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를 넘어서 제 3편

[정신의학신문 : 이성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세월호 사고,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 경주 지진 등의 뉴스에서 사고 이야기와 함께 이 사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때 뉴스에서 어김없이 듣게 되는 정신건강의학과적인 진단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입니다. 

 

사진_픽셀

 

“평소에 활발하던 아이가 집 밖을 나오질 않아요... 멍하니 집에 누워만있어요”

“그때 내가 힘이 조금 셌더라면 친구를 구할 수 있었을텐데.. 그 친구가 매일 꿈에 나와요..그 친구에게 너무 미안해요”

”돌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도 깜짝 깜짝 놀라요” 

 

그들은 사건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평소와 같지 않습니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며, 유사한 사고 소식이나 현장을 지나칠 때면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라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회피하려 하기도 하고, 매일 같은 악몽과 불안에 잠을 자지 못하기도 합니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평소와 같지 않게 주변 사람들에게 심한 화를 내는 등의 모습을 보입니다.

 

몸이 과각성되어 쉽게 놀라고(Hyperalertness), 충격적인 사건을 마음 속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며(Reexperience), 감정적으로 마비되고 회피하게 되는(Avoidance) 증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심각한 정신적인 외상(Trauma)을 경험한 이후에는 누구나 위의 같은 증상들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이 있더라도 대부분의 경우는 경미하게, 일시적으로 나타나게 되며, 가족과 친구들의 정서적인 지지를 받으며 수주나 수개월 이후에 회복이 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증상의 정도가 일상 생활에 지장을 미칠 만큼 심하고, 오랜 기간 지속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고, 전문적인 평가와 치료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진단되고 치료하는 경우 관해에 이르는 중앙값(median time)이 3년에 이르고, 치료하지 않는 경우 거의 2배의 시간이 걸립니다. 같은 보고에 따르면, PTSD의 경우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 저절로 회복되는 경향이 낮아 10년이 지난 후에도 외상을 겪은 환자의 약 40%가 회복되지 않는 등 한번 PTSD로 진단받는 경우 만성화되는 경향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만성화가 되면 다른 만성질환 질환과 마찬가지로 완치하기가 무척 힘들어 치료를 유지하기조차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는 어떻게 할까요? 

치료는 크게 심리학적 개입을 포함한 정신사회학적 치료와 주로 약물을 이용한 생물학적 치료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약물치료 부분에서는, 최근 뇌 과학의 눈부신 발전에 따라, 심각한 스트레스나 외상으로 인한 신경생물학적 이상을 규명하는 연구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결과로 밝혀진 세로토닌, 노어아드레날린, 도파민, 오피오이드 등에 영향을 주는 약물 중에 그 근거가 명확하다고 알려진 약물 등이 PTSD 치료제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PTSD에 특이적인 약물이 개발된 바는 없으며, 환자들의 우울감이나 과각성, 불안 등에 작용하는 통상적인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등이 주된 약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그 장기적인 경과를 볼 때, 일반적인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보다 약물치료만으로는 완치가 어려운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는 PTSD가 외상 사건과 연관되어 점차 일상 전반의 기분과 불안, 자아 정체감을 모두 침범할 수 있는 특이적인 질환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는 그 정신병리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환자들에게는 좀 더 선별적인 정신사회학적 치료가 필수적입니다. 외상후스트레스를 다루는 심리치료는 환자의 기분과 불안을 경감시키는 방향의 면담 뿐 아니라 외상 기억에 대한 재처리를 돕기 위한 작업이 보다 중점적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PTSD 정신사회학적 심리치료에 대해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김대호 교수님을 만나 뵙고 말씀을 들어보았습니다. 

 

 

김대호 교수님은 1992년 한양대의과대학을 졸업하시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University of Toronto에서 Research Fellow 과정을 하시고, 현재 한양대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구리병원 트라우마-스트레스 프로그램 소장을 맡고 계십니다.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인지행동치료 전문가이며, EMDR협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 공인 EMDR Trainer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또한,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학술이사, 한국EMDR협회 대회협력이사, KSSTS (한국 트라우마 스트레스 학회) 학술부 이사, 대한불안의학회 특임이사, EMDR ASIA 이사를 맡고 계십니다.

