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성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50대 주부 수잔. 요즘 삶의 의욕이 없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친구들과의 티타임도 마다합니다. 대학 간 딸이 함께 쇼핑을 가자고 해도 가기가 싫습니다. ‘내가 죽으면 남편과 딸 아이는 괜찮을까?’ 이런 생각들이 하루 종일 머리 속을 맴돕니다. 소화도 되지 않고, 두통이 심합니다. 한 달 동안 이런 증상들이 지속되고, 가족들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심한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잔씨가 걱정되어 가족들은 병원 진료를 권유합니다.

 

집 근처에 정신과 의원을 찾았습니다. 의사를 만나 면담을 했습니다. 남편과 최근 다툼에 대한 이야기 등 30여분의 면담과 심리 검사 후 약물 복용을 하자고 합니다. 의사는 주요 우울 장애의 경우 약물 치료와 함께 심리치료를 할 때 치료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심리 치료에는 정신 분석 치료, 인지 행동 치료, 변증법적 행동 치료, 대인 관계 치료 등이 있다고 합니다. 의사에게 가장 적절한 치료방법을 선택해서 치료를 해달라고 합니다. 의사는 약물 치료와 대인관계 치료가 효과적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대인 관계 치료는 의료 보험에서 수가 인정이 되지 않아 치료비가 많이 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약물 처방만 받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개인 병원을 운영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닥터리. 50 대 주요 우울 장애를 앓고 있는 여성 환자가 찾아 왔습니다. 환자는 현재 치료의지가 약하고, 현재 자아가 약해진 상태입니다. 이를 고려할 때 심층 정신분석치료는 환자에게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환자의 증상이 최근 남편과의 관계 문제 이후 시작된 점을 고려할 때 약물 치료와 대인관계 치료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민이 됩니다. 우리 나라 의료보험은 약물 치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등에 국한되어 그 수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인관계 치료를 위해서는 심리 검사 도구 비용, 치료비용 등 모두 비급여로 처방을 해야 해서 환자의 부담이 늘어납니다. 주요 우울 장애에서는 약물 치료와 함께 적절한 심리 치료를 함께 하는 것이 치료 기간을 줄이고, 재발의 예방에 중요합니다. 환자는 결국 비용 문제로 대인관계 치료는 거부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원인 중 하나로 우리 나라 의료 보험 제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의료 보험은 세계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가장 단기간에 전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했습니다. 전국민 의료 보험을 달성하기까지 독일이 100여년, 일본이 36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는 1966년 의료보험법 제정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26년, 1977년 직장의료보험 실시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불과 12년만에 전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1975년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비율이 40%에서 2005년 전국민 연간 외래 치료 서비스 이용회수가 14.1회로 OECD 국가 중에서도 최상위 그룹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오히려 의료 서비스 과다 이용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 보험의 저부담-저급여-저수가 정책은 이처럼 의료의 양적인 측면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현재는 의료 보험의 양적인 발전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국민의 소득과 삶의 질이 상승했습니다. 의료 보험의 질적인 부분에 대한 불만이 실제 임상 현장에서 매우 높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경우 ‘정신과 가면 약만 주는 것 같다’, ‘심리치료센터를 방문했더니 제대로 교육 받지 않은 사람이 하는 것 같아서 돈만 버렸던 것 같다'와 같은 반응이 환자들에게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들입니다.

 

저부담-저급여-저수가의 우리 나라 의료 보험이 가진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박리다매식 진료, 의료 보장의 어려움, 이로 인한 비급여 진료의 팽창 등 문제가 나타납니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하는 시점입니다. 저부담-저급여-저수가 체계는 분명 양적인 측면에서 이점은 많습니다. 하지만, 의료 서비스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서도 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의료 보장성이 확보되지 않아,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쉽게 받을 수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가 유의하다고 입증된 근거 기반 심리 치료를 우리 나라 병원에서는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비용 부담이 많거나, 비용이 낮은 사설 심리 센터를 찾았을 때 제대로 된 양질의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3년 ‘한국인의 정신건강에 대한 OECD 권고안’에서도 우리 나라에서는 '심리 치료 접근성 증대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또한, '경미하거나 중등도의 정신질환에 대한 근거 중심 접근은 임상진료지침 활용과 의료 보험 지급을 통해 장려할 경우, 매우 높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라고 권고하였습니다.

 

OECD 자살률 1위.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높아지는 우리 나라의 현재.

임상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의료 보험.


우리 나라 의료 보험이 가져온 의료의 양적인 발전과 더불어서, 우리 나라의 자살률을 낮추고 국민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이제는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이성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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