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흔히들 허언증을 단순히 허풍이나 과장이 심한 경우 또는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과적으로 공식적인 진단명은 뮌하우젠 증후군, 공상 허언증이라고 합니다. 정상인이나 사기꾼이 어떤 의도(잘난 척, 자기 과시, 금전적 이득이나 회피)를 가지고 과장이나 거짓말을 하는 것과 달리,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는 자신이 왜곡한 사실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거짓말을 실제로 믿게 되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공상을 뒷받침하기 위한 부연설명을 지어내기도 하지요.

좋은 사례로 영화 리플리가 있는데,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가깝습니다. 허언증의 정의를 좀 더 넓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보자면 자존감, 열등감, 애정 결핍, 그리고 관종이란 말과도 부합되는 점이 많습니다.

관종이란 관심 종자의 줄임말로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가 병적인 수준에 이른 상태를 말합니다. 2010년 이후로 청소년들 사이에서 많이 쓰인 이 단어는 방송을 통해 널리 일반화되면서 고유명사처럼 쓰이게 되었습니다. 본래의 의미보다 부정적인, 지칭한 상대방을 놀리고 무시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지요. 정신과에서는 ‘허언증’과 관종의 의미를 연극성 인격성향, 해리성 기억의 인지 오류, 작화증 등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허언증은 보통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거짓말과 현실 부정으로 시작합니다. 수학시험에서 70점을 맞았는데 엄마에게 혼날까 봐 90점을 맞았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칩시다. 성적표가 집으로 올 때까지 이 사실을 숨깁니다. 엄마가 ‘진짜 90점 맞은 게 맞아?’ 재차 물어봤을 때 조금 떨리지만 ‘응 90점이야’라고 대답합니다. 성적표가 도착할 날이 다가오면서 고민합니다. “이제라도 사실을 얘기하고 잘못했다고 할까? 아니 거짓말까지 들키면 더 혼날 텐데...”

용서받는 일은 힘들고 까다로워 보이지만 반면, 새로운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은 무척 쉽습니다. 70점을 받은 진짜의 나, 엄마에게 혼날 게 뻔한 나는 무의식 속에 밀어 놓은 뒤에 90점을 받은 나, 엄마가 칭찬해주는 나를 의식적으로 진짜라 믿으려고 합니다. 누가 ‘너 90점 아니잖아. 왜 거짓말해?’라고 지적하면 그 내용을 반박하고 비난함으로써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과정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실제로 90점을 맞은 것과 다름이 없다’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지요.

 

관종, 허언증을 연극성 인격장애(histrionic personality disorder)로 이해하려는 견해도 있습니다. 연극성 인격성향을 지닌 이들은 주변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감정표현이 무척 과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자주 하며 화려한 외모를 고집합니다. 이들의 내면과 감정의 깊이는 무척 피상적입니다. 마치 자신이 드라마 주인공처럼 행동하고 항상 모든 일에서 관심받길 원하는데, 그 수단으로 자신의 외모나 성적 매력을 과하게 어필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겉모습, 외모, 물질적인 측면에 과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상대의 감정을 자주 무시하고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따라서 이들의 인간관계는 진실되지 못하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래 유지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연극성 성향을 마음껏 표현하고 발산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SNS입니다. 자신의 계정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것만으로 관심을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고, 피드백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종들에게 이보다 좋은 놀이터는 없지요. 다만 그들을 기쁘게 하는 동시에 무척 슬프고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는 파라미터가 존재하는데, 바로 좋아요와 팔로워 숫자입니다.

이들이 스트레스와 박탈감을 주는 SNS를 차마 끊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관계에도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요? 소통과 고립, 단절과 외로움, 비교와 열등감이 혼재하는 SNS라는 공간에서 이들은 끊임없이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무시당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SNS에 집착하는 것, 남들의 평가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집착하는 성향은 일종의 행위 중독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행위 중독의 정의는 직업적, 사회적 손상이나 내성, 금단 증상 같은 부정적인 결과가 뻔히 보이면서도 특정 행위를 반복하게 되는, 통제력을 잃은 상태를 말합니다. 도박이나 게임중독, 쇼핑이나 섹스 중독처럼 말이지요.

왜곡된 가치관이 만들어낸 비교는 조급함과 불안을 낳고, 자신의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게 합니다. 내 삶이 가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타인에게 맡기게 되고 타인의 관심이 행복의 척도가 되는 것이지요. 팔로워 숫자, 댓글 수에 휘둘리게 되면서 정작 자신의 일상과 해야 할 일에 대한 집중력은 점점 떨어집니다. 주의가 산만해지고 무언가를 이루려는 열정 또한 조금씩 사라지면서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남들이 인정하는 모습, 부러워할 모습에만 집착하고 흉내 내려합니다.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관종과 허언증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1. 남들의 관심이 자존감을 올려주지는 않습니다.

SNS의 댓글이나 좋아요가 주는 이익은 아주 제한적입니다.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질 수는 있겠지만, 관심을 보이는 댓글만큼 악플의 수도 늘어날 것이며 칭찬과 호기심만큼 불쾌한 욕도 늘어나게 될 겁니다. 대중은 냉정하고 변덕스러우며 피상적이기 때문에, 그들의 반응에 지나치게 즐거워하거나 실망할 필요도 없으며 자존감의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2. 겉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내면을 단련하자. 

3km 뛰어보기, 등산해보기, 일기 쓰기, 간단한 요리 만들기를 해봐야 합니다. 고작 그런 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고 얻게 되는 성취감의 축적이야말로 내 삶을 더 생생하고 긍정적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화려한 것만 쫓는 삶, 겉모습에 집착하는 삶이 아닌 실제의 내 삶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명품, 해외여행, SNS에 올릴 셀카나 인생샷이 아니라 오늘 자신의 일상에 좀 더 집중할 때, 나의 자존감은 조금씩 높아지고 발전하게 됩니다.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삶이 아닌 나에게 충실하고 진정성이 있는 하루하루를 사시기 바랍니다.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신촌세브란스병원 전공의
전) 서울대병원 본원 임상강사, 삼성전자 부속의원 정신과 전문의
현)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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