 


Q : 독자 분들에게 트라우마 치료 중 비약물학적 치료에 대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오늘은 가족치료와 집단 치료를 제외한 심리치료(정신치료)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연구를 통해 효과가 가장 입증된 심리치료는 세 가지 입니다. 지속노출 치료, 인지처리치료와 EMDR (안구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요법)입니다. 앞의 두 가지를 한꺼번에 외상중심 인지행동치료 (trauma-focused CBT)라고 부르고, 3가지를 통틀어 외상중심 심리치료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스트레스 예방 접종 훈련, 가상현실노출치료, 심상시연치료(악몽의 치료)를 효과적인 치료로 들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야기 노출치료, 변증법적 행동치료, 대인관계 심리치료, 마음챙김 기반 인지행동치료 등도 효과 있는 심리치료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세 가지의 외상중심 심리치료에 대해 요약해 보겠습니다.

첫째, 지속노출치료는 심리교육과 이완연습을 통해서 환자를 준비시킨 후 회피 상황에 대한 실제 노출을 과제로 주면서 시작을 합니다. 그러나 치료의 핵심은 상상 노출이며 이는 반복적으로 사건의 기억을 현재 시점으로 자세히 서술하는 과정입니다. 환자는 치료자의 안내에 따라 안전한 환경에서 외상 기억에 계속 노출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자연적인 정서처리 과정이 일어나며, 잘못된 정보를 교정해나가게 됩니다. 보통 90분 12회기로 구성되며 필요시 회기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인지처리치료는 외상과 관련된 비적응적 믿음을 찾아내서 교정하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따라서 치료자는 환자로 하여금 사고와 감정을 확인하고, 평가하여 대체적인 관점을 갖게 도와줍니다. 기억에 대한 노출은 선택사항이며 그것도 글쓰기의 과제 상태로 부가됩니다. 보통 12회기로 구성됩니다. 50분 12회기로 구성되며 집단으로도 진행 가능하며, 주 2회 실시할 수도 있습니다.

셋째, EMDR은 안구운동과 같은 양측성 자극을 주는 상태에서 외상적 사건의 기억과 관련된 사고, 이미지, 인지, 감정, 감각을 처리하는 치료방법이며 우선 외상 기억에 노출을 하지만 그 이후는 자발적 연상을 따라가는 점이 노출치료와는 다른 점입니다. 한 회기당 90분이 소요되는데 보통 6-8회기를 실시합니다.

 

그림_단감(유진수 외과 전문의)

 

이러한 치료들은 상당히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정해진 수련과정을 통해 습득하고 숙달한다면 누구나 같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Q : 임상에서 치료 효과는 어떤지요?

 

치료 효과는 좋고 환자분의 만족도도 높습니다. 아직까지 약물치료와 비교하여 어떤 치료가 더 우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적어서 결론 짓기가 어렵지만, 임상적인 경험을 통해 외상중심 심리치료는 PTSD의 치료에 꼭 필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국내 현실 상 외상중심 심리치료를 전문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적인 현실에서는 우선적으로 약물치료와 기본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정보 제공 및  증상 조절 기술 교육을 포함한 안정화 치료가 우선적으로 제공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지속되면 외상중심 심리치료를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Q : 최근 교수님께서 보건복지부와 함께 진행 중인 트라우마 관련 연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독자 분들에게 연구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향후 2년 동안 보건복지부에서 지원하는 트라우마 관련 연구가 진행됩니다. 대상자는 19세-64세 성인으로, 재난이나 사고와 같은 트라우마를 경험후 다음과 같은 불편함이 있을 때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사건과 관련된 기억들이 원치 않게 떠오른다 

-그 사건과 관련된 것들을 피한다 

-쉽게 깜짝 놀라며 예민하다


재난이나 사고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이 궁금하다면 [서울성모병원 재난코호트팀 02-2258-7585], 치료가 필요하다면 [한양대학교 기반연구팀 02-2292-8427]에 문의하시면 됩니다. 연구에 참여하실 경우 전문적인 진단과 전문 심리치료를 비용 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외상 중심의 심리치료에 대한 연구와 개발은 현재진행형으로 무척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요성 또한 국가적,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폭력이나 학대, 사고나 상실 뿐 아니라 주관적인 고통을 유발하는 다양한 정신적 충격은 그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를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다면, 더 이상 스스로의 정신이 심약하다 자책하기 보다는 보다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치료를 찾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주변의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단순한 위로나 격려의 말 보다는 개개인 각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의학적인 치료 필요성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 반복되는 국가적 재난과 자연재해, 인사사고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치료 환경의 구조화를 위한 제도적, 사회적 방안의 마련을 탐색해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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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편 - 근거 기반 심리 치료란?

제 2편 - 인지행동치료

 

 

이성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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