 적이 없다. 쉬는 시간을 쪼개서 교과서를 읽고 문제를 풀었고, 야자 시간에는 자리에 앉아 고개를 들지도 않고 공부에 집중했다. 이런 수년간의 노력의 결과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원하던 A대학에 입학했으니, 삶의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하지만, 대학 생활 중 경수는 주변 동기와 선후배들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으로 늘 마음이 불편했다. 그들은 이미 소그룹 과외나 학원 등으로 입학 전부터 서로 알고 있었던 경우가 많았고, 서울의 어떤 외고 출신들은 학과 내 입학생들이 많아서 고등학교 동문 모임도 따로 있었다. 대학 시절 처음 접하는 영어 강의 때문에 수업 내용을 알아듣기도 벅차 하는 자신과 달리 이미 많은 친구들이 영어로 질문하고 레포트를 작성하는 것이 익숙한 모습에 난생처음 ‘그동안 나는 뭐 하고 살았나’ 싶은 자괴감이 들었다. 학창 시절 외국에서 1~2년 정도 체류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많았고, 외고 출신 친구들은 영어 토론이나 작문에 이미 익숙해서 별 다른 노력 없이도 한 학기 정말 빡 세게 노력한 자신보다 더 나은 학점을 받는 것을 보고는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느껴졌다. ‘애써 본다고 쟤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대학 시절 내내 매달 부담해야 하는 기숙사비와 생활비의 일부라도 벌기 위해서 알바를 병행해 온 자신과 달리 친구들은 돈 걱정 없이 학원 다니고 인턴 하며 스펙을 쌓는 걸 쓰라리게 지켜봐야 했지만, 부모님은 이런 사정도 모르고 좋은 대학 보냈으니 졸업 후 대기업 같은 번듯한 직장에 어렵지 않게 취직할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시곤 하였다. 점점 하염없이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커져 가면서 매주 아무 일도 없는 듯 전화하는 것도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안 그래도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하고 힘든데, 지방 캠퍼스를 본교와 통합한다는 얘기도 들리고, 공공기관 지역 인재 할당제니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니 해서 공공기관 취업은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주변 친구들처럼 로스쿨이나 일반 대학원 진학은 자신의 형편에 사치인 것 같아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데, 본인이 그나마 기대고 있는 학벌마저 요즘은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억울한 마음이 든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한 내 노력은 왜 인정해 주지 않는 거지?’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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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는 박탈감의 크기 

이전 글에서 우리는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친하거나 아는 사람에게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언급하였다. 친했던 친구들 중, 특히 나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나을 것이 없다고 느끼던 친구가 내가 그토록 애써도 잘되지 않던, 잘생기고 능력 있고 배경도 좋은 남자와 어렵지 않게 결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박탈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2주 전과 위의 사례 각각에서 주인공들이 느끼는 박탈감이라는 이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의 크기는 어떤 요인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나름 깊이 생각해 본 결과, 아래와 같은 박탈감 크기의 공식이 필자의 머릿속에서 정리되었다. 

 

박탈감 = 타인에 대한 나의 심리 x 대상(원하는 것)에 대한 나의 요인

      타인에 대한 나의 심리 = 잠재된 우월감(優越感) x 경쟁심(競爭心)

      대상에 대한 나의 요인 = 욕망 x 노력 

 

내가 느끼는 박탈감 = 

 타인에 대한 (잠재된 우월감·경쟁심) x 대상에 대한 (욕망·노력)

                           

즉, 내가 박탈감을 느끼는 상대방에 대해서 잠재의식 속에서 우월하다는 생각이 강할수록, 이기고 싶다는 경쟁심을 많이 느낄수록 박탈감을 크게 느낀다는 의미다. 상대보다 내가 열등하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누구나 인정하는 천재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학공식을 증명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때, 우리는 박탈감을 느끼기보다는 대단하다고 치켜세우고 박수 갈채를 보낸다. 이는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우월감도, 경쟁할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이미 마음속에서 나는 그보다 열등한 사람으로 비교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과거 조선시대와 같은 신분제 사회 때보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하고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가 인정되지 않는 (대한민국 헌법 제 11조) 한국 사회에 사는 우리는 더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과거 봉건사회에서는 사회적 신분에 따른 구별과 차별이 당연시되어서, 신분이 낮은 사람은 이미 열등함을 내재화하여 높은 신분의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고, 경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마음에 없었기 때문에 박탈감도 들지 않았다. 즉,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사람이었고, 그들은 신분제 속에서 자신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서 뭔가 빼앗겼다고 느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타인에 대한 나의 심리 외에, 대상, 즉 원하는 바에 대한 나의 요인이 박탈감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내 욕망이 강할수록 그리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이 많았을수록 내가 느끼는 박탈감은 커지게 된다. 나의 친구가 명품 백을 여러 개 가지고 있을지라도, 내가 명품 백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즉 욕망이 없다면 나는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만약 내가 명품 백이 너무 갖고 싶어서, 일년간 월급을 아끼는 등 각고의 노력으로 명품 백을 이제 하나 장만한 상황에서, 친구가 명품 백을 보세 가방 사듯이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에게 심한 박탈감을 안겨 줄 수밖에 없다. 

박탈감의 크기 공식을 2주 전과 앞선 사례들에 대입시켜 한 번 생각해 보자. 사례 1-A의 경우, 주인공은 친구 M보다 학창 시절 월등하게 공부를 잘했고 좋은 대학까지 나왔다. 주인공은 지적인 성취를 중요시하는, 어쩌면 지적 허영심이 큰 사람으로 M에 대한 잠재적 우월감이 큰 사람이고, M이 누리는 결혼 생활을 꿈꾸며 남모르게 수 년간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사례 2-B의 경우, 주인공 경수는 대학 입학 전까지 늘 인정받던 우등생으로 본인이 한 번도 열등하다고 느낄 환경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으로, 친구들에 대한 우월감을 부지불식간에 내재화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타인에 대한 잠재적 우월감은 거의 무의식적인 사고 · 감정 반응으로, 본인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 기저에 자리잡아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습관적, 자동적으로 타인에 대한 나의 반응에 영향을 주게 된다. 경수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첫 관문으로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 학교 시스템의 성적 경쟁에 익숙해지고 길들여 졌을 것이다. 즉, 경쟁심도 우월감처럼 내면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학교 친구들에 대한 우월감과 경쟁심이 크고, 좋은 직장에 대한 욕망과 노력까지 컸던 경수가 대학 졸업 무렵 맞닥뜨리는 현실에서 얼마나 큰 박탈감을 느낄지 이해가 되지 않는가?

 

삼성 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심금숙 원장

 

  • 연재 내용은 대부분 『내가 박탈감에 빠진 날: 박탈감에 빠진 누군가를 위한 책』 이라는 제목으로 2022년 교보문고 퍼플을 통해서 이미 자가출판 되었음을 밝혀 둡니다.
심금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박사
KAIST CLINIC 연구부교수, 초빙교수
저서 <내가 박탈감에 빠진 날 : 박탈감에 빠진 누군가를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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