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를 넘어서 제 1편

사진 픽사베이

 

긴 소파에 누워 있는 환자가 정신과 의사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 떠오르는 감정들을 이야기 하는 장면을 우리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프로이트가 만들고 발전시킨 정신분석의 원형이다.

 

프로이트(앞줄 왼쪽)의 모습이 그가 총애한 제자였던 카를 융(앞줄 오른쪽), 어니스트 존스(뒷줄 가운데), 산드로 페렌치(뒷줄 오른쪽) 등과 함께 사진에 담겨 있다. 1909년 미국. https://de.wikipedia.org/wiki/Granville_Stanley_Hall#/media/File:Hall_Freud_Jung_in_front_of_Clark_1909.jpg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만든 이후 백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약물치료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류의 심리치료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타당성이 입증되어 선진국에서는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현대 심리치료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현대 심리치료에 관심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모임인 ‘근거기반심리치료 아카데미’를 주도하고 계시는 인제의대 서울백병원 김원 교수님을 만나 뵙고 말씀을 들어봤다.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원 교수

 

가톨릭의대을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정신과 수련하신 김원 교수님은 현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스탠포드의대 방문교수로 조울병클리닉과 인지행동치료 연수를 하였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술위원, 대한우울조울병학회 홍보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관심 분야는 불안 및 기분장애, 인지행동치료를 비롯한 심리치료, 정신의학과 관련된 철학이고, ‘조울병의 변증법적 행동치료 워크북’, ‘인지행동치료에서의 메타포’, ‘스트레스의 인지행동치료’ 등의 역서가 있다.

 

Q : 독자 분들은 ‘근거기반 심리치료’란 용어가 익숙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근거기반 심리치료란 무엇인가요?

근거기반이란 말은 근거기반의학에서 나온 것이죠. 다양한 치료들이 나오고 그 치료들의 효능과 효과를 검증할 필요성이 생기면서 어느 정도 검증된 치료를 권장하게 되는 사회적 요구가 근거기반의학을 만든 것인데요. 심리치료의 경우도 비슷해서 근거기반 심리치료라는 말이 쓰이게 된 것이죠. 정신분석 계열의 치료라고 해서 반드시 근거기반치료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근거기반 심리치료 아카데미에서 다루는 심리치료들은 인지행동치료 계열을 중심으로 해서 최근 많이 연구되고 결과가 보고되고 있는 심리치료들이라 할 수 있어요. 고전적 인지행동치료뿐 아니라 변증법적 행동치료, 수용전념치료, 마음챙김기반 인지치료 등의 새로운 인지행동치료가 포함되고 대인관계치료, 트라우마 치료, 동기강화상담, 정서중심치료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 그럼 정신분석 계열의 치료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정신분석적 치료의 목표는 어떤 특정한 증상이나 질환의 치료라기보다는 통찰적인 자기 이해라고 하겠죠. 근데 현대 사회에서는 여러 정신건강문제의 해결책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고 있죠. 그래서 특정한 목표를 위해 적용할 수 있는 치료 기법이 개발되고 검증되어 선진국에서는 국가의 지원을 통해 이런 치료들이 시행되고 있는 것이에요. 자살이나 경계선 인격장애를 위한 변증법적 행동치료, 불안과 기분장애에 대한 인지행동치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여러 치료들이 대표적이죠. 정신분석만으로는 이런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데 한계가 있죠. 재난이 많은 요즘 시대에는 국가가 재난 후 정신건강을 위해 국립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말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국립트라우마센터에서 정신분석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정신분석도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지만,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심리치료라 하면 대부분 정신분석을 떠올릴 뿐이고, 외국에서는 현재 활발하게 적용되는 여러 심리치료들에 대해 우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잘 모르고 오해도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Q :우리나라의 심리 치료가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과는 다르게 정신분석 치료에 치중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건 정신분석에 치중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에는 심리치료 자체가 선진국에 비해 거의 활성화가 안 되어 있는 것이죠. 일단 의료계 내에서 심리치료를 할 수 있도록 수가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않죠. 박리다매식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에서는 시간과 인력이 많이 필요한 심리치료 들이 항상 뒷전으로 밀리죠.

선진국에서는 약물치료의 효율성과는 다른 심리치료만의 가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그에 따라 예산 지원이 되지만, 우리는 아직 효율성만을 따지는 것이죠. 국가 의료의 대부분이 공공이 아니고 민간에 맡겨지니까요. 그래서 대부분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심리치료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시스템이죠.

그리고 우리의 심리치료에 대한 관점이 정신분석에 치중되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그 이유는 이런 경제적 어려움에 더하여 수련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여러 근거기반 심리치료의 효과에 대해 빨리 받아들여서, 인지행동치료를 비롯한 다양한 치료들을 정신분석과 비슷한 위상으로 수련 시스템에서 다루고 있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는 전공의들이 근거기반 심리치료를 배울 수 있는 장이 부족하고, 전문의 실기 시험은 정신분석만이 필수이니,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정신 분석의 역사와 그 아우라가 아직 너무 커서 그런지, 정신분석 이외 치료는 수준 낮은 치료 혹은 피상적인 치료라고 생각하는 선입견들도 많아요. 이런 점은 매우 안타깝죠.

 

Q : 인지 행동 치료를 포함한 근거기반 심리치료 아카데미의 핵심교육과정이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카데미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의 요구는 늘고 우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수련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함께 공부하고 배우는 터전을 만들기 위해 이 아카데미를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가 있기는 하지만 그 학회는 의사만이 아닌 다학제로 구성된 학회이고 인지행동치료 이외의 다양한 치료들을 다루기는 한계가 있어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로만 구성되고 다양한 심리치료를 다루는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여러 동료들이 힘을 합친 것입니다.

 

Q : 올해 근거기반 심리치료 아카데미에서 다루는 심리치료들과 향후 일정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2017년 핵심교육과정은 매월 세 번째 목요일 7시 30분에 진행이 되고 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과정 소개, 심리치료를 실제 구성하기, 관계와 공감 만들기 (김원)

2. 진보된 인지 행동 치료: 인지행동치료 제대로 알기 (최주연)

3. 안정화 기법과 트라우마 치료 (김대호)

4. 수용전념치료 (조철래)

5. 변증법적 행동 치료 (박준성)

6. 마음챙김기반 심리치료 (이상혁)

7. 정서중심적 부부치료 (박성덕)

8. 대인관계 치료 (남범우)

9. 최면 치료 (손인기)

10. 마음헤아리기 치료 (석정호)

 

그리고 연 2회 정도 한 주제를 하루 종일 진행하는 심화 워크샵을 기획 중이고, 연 1회 학술대회도 개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작년 핵심교육과정 참여자들이 모여 공부하는 소모임이 있는데, 현재에는 수용전념치료 소모임과 변증법적 행동치료 소모임이 있습니다.

 

Q : 마지막으로 정신의학신문 독자들에게도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에게는 심리치료가 우리의 소중한 치료적 도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우리의 능력으로 잘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이고, 환자와의 경험과 동료들과의 배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도구인 것이죠. 사실 우리가 지금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대부분의 임상적 접근이 인지행동적인 것 아닐까요? 외래나 입원 환자들을 대하면서 무의식을 탐색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을 하는 것이 환자의 마음을 달래주고 행동 변화를 위해 좋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 인지행동적 치료의 시작인 것이죠. 일상적인 진료를 잘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인지행동치료를 비롯한 여러 근거기반심리치료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성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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