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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심리치료 - 변증법적 행동치료프로이트를 넘어서 제 4편
이성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1.11 07:41

[정신의학신문 : 이성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수지씨는 화가 나면 욕설과 비난, 폭력적 행동을 퍼붓는다. 항상 외로운 마음을 느끼는 수지씨는 남자친구의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을 쓴다. 바쁜 회사일로 연락을 제때 하지 못하는 남자친구를 보고 ‘남자친구는 내가 안중에도 없고 이기적이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떻게 내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그럴 수 있냐. 남보다 못하다’라는 생각을 하며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를 때면 ‘헤어지자. 난 도저히 힘들어서 너랑은 끝내야 겠다’라는 말을 하며 앞에 있던 병을 남자친구에게 던지기까지 했다.

 

연애 초반 수지씨의 남자친구는 ‘미안하다. 내가 니 마음을 몰라줬다’ 며 수지씨를 달래줬다. 그러나 수지씨는 사소한 남자친구의 실수에도 ‘사람이 변했다.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하며 화를 냈다. ‘내가 이렇게 너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며 커터칼로 손목을 긋기도 했다.

 

수지씨는 대인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 연애를 시작하는 시기에 상대를 지나치게 이상화(理想化)하여 미치도록 좋아하지만, 자기를 조금이라도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눈치가 보이면 곧 몹시 멸시하고 심한 분노가 폭발하여 결별을 선언하고 만다. 수지씨는 늘 고독과 공허감 속에 빠져있다. 정체감의 불확실성으로 남의 흉내를 낼 때는 마치 그 사람이 된 듯 스스로도 착각을 할 정도이고, 한 직업을 일정하게 가지지 않고, 자주 바꾼다. 겉으로는 아무도 그녀를 불행하게 보지 않지만, 그녀는 절망감에 빠져 수차례씩 자살기도를 반복하곤 한다.

 

전체 인구의 2% 정도에서 발생하는 경계성 인격장애의 특징이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반복되는 자살 기도와 급변하는 환자의 태도로 인해 정신건강 전문가들에게도 여간 부담이 되는 병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91년 워싱턴 대학교의 마샤 리네한 (Marsha Linehan)이 변증법적 행동치료( Dialectical behavior therapy ) 를 발표하면서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들의 치료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렸다.

 

오늘은 현대 심리 치료들 중 특히 이 경계성 인격장애 및 자살, 자해 행동에 그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변증법적 행동치료(Dialectical behavior therapy : DBT) 에 대해서 인지 행동 치료 및 변증법적 행동치료의 전문가이신 박준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준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한양대의대를 졸업하고, 국립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의를 거쳐 서울대학교 어린이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강사를 역임하고, 2007년 두드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개원했다. 주요 관심분야는 인지행동치료(수용 전념 치료, 변증법적 행동 치료 등) 및 소아 정신과, 품행문제, 자살 분야이다.

 

Q : '변증법'. 기존의 인지 행동치료와는 다른 치료법이라는 걸 명확히 드러내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변증법은 어떤 의미이고, 이 치료에서는 어떻게 응용되고 있나요?

 

변증법에서는 한 가지 주장을 ‘정(thesis)’이라고 한다면, 반대되는 주장에 해당하는 ‘반(antithesis)’이 나타나고, 이 둘이 갈등을 하다 보면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주장을 초월하는 ‘합(synthesis)’이 나타나면서 끊임없이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변증법적 행동치료에서 보자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잡는다’ 는 주장이 ‘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니 낮에 피곤해서 일을 집중해서 못하겠더라’가 ‘반’이 될 것 입니다. 이 두 가지 주장들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싸우는 가운데 합을 찾지 못하면 이를 변증법적 실패(dialectical failure)라 하며 상반된 양극단 사이를 오가는 상태가 됩니다.

 

부모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과 너무 증오하는 마음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 동시에 존재할 때 그리고 그 두 마음이 극도로 갈등할 때, 그의 행동은 매우 기복이 심하고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습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안부를 걱정하며 건강을 챙겨주다, 잠시 뒤엔 ‘제발 죽어버리라!’며 독설을 쏟아낼 지도 모릅니다. ‘합’이라는 것은 ‘일찍 일어나도 먹이를 많이 잡을 수도 있고, 피곤해서 오히려 못 잡을 수도 있다’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과 증오하는 마음이 둘 다 있음을 깨닫는 것’일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어쩌면 ‘먹이를 많이 잡기 위해선, 기상시간 뿐 아니라 날씨, 동트는 시간, 계절도 중요하다’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건, ‘정’, ‘반’, ‘합’ 모두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을 말하며, ‘합’이라는 것은 처음 옳다고 믿었던 ‘정’이나 나중에 제시된 ‘반’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 입니다. 오히려 ‘합’은 균형(balance)이나 동양사상의 중용(middle path)에 가까우며, 한 가지 생각을 너무 확고하게 믿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개인 심리치료는 내담자 중심적이고 내담자의 입장을 수용하는 입장을 취합니다. 치료자의 태도는 매우 수동적이며, 이렇게만 해도 좋아지는 환자들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해서는 좋아지지 않는 환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무언가 가르쳐 줄 필요가 있고,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해야 겨우 변할 수 있습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치료적 접근인 것 입니다. 이를 우리는 인지행동치료라고 불러왔습니다. 더 나아가서 항상 수용만 해줘도 좋아지지 않고, 항상 변하라고 닥달하기만 해도 효과가 없는 환자 또한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환자에게 DBT 치료자는 때로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변화를 요구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치료자 입장의 유연한 태도만 살펴봐도, 정과 반, 그리고 합이라는 변증법적 개념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Q :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 치료에 있어서 이 '합'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맞습니다.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들은 그 증상들을 나름대로 ‘조절시도’를 하다가 ‘조절실패’에 빠지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자신을 떠나지 못하도록 일단은 타인의 무리한 요구까지 다 받아주면서 해내려고 애쓰다가, 한계에 도달하면 엄청 짜증내고 남 탓하고 분노하는 상태가 반복되고, 또한 직장에서는 유능하게 일도 잘하는데,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만 아무 것도 못 한다고 하고 굉장히 힘들어하고 의존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옆 사람 입장에서는 왜 자기와 있을 때만 이렇게 못하겠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우며, 결국 화를 내기 쉽습니다. 고통스러운 일들을 많이 겪다 보니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것이 몸에 배어있어서, 또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적절한 물의 온도를 맞추지 못하고 뜨거운 물을 틀었다 찬물을 틀었다 하는 ‘샤워실의 바보’를 떠올리게 합니다. 환자는 아마도 이 상태에서 매우 힘든 정서적 어려움을 경험할 것 입니다. 우리는 이 변증법적 행동 치료를 통해 양극단을 오고가는 환자들의 '적절한 물의 온도 맞추기', 즉 '합'을 이해하고 실천하게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Q : '변증법적 행동치료' 는 어떻게 구성 되어 있고, 어떻게 진행되나요?

