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를 넘어서 제 2편

 

40대 직장인 크리스. 여름 어느 날 업무를 보던 중 갑작스럽게 심장이 두근 거리고, 숨이 막히는 듯한 질식감, 식은 땀, 가슴 통증이 발생했다. 응급실을 방문한 크리스는 혈액 검사 그리고 뇌 영상학적 검사, 심전도 검사 등을 했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신경과, 호흡기 내과, 심장 내과 등을 모두 다녀봤지만 큰 이상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이제 다 틀렸다’,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볼 것이다’,  ‘또 이런 증상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20대 취업 준비생 수잔. 벌써 5번째 면접에서 탈락했다. 1달 전부터 그녀는 잠이 오지 않았고, 하루 종일 무기력한 기분과 우울감을 느꼈다. 그녀는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나는 절대 취업을 다시 하지 못할 것이다’, ‘친구들도 나를 무시할 것이다’, ‘모든게 내 잘못이다‘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첫 번째 사례는 공황장애의 전형적인 사례이고, 두 번째 사례는 우울증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위와 같은 문제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게 되면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우선,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약물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가 위 두 사례 처럼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하는 생각과 같은 인지적 오류가 반복이 된다면, 증상의 호전을 더디게 하고, 재발을 일으킨다. 즉, 치료에서 인지 부분에 대한 접근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약물학적 치료와 더불어 비약물학적 치료를 적용한다. 

 

오늘은 비약물학적 치료에서 효과가 유의하다고 알려진 현대의 심리치료들 중 인지행동 치료에 대해서 강남 연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최주연 원장님을 만나 말씀을 들어보았다. 

 

사진_최주연 원장님

 

최주연 원장님은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강남구 논현동에 강남 연정신과를 개원했다. 인지행동치료 전문 병원으로 2002년부터 공황장애 집단 인지행동치료를 시작해서 83기까지 진행했다. 현재 한국인지행동치료 학회 이사, 임상인지행동치료 연구회 회장, 한양대학교 신경정신과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굿바이 공황장애’ ‘불안해도 괜찮아’가 있다. ‘내 인생을 힘들게 하는 트라우마’를 감수했고 ‘일반인을 위한 불안극복 프로젝트’를 공역했다.

 

Q : ‘인지행동치료’라는 단어가 생소할 수도 있는 독자 분들에게 인지 행동 치료는 무엇이고, 치료 기전은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인지행동치료는 말 그대로 인지(생각)와 행동을 치료 대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치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지를 다루는 치료는 인지행동치료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라의 원효대사는 당나라로 유학을 가는 중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동굴 속에서 하룻밤 자게 되었습니다. 잠결에 너무나도 갈증을 느껴 물을 찾게 되었고 마침 주변에서 물인 담긴 바가지를 발견했고 고인 물을 마셨습니다. 너무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하게 되었고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고 잠결에 마신 물이 생각나서 불안한 마음에 주변을 살폈더니 바가지인줄 알았던 것은 해골이었고 깨끗한 물이라 생각했던 것은 보기에도 지저분한 고인 썩은 물이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헛구역질을 하고 동굴을 뛰쳐나왔습니다. 한참을 뛰어 내려온 후에야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제 마신 물과 아침에 본 불은 같은 물인데 바가지 속에 깨끗한 물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편안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고, 해골 속에 더러운 썩은 물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놀라서 헛구역질을 하고 그 자리를 도망치게 되었구나’ 원효대사는 인간사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일체유심조의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생각의 변화가 감정과 행동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의 변화를 통해서 감정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인지행동치료의 기본 개념입니다. 

 

사진_Aron T. Beck (출처_위키미디어 공용)

 

1960년대 Aaron T. Beck에 의해 정리되고 우울증에 적용된 인지행동치료는 다른 치료와 구별되기 위해서 3가지 기본 가정을 전제로 출발했습니다. 첫 번째 가정은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의해서 감정을 느끼고 그 상황에 대해서 행동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나 사건을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인지매개 가설입니다. 두 번째 가정은 인지(생각)는 탐지 가능하고 또 변화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치료 과정과 훈련을 통해서 잘못된 인지를 확인할 수 있고 변화도 가져올 수 있다는 가정입니다. 세 번째 가정은 인지(생각)의 변화가 인간 변화 과정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생각과 감정과 행동은 서로에게 영향은 주지만 인지(색각)을 다루는 가정을 통해서 정서적, 행동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가정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관점을 보는 시각에는 많은 변화가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본 전제는 현재에도 인지행동치료의 기본적인 관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정을 기본으로 인지모델을 이야기 하게 되는데 인지모델은 치료자가 환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 환자가 스스로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이용하는 치료 기전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많은 상황들에 대해서 반응을 보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반응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첫 번째 반응은 감정, 두 번째 반응은 신체적(생리적)변화, 세 번째 반응은 행동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화라는 감정이 생기면 그 화는 가슴이 뛰고 호흡도 거칠어지고 열감을 느끼게 되는 등의 흥분된 신체반응을 유발하고 화를 해결하기 위해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싸움을 할 수 있는 등의 행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어도 그 상황이 어디에서 있었는지에 따라서(집인지 직장인지) 반응은 또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상황이 반응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상황을 그 순간에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했는가에 따라서 그 장면은 화가 될 수도 있고 불안감이 될 수도 있고 아무런 감정을 유발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믿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지모델에서는 핵심 믿음이라고 하는데 평소에 자신을 어떤 관점에서 어떤 믿음으로 보고 있었는가에 따라, 또 주변을 어떤 믿음으로 보고 있는가에 따라, 미래를 어떤 믿음으로 보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상황에서의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핵심믿음은 어느날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의 인생의 맥락 속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형성되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인지행동치료는 인지모델을 이용해서 병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왜곡된 인지를 찾아서 변화를 주는 과정을 통해서 건강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지를 다룬다고 이야기를 하면 마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정답을 찾아서 항상 긍정적인 생각만 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지행동치료는 정답을 찾거나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위한 치료는 아닙니다. 인지행동치료는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생각하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입니다. 정답을 찾기 보다는 자신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만들어서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치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한걸음 뒤에서 자신을 볼 수 있게 도와주고 새로운 행동적인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왜곡된 생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입니다. 

