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루비 브리지스(Ruby Bridges)는 1960년에 처음으로 백인 전용 초등학교에 입학한 6세의 흑인 여학생입니다. 루비 브리지스의 첫 등교 날에는 그녀의 등교를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습니다. 그녀는 자녀의 등교를 거부한 백인 학부모들 때문에 텅 빈 교실에서 홀로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녀의 용감하고 호기로운 이야기는 동화책과 영화로 제작되었고, 현재는 미국에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흑인과 백인의 분리 교육이 금지된 것은 1954년이었지만, 그로부터 6년이 지난 뒤에야 흑인 아이의 백인 학교 등교가 처음으로 시도되었습니다. 그마저도 고된 과정을 무릅써야 했죠. 법적으로는 보장 받았으나 사람들의 인식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까닭입니다. 제도상으로, 법적으로는 이해하지만, 흑인이 우리 백인 아이와 함께 학교에 다니길 원치 않는 그 당시 백인의 혐오 논리는 너무나 교묘하여 씁쓸한 기분마저 들게 합니다.

이처럼 차별과 혐오는 전혀 다른 문제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펼쳐집니다. 약자와 소외계층이 배제되는 사회는 그 시대와 사회 시스템이 건강하지 못함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건강함, 또는 행복함이라고 칭할 수 있는 사회란 어떤 사회일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여러분은 ‘게이행복지수(Gay Happiness Index)’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스웨덴의 IFN(산업경제연구소)에서 130개국 115,000명 이상의 게이 남성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 어떤 대우를 받아 왔는지, 삶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는지 조사하고 국가 도시별 제적, 법적, 정치적, 문화적 요인과 비교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게이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GDP(국내 총생산)가 높았습니다. 또한 민주주의 지수, 국제화 지수, 개방성 정도가 높으며 평등 권리가 잘 보장되어 있었죠.  반면에 공산주의 국가, 특정 종교 국가에서 게이행복지수가 가장 낮게 나타났습니다. 게이행복지수에 따른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게이를 포함하여 성 소수자는 소외당하고 차별받으며, 다수의 세계에서 손쉽게 배제됩니다. 이 결과를 곰곰이 생각해 볼까요? 사회 발전은 경제, 문화, 평등 등 여러 방면에서 드러납니다. 취약계층, 소수계층에 신체 및 언어폭력 등의 해를 가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며, 사회 일원으로 수용하는 사회일수록 발전된 사회인 것이죠. 즉, 취약계층이 행복한 사회일수록 개방적이고 열린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정의하기 쉽습니다. 각종 죽음 위험에 노출되던 원시인 시절 때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경계로 볼 수 있겠지만 현대는 다릅니다. 자신과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정의해야, 자신이 저지른 부당한 차별이 정당화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들과 나는 다르다. 그래서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

여기에서의 ‘다르다’는 말은 ‘틀리다’와 별반 차이가 없다. 나와 그들 사이에 선을 그어 버리고 배타적으로 대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척, 소수를 배제하는 폭력의 방식은 교묘하고 잔인합니다. 편 가르기, 사람들의 의견을 자기 쪽으로 수렴하기, 자신과 뜻을 함께하지 않을 경우 '옳지 않음'으로 몰아 버리는 행위를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다수의 목소리에 힘입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도록 말이죠.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근간은 개방적인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심리학자 Norman에 따르면, 개인의 개방성은 여섯 가지의 특성을 가집니다. 창의적인 상상력, 예술에 흥미를 보이는 심미, 높은 정서적 감수성, 새로움과 다양성의 추구, 지적 호기심, 새로운 가치에 대한 수용성이 그것입니다.

아이들은 질문이 많습니다. 그 질문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것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편견 없는 태도가 잘 드러납니다. ‘잠자리는 왜 날개가 네 개야?’, ‘저 사람은 왜 손이 구부러졌어?’, ‘저 벽은 왜 저렇게 높아?’ 이처럼 ‘개방성’은 판단하지 않고 열린 자세로 관찰하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루비 브리지스가 백인들만 다니던 학교에 처음 등교한 지 60년이 다 되어 갑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최소한 kkk(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의 극우비밀결사 단체)를 외치고 토마토를 던지며 시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이 그들의 행위가 지속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모습입니다.

미국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의 재임 기간에 “The Problem We All Live With(우리가 함께 사는 문제)”라는 작품이 백악관에 걸렸습니다. 미국의 유명 화가이자 삽화가인 노먼 록웰(Norman Rockwell)의 그림입니다. 그림에는 1960년, 한 흑인 소녀가 백인들만 다니던 초등학교에 보안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등교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녀가 누군지 압니다. 이 그림의 제목이 왜 ‘우리가 함께 사는 문제’인지도 말이죠.

‘개방성’의 시작으로 주위를 둘러보세요.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발견해 보세요. 여러분은 하루에 장애인을 몇 번 마주치나요?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장애인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기에 길거리에서 잘 마주칠 수 없는 것일까요? 동성 연인은 왜 길거리에서 키스하지 않는 것일까요? 펫숍의 아기 동물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질문거리가 생겨났다면, 이제 그 질문을 풀기 위해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너무나 분명하게도, 여러분의 시야가 많은 곳에 닿을수록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전문의 홈 가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