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바꾸기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1.


윤아의 애칭은 ‘이쁜이’였다. 물론 남자친구만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남자친구가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쁜이’라고 불러주면, 마치 자신이 동화 속의 공주가 된 기분이었다. 마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아침부터 그 말을 듣고 시작한 날은 실제로 다른 사람도 자신을 공주로 보는 듯했다. 일 할 때도 자신감이 넘쳤다. 뭐든지 잘 할 수 있을 같았고 실제로도 잘 풀렸다. 윤아는 남자친구가 자신을 ‘이쁜이’라고 불러주는 게 너무 좋았다. 남자친구는 윤아에게 멋진 왕자님이었다.
    
그런데 친한 친구로부터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자신의 남자 친구가 예전 여자친구도 ‘이쁜이’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설마하고 넘어갔지만 계속해서 그 소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윤아는 남자친구의 ‘이쁜이’라는 애칭이 너무나 듣기 싫었다. 남자친구가 불쾌한 목소리로 자신을 ‘이쁜이’라고 부를 때마다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저 놈이 예전 여자친구를 잊지 못하나?, 저 놈 예전 여자친구는 ’이쁜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저 놈 아무에게나 ’이쁜이‘라고 부르는 실없는 놈인가?, 저 놈 바람둥이 아니야?, 저 놈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고 예전 여자친구 따위와 비교를 하는 거야!’ 등등 온갖 생각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더 이상 남자친구는 윤아에게 멋진 왕자님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객관적인 세상을 똑같이 바라보고, 느끼며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만의 주관적인 세상을 산다. 이런 주관적인 세상을 심리학적 용어로 ‘심리적 실재’라고 한다. 실재의 객관적인 세상에서 윤아의 남자친구는 달라진 것이 없다. 윤아의 남자친구가 윤아를 ‘이쁜이’라고 부르는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단지 윤아의 주관적인 세상에서, 남자친구는 멋진 왕자님에서 실없는 놈, 바람둥이로 추락해버린 것이다. 남자친구의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불쾌한 목소리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단지 달라진 것은 남자친구에 대한 윤아의 생각과 마음이다. 이런 주관적인 세상은 윤아의 생각과 마음이 만든다.
  


2.

사진 범불안장애의 진단 기준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게 다 불안하다.
아이가 잘 자랄지, 아이가 공부는 잘 할지, 아이가 친구는 잘 사귈지, 아이가 학교생활은 잘 할지, 오늘 잠은 잘 잘지, 내일 지각하지는 않을지, 회사에서 별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등등에서부터 심지어는 갑자기 전등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아파트가 쓰러지지는 않을지, 땅이 꺼지지는 않을지,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을지까지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아니 거의 모든 부분에서 과도한 불안과 걱정을 느끼는 사람은 범불안장애를 의심해 봐야 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어떠한 현실적 상황이 아니라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다. 모두가 다 이용하는 버스나 지하철도 사고가 날 것 같은 불안한 생각 때문에 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시험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도 사람마다 불안한 정도는 다르다. 물론 세부사정이 달라서 그렇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생각해보자. 화장실 가기 전 세상과 다녀온 후 세상은 다르지 않은가? 과도한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사는 객관적인 세상은 같다. 다만 그들의 생각과 마음이 불안으로 가득한 게 문제다. 우리가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우선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른채 습관적으로 살아간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마음을 가졌는지,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했는지 모르고 하던대로, 반복적으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생각은 머릿속을 너무나 빨리 지나쳐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은 머릿속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순식간에 지나쳐버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생각을 바꾸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이다.
   


운전을 하는 중에 옆에 차가 위험하게 끼어들면 우리 대부분은 화가 난다. 대부분의 머릿속에 ‘큰일 날 뻔 했잖아!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 줄 알고, 나를 신경도 안 쓰는 거야 뭐야!’ 이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가지만 우리는 모른다. ‘저 놈이...’ 정도의 생각만 인지한 채, 혼(크락션)을 울리고 쫓아가기 바쁘다.
만약 순식간에 스쳐가는 이런 생각들을 ‘아! 저 사람이 바쁜 일이 있구나’ 정도의 생각으로만 바꿀 수 있으면 화도 나지 않고, 혼(크락션)을 울리거나 쫓아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여기서 또 질문이 생긴다.
‘그럼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치는 생각을 알아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다.
답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알아차리기 위해, 먼저 우리의 감정을 알아야 한다. 감정은 생각보다 우리 마음속에 조금 더 오래 머문다. 때문에 빨리 지나쳐버리는 생각보다 감정을 알기가 조금 더 쉽다. 인지치료의 내용을 조금 빌려보자. 어떤 상황에 마주하게 되면 사람은 그에 따른 생각을 하고 생각에 따른 감정을 느끼고, 생각과 감정에 따른 행동을 한다. 우리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면, 이 감정이 왜 생겼는지, 역으로 추적해서 우리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지적 평가는 쉽게 말해 ‘생각’이다

화가 났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왜 화가 났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혹시 자신이 무시 받았다는 생각이나, 자신이 피해, 손해를 봤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나?
=> 화는 무시 받았다는 생각과 많은 관련이 있다.

불안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왜 불안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혹시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나?
=> 불안은 중요한 것이 위협받는 다는 생각과 많은 관련이 있다.

우울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왜 우울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혹시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나, 자신 스스로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나?
=> 우울은 어떤 결과에 대해 자신의 책임이 원인이라는 생각과 많은 관련이 있다.

이렇게 감정의 이유를 역으로 찾아보면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감정이 생기면 이 ‘감정’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집중을 한다. 생각을 바꾸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이다. 다시 운전을 할 때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운전을 하는 중에 옆에 차가 위험하게 끼어들면 우리 대부분은 화가 난다. 그런데 이 때 위처럼 왜 화가 났었는지 이유를 찾아보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혼(크락션)을 울리거나 쫓아가기 바쁘다. 화를 해소하기 바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당연히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화가 난다면, ‘화’를 어떻게 풀지에 집중하기보다 이 ‘화’가 왜 생겼는지, 어떤 생각에서 나왔는지 이유를 찾아보자. 감정으로부터 세상을 보지 말고, 감정으로부터 이전의 생각을 먼저 보라는 이야기이다.   
    
    
정리를 조금 해보자.
    
1.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신만의 주관적 세상이고,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심리적 실재’라고 한다.
2. 이 주관적 세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다.
3.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자신의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
4.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면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생각은 우리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너무나 빨리 지나쳐 버리기 때문에, 생각을 아는 것은 어렵다. 생각을 바꾸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이다.
5.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감정을 안다고 해서 이 감정이 왜 생겼는지 알아보기보다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집중을 한다. 생각을 바꾸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다.
자신이 이런 상황에 왜 이런 감정이 생겼는지 알아보면 자신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다음 편에 생각바꾸기가 이어집니다.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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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도움 받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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