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감각에 집중하기 - 걷기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1.

서련씨는 6개월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6개월이나 지났는데도 가끔 친구를 만나 수다 떨 때를 제외하고는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 시키기가 어려웠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헤어진 남자 친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남자친구와의 행복했던 과거가 떠오르면 ‘조금 더 잘 해줬으면 괜찮았을까?’ 하는 생각에 후회되고 우울한 마음이 생겼다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결혼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눈이라는 감각계를 통해 들어온 자극 가운데, 뇌의 시각 영역에 기록된 것만을 ‘본다’. 이는 보는 것만이 아니라 냄새를 맡는 것, 맛을 보는 것, 피부로 느끼는 것 등 모든 감각계를 통해 들어온 정보들 모두에 해당한다. 뇌의 활동이 곧 인간이 지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 그 자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이러한 자극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구분하는 모듈이 없다. 쉽게 설명해서 ‘실제로 남자 친구와 헤어진 경험’과 ‘남자 친구와 헤어진 경험을 떠올리는 것’을 구분할 능력이 뇌에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의 뇌는 두 경험을 똑같이 아프게 받아들인다.

 

서련씨가 헤어진 지 6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련씨는 끊임없이 과거의 일을 되짚어보고, 미래의 일을 떠올리면서 남자 친구와 헤어졌던 경험을 지속적으로 반복했을 것이다. 서련씨의 마음 역시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고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잡념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뒤흔든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후회나 자책, 우울과 미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살지 않고,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이런 괴로움들과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집중할 수 있다면 이런 괴로움들을 다룰 수 있다. 서련씨도 가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 때는 괜찮았다고 한다. 수다를 떠는 그 순간에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2.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괴로운 대표적인 질환이 있다.

바로 강박증이다.

강박증은 강박 사고(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나 장면)가 지속적으로 떠올라 불안해지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강박 행동(어떤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예를 들어, 방금 손을 씻었는데도 자신의 손이 더럽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강박사고) 또 손을 씻는다.

대개는 이렇게 강박 사고와 강박 증상이 동반되지만 강박 사고만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날카로운 칼로 자신을 베는 생각이라든지 다른 사람을 헤칠 것 같은 생각, 일이 제대로 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뭔가 잘 못되지 않았는지 의심하는 생각, 자신의 코나, 눈이 이상하게 생겼다는 생각, 별로 의미 없는 단어나 숫자 등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성적으로 불미스런 생각 등이 반복되는 경우이다.

 

사진 강박증의 진단 기준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런 괴로운 생각들을 없애 버릴 수가 없다. 이런 괴로운 생각들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 할수록 더 생생히 떠오른다. 마치 ‘분홍색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고 하면 분홍색 코끼리만 생각나는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 역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집중할 수 있다면 이런 괴로움들을 다룰 수 있다.

사진 픽사베이

그렇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마음을 다루는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의 ‘신체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집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신체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걷기를 추천한다.

 

그런데 그냥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걸어가면서 걷는 것 외에 다른 마음을 가진다. ‘아! 조금 늦어버렸네, 또 무슨 소리를 들을까... 내가 왜 늦잠을 잤을까... 그 버스만 놓치지 않았어도 늦지 않았을텐데... 뭐라고 핑계를 대면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불안하고 우울하고 괴롭다. 마음은 쉴 새 없이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 자신의 마음은 어느새 자신이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걷기란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오로지 걷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걸을 때의 순간순간 느껴지는 모든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이다. 걸을 때의 순간순간 느껴지는 모든 신체 감각에 집중을 하는 것이다. 중간에 걷는 것 외의 다른 마음이 들어오면 그저 다시 걷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1.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발걸음을 시작합니다.

2. 오른 다리에 의식을 모으십시오.

오른 다리를 들어 올립니다. 오른 다리의 무게를 느껴봅니다. 오른 다리의 움직임을 느껴봅니다. 오른 다리를 얼마나 높이 들어 올렸는지, 오른 다리를 얼마나 멀리 뻗었는지 느껴봅니다. 오른 다리가 앞으로 뻗어나가는 힘과 공기의 저항을 느껴봅니다. 오른 다리로 체중이 옮겨가는 것을 느껴봅니다.

3. 발바닥에 의식을 모으십시오.

발바닥이 땅에 닿을 때의 움직임을 느껴봅니다. 뒤꿈치부터 발가락 끝까지 땅에 닿는 순간을 느껴봅니다. 발바닥이 땅에 닿을 때의 압력을 느껴봅니다. 발바닥이 땅을 누르는 힘과 땅이 나의 발바닥을 밀어 올리는 힘을 느껴봅니다.

4. 왼쪽 다리로 위의 과정을 반복합니다.

5. 자신이 다리를 들어올리고, 내딛는 과정의 모든 순간순간을 알아차려 봅니다.

6. 마음속의 걷고 있다, 걷고 있다 되뇌어 봅니다.

7. 이제 양 팔에 의식을 모으십시오.

다리와 보조를 맞추어 흔들리는 팔의 움직임을 느껴봅니다.

8. 온 몸으로 느껴지는 공기의 느낌을 알아차려 봅니다.

9. 위의 과정을 반복합니다.

 

걷기를 예로 들었지만, 위와 같이 신체 감각에 집중하는 것은 걷기뿐만이 아니라 모든 행위에 적용 가능하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정리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출근길에도, 일을 할 때도, 청소를 할 때도, 샤워를 할 때도 말이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신체 감각에 집중하기’를 통해 우리 마음을 다루어보자.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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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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