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원래도 잠을 많이 자는 편이긴 합니다. 어렸을 때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피처로 잠을 택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성인이 되고, 독립해서 자취하면서는 좀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자취방이라면 내가 몇 시간을 자든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평일에 못 잤던 잠을 주말에 몰아서 더 자야할 것 같은 보상심리도 있고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게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주말이 되면 눈을 뜨지 못하겠어요. 일어날 의지도 없고요.

열한 시 반에 일어나면 ‘아, 오늘은 오전에 일어났네. 좀 일찍 눈떴군.’ 하는 정도이고요. 주로 한 시 반, 두시 반에 눈을 뜨고 어느 날은 네 시 반에 눈을 뜨기도 해요. 해가 다 질 때쯤 눈을 뜨면 진짜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쓰레기같이 느껴져요.

원래도 늦게 일어났지만, 요 몇 달은 주말이 되면 오후 한두 시쯤 일어나서 대충 밥 먹고 한두 시간 정도 깨어 있다가 다시 쓱 잠들어서 해가 지고 눈을 떠요. 그러면 하루에 거의 두세 시간밖에 안 깨어 있는 셈이더라고요. 그 깨어 있는 시간도 거의 무의미하게 인터넷을 보며 보냅니다. 원래도 성향이 조금 게으르고 무기력한 것은 있었지만, 하루에 절반 넘게 자고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관련된 문제로 짧게 심리상담센터를 다니다가 4~5회 상담을 받아 보니 좀 괜찮아진 것 같은 기분, 책이나 운동 정도로 내 기분을 조절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추가로 다니지 않았는데… 다시 상담센터를 가 보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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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 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을 도피처로 택하던 습관이, 성인이 되어 독립하면서 주말이면 과수면 하는 패턴으로까지 나타나서 고민되는 상황이시네요. 더불어 주말이면 이렇게 과수면 하는 현재의 패턴이 우울증의 한 증상인 건지 질문해 주셨군요.

우울증을 우리는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합니다. 보통은 우울증에 걸리면 나른하고 무기력하며 부정적인 사고가 동반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무엇보다 우울증은 단순히 마음이나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아픔과 괴로움, 불안과 공포 등을 느끼는 뇌의 영역 자체가 이상 반응을 일으키는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면 우리 뇌가 긍정적인 사고보다는 부정적인 사고에 초점을 맞추며, 슬픔은 더욱 슬프게, 고통은 더욱 고통스럽게 느끼게 하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됩니다. 

여기서는 우울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대표적인 우울증 증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부정적 감정: 불안, 공포, 고독, 죄책감, 적대감, 짜증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증가하고, 긍정적 감정이 줄어든다.

2. 행동기능장애: 활동성이 줄어들고 행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3. 신체적 증상: 수면장애, 식욕 변화 배변장애, 나른함, 통증 등이 나타난다.

 

이 밖에도 인지 기능이 떨어져 집중력이 감퇴하고, 사고의 장애가 나타나기도 하며, 활력이 떨어지면서 공부나 일을 하는 데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또한 보통은 수면장애의 일환으로 불면증과 식욕 부진을 보이지만, 반대로 지나친 식욕 증대와 수면 과다 증상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울증 환자의 90%가 불안 증상을 호소할 만큼 불안감이 높아지며, 두통과 변비, 애매한 신체 동통이나 두근거림, 식은땀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울증을 진단할 때는 치료적 접근을 달리하고,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우울증 유형을 정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울증 유형은 크게 우울 삽화만 나타나는 ‘단극성 우울장애’, 조증 삽화와 우울 삽화가 모두 나타나는 ‘양극성 장애’로 나뉠 수 있으며, 단극성 우울장애의 경우, 우울증의 심각성에 따라 심각한 우울 상태를 보이는 ‘주요우울장애’와 경미한 우울 증상이 만성적으로 이어지는 ‘기분부전장애’ 등의 하위 유형으로 또다시 구분됩니다. 

그 밖의 형태로 ‘계절성 우울증’과 ‘비정형 우울증’ 등이 있습니다. 그중 계절성 우울증은 특정 계절, 대부분은 가을이나 겨울에 우울해지는 증상을 보이며, 비정형 우울증의 경우 일반적인 우울증 증상과 달리 과수면이나 과식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비정형 우울증에 대해 좀 더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만성화나 장기화되기 싶고, 양극성 장애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회피성 성격장애와 경계성, 자기애성, 편집성 등의 성격장애가 동반되는 경우도 있어서 주의 깊은 진단을 필요로 합니다. 