 

변증법적 행동치료는 크게 4가지 주요 형태로 구성됩니다. 개인치료, 기술 훈련, 전화 상담, 동료 자문팀 입니다.

 

개인치료는 통상적으로 주 1회 정도 받게 되는데, 50분 정도의 면담 시간을 가집니다. 기술 훈련은 4가지 종류의 감정을 다루는 기술(마음 챙김, 대인관계 효율성, 감정 조절, 고통감내)을 배우는 수업으로 이루어집니다. 주 1회 정도 받게 되는데,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주 1회의 개인치료와 집단 기술훈련을 통해 생명위협행동, 치료방해행동, 삶의 질 방해 행동을 줄이고, 행동기술을 늘리도록 노력합니다.

 

전화 상담의 경우 자살 충동이 높을 때 자살 기도 전에 전화하는 것입니다. 치료자와 환자가 함께 미리 상의를 하여 어떤 상황에서 몇 분까지 통화할 수 있는지를 미리 정해 놓습니다. 자살 기도 후에 전화 상담을 길게 해주면 이 또한 보상으로 작용하여 자살기도가 늘어날 수 있기에, 자살기도 전에 전화를 하도록 합니다.

 

동료 자문팀을 통해 동료들과 공동치료자로서 같이 치료하게 됩니다. 동료 자문팀은 흔히 상담에 대해 수퍼 비전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이보다는 치료자 자신도 집단에 참여해서 치료를 받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주 1회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며, 동료 자문팀은 각 치료자에게 상담 받는 환자 모두에 대한 공동치료자로서 기능하며 책임을 공유함으로써, 환자에게 불의의 사고가 생겼을 경우 치료자의 고통을 공유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Q : 상당히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변증법적 행동치료를 우리나라에서 진행을 할 때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미국에서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에 비해 국내 정신과 전문의 중에는 아직 DBT에 대해 생소한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 개인치료도 하고 집단기술훈련도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 현재로선 동료자문팀을 형성하기도 쉽지 않아서 치료자에게 많은 부담이 되는 경계성 환자들을 치료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효과적이지 못한 치료를 수년간 하는 것에 비하면, 6개월~1년 만에 천천히 자살기도가 줄고 응급실을 방문도 줄면서 절망적이었던 환자가 호전되는 것을 보면, DBT는 매우 경제적이며 효과적인 치료입니다. 또한 경계성 인격 장애 뿐 아니라 자살충동이 높은 주요 우울장애, 감정기복이 심한 양극성 장애, 알코올 중독,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다양한 질환에도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시다시피 한해에 13000명 가량이 자살로 세상을 등지는 나라입니다. 심각한 자살기도는 상담, 종교, 복지 같은 다른 사회영역에서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분야입니다. 따라서 자살문제에 있어서 정신과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매우 높은 것 같습니다. 이런 시점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중에 DBT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길 바랍니다.

 

사진_픽사베이

 

앞서 예를 들었던 수지씨와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경계성 인격장애의 괴로움을 엿볼 수 있지만, 실제 병원을 찾게되는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들의 삶은 짧은 예시에 도저히 다 실을 수 없을 만큼 혼란과 공허로 가득차 있다. 끝없이 메워지지 않는 블랙홀 같은 가슴에 자신마저 빨려들어가 매순간을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갈팡질팡하며 괴로워하고 있다. 그들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들의 괴로움만큼이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까지 괴로워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심지어 거기에는 정신과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삶을 내던지고 싶은 고통에 매번 병원을 찾게 되지만, 또 그만큼 치료에 저항하고 싶은 반대의 마음 사이에서 늘 극단을 오가기 때문이다. 약물치료를 비롯해 개인면담치료 인지행동치료 등 효과가 뚜렷한 치료를 찾기가 힘들어 의료진이 결국은 지쳐버리기도 한다.

 

박준성 선생님이 DBT의 근본 원리를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설명하였듯, 어쩌면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야 할 길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애매함을 견뎌내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쪽 아니면 저쪽. 그 사이에는 죽음이라는 절벽 뿐인 삶. 칼 끝을 걷는 듯한 삶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길에 DBT라는 치료법이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한발만 삐끗해도 죽음으로 떨어질지 모르다는 두려움에 질린 채 하루하루를 걸어가는 환자들에게, 조금 어긋나도 괜찮다는 안전망이 되어주는 동시에 한편으론 그들을 올바로 이끌어줄 수 있는 손길을 내밀어주면서 말이다.

 

 

이성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sungchul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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