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이규홍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22살 대학생입니다

우연히 이런 곳을 알게 되어 글을 남깁니다     

지금은 스스로 느끼기에 매우 건강한 상태입니다.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쓸 에너지가 있지만 그렇기에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느꼈다는 게 스스로 거짓말 같긴 합니다.     

그리고 이런 거짓말 같은 상황이 매달 반복되고 있습니다. 힘들 땐 ‘이번엔 진짜 죽겠다 상태가 약간이라도 호전된다면 바로 병원에 가야지’ 싶다가도 상태가 좋아지면 병원 갈 생각이 싹 사라집니다. 당연하지만 살만 하니까요.     

 

힘듦의 정도는 때마다 다르지만 최근엔 삶의 의욕을 매우 잃는 방향이었습니다. 항상 생각이 왜 살아야 할까 하는 쪽으로 끝났고, 앞으로 남은 인생이 형벌같이 느껴졌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정말 쌍욕이 나오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냥 아침이라는 사실이 고욕이었어요.

이번 힘든 시기엔 처음으로 운동을 다녔는데 운동을 하다 울었습니다. 그냥 슬프고 울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더군요.

그 밖에 3시간 내의 불면, 30분마다 깨는 불면 혹은 과수면 등등 매번 다른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동일하게 느끼는 것은 에너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일 에너지가 당장 기본적인 신체활동(숨쉬기, 눈 깜빡이기 등)을 하며 오늘 하루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 하기에 딱 알맞은 느낌입니다.

저 자신이 아닌 주위에 약간이라도 에너지를 소모해버리면 하루가 버겁습니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엔 항상 주변인들과 연락을 일절 하지 않습니다. 못하는 것이죠. 단순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고 이런 것 마저 에너지 소비가 심하게 느껴집니다.     

 

말이 길었습니다만 제가 궁금한 것은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하는 겁니다. 매일 힘든 것도 아니고 위와 같이 죽을 것같이 힘든 때가 있는 반면 현재처럼 힘들었던 게 거짓말 같을 정도로 괜찮은 때도 있어 우울증이나 질환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왜 이러는 걸까요? 질환이 있다면 치료를 해야 하는 수준인가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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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강남 푸른 정신과, 이규홍 전문의입니다.

남겨주신 글 읽어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증상들을 상세하게 적어주셨는데요. 무력감, 슬픔, 과수면과 불면 등 현재 사연자님이 겪는 증상들의 원인이 우울증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 면담이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우울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지금 사연자님이 일상에서 해볼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우울증(Depressive Disorders)은 슬픔, 공허감, 짜증의 감정과 그에 수반되는 신체적, 인지적 증상으로 인해 개인의 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되는 부적응 증상을 의미합니다. 우울증의 원인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완전히 규명되진 않았습니다. 개인이 가진 성격과 같은 심리적 원인, 부정적인 생활사건과 스트레스 같은 사회적 원인, 뇌 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과 같은 생물학적 원인, 기저에 있던 신체적 질환의 원인들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우울증을 초래할 수 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글에는 사연자님에게 주요한 스트레스 사건이나 성격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재 사연자님의 우울 증상에 기여하는 심리적, 사회적 요인을 유추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왜 우울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어느 정도로 증상이 심각한지 이해하기 위해서, 일상 유지 기능에 얼마나 큰 손상을 주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치료적인 개입이 필요한 수준의 우울증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일시적인 우울 상태라면 대부분 며칠 내로 괜찮아집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되면,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식욕 감퇴나 불면 또는 과수면의 생활 습관이 나타납니다. 세 번째 특징으로는 주관적 고통이 심해집니다. 그리고 이 상태가 낫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삶의 의욕이 현저히 저하됩니다. 네 번째 특징으로는 사회적, 직업적 역할 수행에 심각한 지장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집중력 저하가 일어나 일을 해결하기 위한 실행 능력도 매우 떨어집니다. 현재 학생이라면 공부를 할 수 없을 정도일 때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판단하는 것이죠.     