 

Q : 실제 진료를 하실 때 공황 장애 , 우울 장애에서 인지 행동 치료의 치료 효과는 어떤가요?   

우울증에 대해서는 약물치료를 우선으로 하고 보조적으로 인지행동치료를 시행합니다. 저의 경우 인지행동치료를 주로 적용하는 것은 불안장애 특히 공황장애입니다. 주로 집단치료로 인지행동치료를 하고 있는데 치료적인 효과는 아주 우수합니다. 공황장애의 경우 인지행동치료를 했을 때 70-90%가 공황 증상의 완전 소실을 보고하고 그 효과가 24개월이상 지속되고 광장공포증에도 60-80%의 호전을 보인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해서 치료하는데 약물치료만 했을 때보다 쉽게 약을 끊게 만들고 치료기간도 짧아지고 약을 끊었을 때 재발하는 비율도 훨씬 적어집니다. 인지행동치료는 불안을 다루는데 도움을 주는 치료이기 때문에 재발해도 스스로 자가 치료자가 되어서 공황장애를 잘 다루고 그 치료 기간은 훨씬 줄어들게 됩니다.

 

Q : 우울증의 경우에 약물 치료를 우선으로 하고 보조적으로 인지행동치료를 적용하시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울증이 심한 분들에게는 인지행동치료의 효과가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인지행동치료는 다소 적극적인 치료이고 에너지가 필요한 치료입니다. 우울감이 심해서 무기력해져 있는 분들의 생각을 다루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경우가 될 수 있습니다. 일단 생활에 리듬을 찾고 무기력에서 벗어나 우울감에서 호전되어 있을 때 인지적인 접근이나 행동의 변화가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는 인지행동치료를 하지 않고 약물치료를 시행하면서 어느 정도 좋아진 후에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인지행동치료를 시행합니다. 무기력의 정도가 심하지 않고 일시적인 우울감에 빠진 분들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방식이나 태도가 우울감에 반복적으로 영향을 주는 분들에게는 인지행동치료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사진_불안해도 괜찮아 (저자: 최주연/출판사: 소울메이트)

 

Q :‘불안해도 괜찮아’라는 책 발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책은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또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2008년에 공황장애 환자분들이 공황장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굿바이 공황장애’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환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좀 쉽게 읽을 수 있는 불안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서 2011년에 ‘불안 버리기’를 썼습니다. ‘불안해도 괜찮아’는 이 ‘불안 버리기’의 개정판입니다. 현재 ‘굿바이 공황장애’도 개정판을 준비 중이고 조만간에 출판할 예정입니다. 

 

‘불안해도 괜찮아’는 말 그대로 불안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 쓴 책입니다. 불안은 사실 우리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 때 위험에 대해서 잘 대처하기 위해서 가지게 되는 고마운 정서입니다. 하지만 불안할 때 여러 가지 불편한 신체변화를 경험하고 불안을 유발한 상황이 긍정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불안 자체를 두려워하고 겁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안해도 괜찮아’는 불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불안할 때 자신을 어떻게 관찰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안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만든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적절하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전달하는 책입니다. 

 

책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장은 ‘불안 알아가기’입니다. 불안이 어떤 정서인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불안을 잘 다루기 위한 개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2장은 ‘불안 다루기’입니다. 불안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불안이라는 정서가 어떤 정서이고 어떻게 받아들여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3장은 ‘불안 만나기’입니다. 불안을 유발한 두려워하는 상황을 어떻게 노출해서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4장은 ‘진료실에서 만나는 불안’입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진료실에서 만난 많은 불안에 대한 경험을 정리했습니다. 

 

누구나 불안은 있습니다. 불안 자체는 치료의 대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불안이 과장되고 왜곡되어져서 일상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 행복해지기는 어렵게 됩니다. 좀 더 건강해지고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성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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