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염태성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막 30에 접어든 여성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꿈꾸던 삶을 20대 후반~30대에 이루리라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30대가 되었는데 이루지 못했고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듯한 느낌입니다.

물론 제 주변에는 제가 바란 그대로를 실현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볼 때면 배가 아파서 죽을 것 같습니다. 20대 초반에는 그래도 하나 잘하는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자신감이 많이 떨어집니다.

 

제가 외모 콤플렉스가 심한데 그 콤플렉스를 공부로 메꾸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세상에는 예쁘고 날씬한 데다가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고 학벌도 좋은 사람이 넘쳐나더군요. 특히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SNS만 보더라도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미칠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회피가 심했습니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데 잘 지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늘 남이 다가와 주기만 바랐습니다. 성격도 소심한 편이라 먼저 다가가지도 않았습니다. 중학교 때는 왕따만 아니었을 뿐이지 아이들이 같이 지내고 싶어 하는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잘 못 지내고 대신 컴퓨터 게임이나 만화로 풀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회피가 30살인 지금까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연애하고 싶고 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직접 하는 대신 매체를 통해 풉니다. 그런데 그게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저도 알아서 결국은 허무해지고 맙니다. 에너지도 많이 떨어진 것 같은 게 뭔가 조금 하고 나면 아무것도 못 하겠고 먹거나 자거나 해야 합니다. 결국 활동량은 줄고 살은 찌고 악순환입니다.

이게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도 의문인 게 이 정도면 정신과를 가야 하는지, 아니면 생활이라도 규칙적으로 하면 나아지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서 살을 빼고 관리한다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품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예 그런 것이 없습니다. 살을 뺄 의지도 안 생기고요. 하지만 마음으로는 늘 제 모습이 싫고 답답하고 짜증이 납니다.

 

이런 상태에서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고 외모도 상위권인 사람들을 보면 정말이지 죽고 싶습니다. 이렇게 살아봤자 뭐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남들이 잘났다고 저도 잘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으로는 잘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그런 게 큰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제가 3 정도라는 것을 알지만 마음은 10을 바라고 10과 동등한 대접이나 취급을 받고 싶은 것 같습니다.

가족에게는 이런 힘든 소리를 못 하겠습니다. 첫째이기도 하고.... 제가 약한 소리를 하면 부모님이 슬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10~20대 때 떵떵거리면서 가족을 무시하기도 했고요. 그게 더 큰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네요..

인생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저 밥 벌어먹고 사면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너무 아까워서 또 살기가 싫어집니다.

 

두서없이 그냥 답답해서 글을 남겼습니다.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정신과라도 가봐야 하나 고민인데 실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라 우울증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아무 말씀이나 해주세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광화문 숲 정신과 염태성입니다.

세부적인 요소들은 다르겠으나 글 써주신 내용과 비슷한 문제들로 괴로워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저희 병원에 찾아오시는 분들 중에서도 유사한 고민을 이야기하시는 경우를 종종 접하곤 합니다. 몇 번의 상담, 또는 조언이나 위로의 글로 이런 문제들을 털어버리실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항상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우리는 자본과 소비가 중심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기술발전과 함께 따라온 각종 미디어, 광고들이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부추기고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팀 캐서(Tim Kasser)는 외면적 가치인 돈, 성공,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보다 내면적 가치인 유대나 마음의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밝혀냈고, 가능하다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등 자극을 주는 매체들을 멀리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글쓴이분께서도 스스로 상태가 충분히 좋아졌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나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유발하는 SNS 등 외부 자극들은 의도적으로라도 피하는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이를 영어로 ‘procrastination’이라고 번역하는데, 가령 아마존 같은 미국 웹사이트에서 이 단어를 검색해보면 일을 미루는 것을 개선하기 위한 수많은 실용서가 검색됩니다.

일을 미루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일이 재미없거나 완료하는데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게임을 하는 것이나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들은 미루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을 알지만 구체적인 방법이나 체계를 배우기 위해 개인 강습을 받듯이, 일상에서 미루는 일들에 대해서도 우선순위를 매기거나 계획표를 써보고 수행하는 등 행동을 통해 교정을 시도하는 방법이 있고 이를 ‘인지행동치료’라고 부릅니다. 인지행동치료에 대해서도 많은 참고서들이 나와 있으니, 혼자 혹은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이를 시도해 보시는 것도 방법일 듯합니다.

 

약물치료의 역할에 대해서도 부가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현대 정신의학에서 대부분의 경우 약물치료가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치료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 처하신 상황에서 약물의 역할은 위에서 말씀드린 내용들을 좀 더 수월하게 진행하실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물론 약물치료가 만능은 아니고,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으니 투약에 대해서는 전문가와 충분히 상의하신 후에 결정하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인생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습니다. 만약 지금 내 인생이 불만족스럽다면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해결책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노력을 통해 스스로를 바꾸도록 시도하는 것, 아니면 내가 태도나 마음가짐을 바꾸어서 마음이 편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두 가지 방법 중에 하나가 더 좋거나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택이 나의 책임인 만큼 누구도 이에 대해 판단할 권리는 없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더 당당해질 필요는 있습니다.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내가 인생에서 선택한 것들은 나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효과적인 방법을 통해 살아있다는, 살아간다는 행복을 되찾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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