 

사연자님이 보기엔 어떤가요? 우울감에 사로잡힌 상태와 갑자기 괜찮은 건강한 상태를 번갈아 경험하고 있어 아마 혼란스러울 겁니다. 자신의 상태가 ‘거짓말 같다’는 표현을 하셨는데요. 사실 괜찮은 모습과 우울한 모습은 둘 다 충분히 경험할 만한 일입니다. 사람이 한결같은 모습을 24시간 계속 유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우울감 이외에 다른 감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이는 마치 날씨처럼 계속 변화합니다. 따라서 사연자님이 그때그때 경험하는 감정 상태를 잘 관찰하고, 맥락을 잘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자신이 이해할 때 수용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이 현재는 감정이 변하는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울하다 기분이 괜찮아지는 감정의 변화가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은 ‘왜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 이전에 어떤 생각들을 하셨는지 기억하나요?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이나 장면을 떠올리며 삶이 형벌처럼 느껴졌는지요? 아마 우울감과 무력감을 느끼기 전에 빠르게 스치는 생각들이 있었을 겁니다. 많은 분이 이 생각들을 잘 기억해내기 어려워합니다. 분명히 감정을 느끼기 전에 자동적으로 스쳤을 생각들이 있지만, 자각하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어갑니다. 물론 수많은 생각들을 모두 검토하고 통제할 수는 없지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이 자신의 우울을 다루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떠한 생각이 특정 감정을 만들어내는지 그 프로세스를 관찰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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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머릿속에서 혼잣말로 하는 ‘자기 대화(Self Talk)’를 합니다. 이 중에는 정말 사실인지 확인해보지 않고 자신에게 확신을 갖고 말하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신념을 바탕으로 하는 문장들은 다양한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지요. 그리고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하루에 최소 70번 이상 자신에게 이와 같은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난 누군가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돼’ ‘난 그다지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야’ ‘모든 일이 내 기대대로 되어야 해’ 등 자신이나 타인, 세상에 대해 가지는 특정 신념으로 구성된 문장 예시인데요. 사연자님이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는 내용도 있지만, 아직 선명하지 않은 내용도 있을 겁니다.      

부정적인 자기 대화의 흐름을 잘 알아차려야, 느껴지는 감정들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사연자님께서 자기 대화를 세심하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감정 일기 쓰기’를 추천합니다. 날짜와 구체적인 상황을 적고 그 당시에 사연자님이 느낀 신체 감각을 적습니다. 어깨가 굳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런 식으로요. 그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기록합니다.

꾸준히 일기를 적어가다 보면 사연자님이 자주 하는 생각과 감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 잘 떠오르지 않으면, ‘감정 단어’를 검색해보세요. 다양한 감정 목록이 나옵니다. 분명 슬픔, 우울감 이외에 더 많은 감정을 느꼈을 겁니다. 감정들이 명료해지면 일단 수용해주세요. 사실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면 안 되고 없애야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 감정들이 존재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연자님께 중요한 무언가를 알리는 신호일뿐입니다. 사연자님이 느낀 감정을 싫다, 좋다 판단하기 전에, 인정해주세요. 그리고 감정 일기를 쓰다 보면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도 보일 겁니다. 그 안에서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신념이 담긴 문장들을 찾아내실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이 ‘사실’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의심하면서 이를 현실적이고 유연한 생각으로 대체하는 연습을 해볼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하지 않고, 직접 글로 쓰면서 시각화할 때 더욱 효과적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우울증인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연자님의 생각의 흐름, 감정에 대해 이해하는 연습을 하면, 똑같은 상황이 찾아와도 이전보다 덜 괴로울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적절히 개입하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는 질환입니다. 혹시 사연자님이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지치고 무력한 상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겠지요. 전문가와 만나시면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재 일상 대인관계에서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철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심리적 에너지가 많이 부족한 상태에 있습니다. 번아웃인지 우울증인지 구분을 해야 할 텐데요. 혼자서 이런저런 관련 책과 자료를 찾아보는 것보다는 전문가를 빨리 만나보시면 좋겠습니다. 현재 대학생이니 교내에 학생생활 상담소가 있을 겁니다. 심리검사를 해보시고 해석상담을 받으며 현 상태에 대해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아보세요. 그리고 괜찮다면 지속적으로 심리상담을 받아보세요. 사고나 감정을 관찰하는 연습은 혼자보다 전문가와 함께 할 때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연자님의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 졸업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료
METTAA CBT / Schema Therapy E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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