비정형 우울증의 치료에 있어서는 필요한 경우 약물치료가 이루어지며, 무조건 휴식을 취하면서 회복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환자의 회피적 경향성이 더욱 고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분을 고양시켜 현실에 맞설 수 있는 마음가짐을 기르며 현실적으로 노력해 나가는 훈령형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사연자님께서 호소하시는 과수면 증상을 비정형 우울증에서 보일 수 있는 주요 증상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울증으로 진단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진단 기준에 부합해야 하며, 전문가와의 면밀한 상담을 통해 판별이 가능하므로, 사연자님께서 서술해 주신 내용만으로 우울증으로 인한 증상인지 명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다만, 과수면 증상에 잇따르는 무기력감 및 그로 인한 자기 비하 사고 등이 마음에 걸립니다. 또 과거에 스트레스와 불안감 문제로 상담을 받으셨고 당시 스스로 기분 조절이 가능할 것 같아 상담을 중단했다고 하시는데, 지금은 그때 인식했던 문제들이 잘 조절되고 있는 상태인지도 궁금합니다. 

기분장애는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성과도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기 쉬우며, 우울증에 걸리면 염증 반응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특별한 신체적 질병이 없는데도 백혈구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어 몸이 나른하거나 쉽게 피곤해지는 것이죠.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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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연자님께서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피처로 잠을 택했다고 말씀하셨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평소 몸이 나른하거나 쉽게 피곤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스트레스 관리 및 해소 방법이 수면 쪽으로 너무 치우친 것 같은데요, 수면 이외에 사연자님께 잘 맞는 다양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으셔서 생활에서 실천해 보실 것을 권유 드립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수면을 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수면을 잘 취하는 것만큼이나 몸과 정신 건강에 중요한 것도 없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건강한 수면 습관, 즉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쉬는 건강한 생체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부터 뇌를 보호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사연자님께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택하신 수면 시간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이것이 오히려 건강한 수면 습관을 방해하고, 스트레스를 가중하는 역기능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 상황이 문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특히 주말이면 무너지는 사연자님의 생활 리듬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신체에서 일정하게 조절하는 생활 리듬을 ‘일주기 리듬’이라고 합니다. 이 일주기 리듬은 생물학적으로 뇌 안의 호르몬인 멜라토닌에 의해 조절되며, 멜라토닌은 저녁 무렵부터 시작해 새벽 무렵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다 아침이 되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멜라토닌 분비가 건강한 사람은 늦은 저녁에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해 새벽까지 깊은 잠을 자다 아침이 되면 개운하게 깨어납니다. 이렇듯 멜라토닌 분비가 건강해야 생활 리듬이 잡힌 균형 있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많은 현대인들이 멜라토닌 분비의 균형이 깨진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중 밤에도 밝은 환경에서 지내거나, 늦은 시간에 TV나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우리 눈에 밝은 빛이 들어오게 함으로써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하게 됩니다. 더불어 밤늦은 시간대의 운동이나 야근 등 활발한 신체활동도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해 일주기 리듬을 깨뜨립니다. 

이럴 때는 깨져버린 생활 리듬을 제자리로 맞추기 위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밤 시간대에 TV나 스마트폰ᅠ화면을 보거나 신체활동을 하는 걸 최대한 줄여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고, 아침 시간에는 밝은 햇빛을 받으며 산책하거나 운동을 해서 아침 시간대의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을 꾸준히 하다 보면 조금씩 일주기 리듬의 균형을 찾는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따라서 지금은 건강한 수면 습관을 만들고 유지하려는 사연자님의 각고의 노력과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일주기 리듬을 수월하게 조절하기 위해 의사의 진료를 통해 뇌에서 멜라토닌의 분비를 돕는 약물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약의 도움을 받더라도 그 리듬을 지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건강한 수면 습관을 지키려는 꾸준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건강한 수면 습관을 만들기 위한 사연자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수면이 지속되거나 일상에서 무기력감이나 불안감 수준이 높게 나타난다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소 또는 수면 클리닉 등에 방문하시어 적절한 도움을 받으시면서 개선해 나가시는 방법 또한 추천 드립니다. 앞으로 ‘잠이 보약’이 될 만큼 적당한 수면 시간만으로도 에너지를 충전해서 깨어 있는 시간 동안 알차고 활력 있게 지내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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