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혹은 여자? - 진화의학으로 보는 여성의 건강

 

태교가 아기에게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상식입니다. 물론 베토벤이 좋다고 하거나 혹은 그보다 모짜르트가 더 좋다고 하는 등 근거 없는 주장이 범람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사실 태교를 위해 평소에 듣지도 않던 고전 음악을 듣고,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처럼 “한가한” 일도 없습니다. 바쁘게 살면서 편안한 음악 감상을 하기도 어려울 뿐 더러, 심지어 더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죠(제 아내처럼). 저희 집에도 학사모를 쓴 귀여운 아기 사진과 함께 “이런저런 이펙트”는 클래식 CD가 몇 장 있지만, 진지하게 감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태교”란, 우아하고 고상한 교양을 산모가 경험하거나 혹은 아기가 직접! 하도록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태아에게 음악을 직접 들려줄 수 있도록 설계된 스피커도 있더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영양 공급입니다. 임신 기간 동안 전반적으로 양호한 영양을 섭취하고,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죠.

 

태아기 프로그램화 가설

진화적 발달이론에 의하면, 이른바 태아 기원 가설 혹은 태아기 프로그램화 가설(fetal programming hypothesis)이라는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 있습니다. 태아는 임신 중에 어머니로부터 정보를 받아, 세상의 조건에 걸맞는 몸과 마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임신 중에 영양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면, 출생 후에도 역시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죠. 따라서 태아는 자궁 내에서 겪은 상황에 맞추어 미래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갑니다.

기아에 허덕이는 환경이라면 태아에게 전달되는 영양분도 그리 대단치 않을 것입니다. 종종 최소치에 근접할테죠. 결과적으로 아주 효율적인 대사 시스템을 장착해서 태어나게 됩니다. 가용한 칼로리는 모조리 저장하겠다는 일종의 절약 시스템이죠. 그런데 이런 절약 시스템을 갖춘 아기가 막상 세상에 나와보니 풍요로운 현대 사회였다면,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지방이 과다하게 축적되고 다양한 건강 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몸 속의 아기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충분한 영양 공급입니다. 일부 임부들은 임신 중에 찐 살을 빼기 어렵다면서 걱정하고, 심지어 미리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절대 피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영양 공급, 그리고 임산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리지 말고 드셔야 합니다.

임신 중에도 제대로 먹지 않는 임부, 심지어 살을 빼는 어머니는 정말 곤란합니다. 주말에 베토벤을 듣고 김소월을 읽으니 태교가 잘 되고 있다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아기가 베토벤의 음악이 좋아할 지 혹은 싫어할 시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실 베토벤은 아들이 없었지만, 베토벤의 음악을 베토벤의 연주로 들을 수 있었던 조카 칼 반 베토벤은 권총 자살을 시도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죠(음악 때문은 아니겠습니다만).

 

 

Figure 1 와인을 마시는 프랑스 여인. 프랑스인의 낮은 대사성 장애 발병율에 대해서는 그동안 와인의 효과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일부 학설에 의하면, 와인이 아니라 프랑스 여성의 양호한 산전 영양 관리에서 그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Philip Mercier (1689~ 1760), Musée des Beaux-Arts 소장. [online], available at: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ercier-Jeune_homme_au_verre_de_vin.jpg [Accessed 17 Jan 2017]

 

프랑스인의 역설(French paradox)

프랑스인은 미국인만큼이나 고지방, 고칼로리의 음식을 많이 먹는데도, 심혈관 장애나 당뇨병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흔한 속설로 프랑스인이 즐겨 마시는 와인의 효과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프랑스인만 와인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와인에 있는 항산화 작용은 다른 음식에도 많이 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로 일본인의 장수는 생선을 먹어서 그렇다고 하고, 심지어 한국인은 김치를 많이 먹어서 건강하다고도 하죠. 음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고작 몸에 안 좋은 '술'에 부여한 과도한 찬사를 보면 다분히 “와인 회사”의 입김이 느껴집니다.

소아과 전문의인 피터 나타니엘츠(Peter Nathanielsz)는 태아기 프로그램화가 프랑스인의 양호한 성인기 건강에 대해서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프랑스인의 역설(French paradox)”은 빨간 빛깔의 와인 때문이 아니라, 프랑스의 우수한 산전 관리 시스템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프랑스는 이미 백 년 전부터 아주 우수하고 정교한 임산부 관련 보건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태아가 건강하게 발달하도록 잘 관리하고 있죠. 건강한 임신은 건강한 아기를 낳고, 이는 건강한 성인으로 이어집니다.

사실 프랑스인은 지난 세기 세계 대전을 직접 겪었습니다. 영국군과 독일군이 프랑스 땅에 와서 싸웠죠.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인의 건강은 아주 우수합니다. 영국인이니 독일인과 체형이나 신체 조건, 자연 환경은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더 오래 건강하게 살죠. 출생 후 환경이 좋더라도 불량하게 관리된 임신은 불량한 아기를 낳고, 이는 열악한 건강의 성인으로 이어집니다.

 

마른 임산부가 레전드?

임신 중에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돕니다. 모 연예인이 임신 중에도 빼빼 마른 몸매를 유지했다고 하면서 진위를 알 수 없는 가십이 오가기도 합니다. 심지어 팔다리가 가늘고 배만 볼록해야 “레전드” 산모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부 이야기이지만,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임신 중에는 살이 찌긴 하죠. 하지만 체중 증가에 대한 두려움으로, 임신 중에도 무리한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은 정말 피해야 할 일입니다.

음식이 부족하면 태아는 굶주리게 됩니다. 일단 태아는 뇌를 살리고, 다른 장기의 발달은 뒤로 미루어 놓는 응급 조치를 합니다. 따라서 영양 실조를 앓은 임산부의 아기는 간이나, 췌장, 위장관이 보통보다 작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장 기관은 콜레스테롤과 혈당 조절에 아주 중요한 기관이죠. 따라서 굶고 자란 아기는 나중에 콜레스테롤과 혈당 관련한 건강 문제를 많이 겪게 됩니다.  흉선, 즉 가슴 가운데 있는 면역기관도 성장이 지연됩니다. 따라서 여러 감염성 질환에 더 많이 걸리죠. 감기를 달고 살게 됩니다.

재태 중에 영양 공급이 충분하지 않았던 아이가, 출생 전 프로그램된 것과 너무 다른 환경에서 살면 건강이 해를 입게 됩니다. 바로 “불일치”때문이죠. 급격한 세계화가 일어나며,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이 널려 있는 오늘날에는 이러한 진화적 불일치가 큰 문제가 됩니다. 출생 후에 아기는 금새 정상 수준의 체중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발달이 정체된 신체 내부 기관, 특히 간, 췌장, 위장관은 결코 회복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재태 중에 어머니가 충분한 영양공급을 제공했다면, 이런 내장기관이 잘 자랐을 것입니다. 그러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내장 기관은, 초콜릿 공장 같은 현대 사회의 과다한 지방과 설탕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설상가상이죠. 연약한 장기에 지나친 부하가 걸리게 되고, 결국 비만, 당뇨, 고혈압, 동맥경화 등이 발생하게 됩니다.

 

Figure 2 만삭 사진. 임신 중에는 태교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태교는 바로 음식이다. TipsTimesAdmin (2013) [online], available at: https://www.flickr.com/photos/tipstimesadmin/11557918553 [Accessed 17 Jan 2017]

 

임신 중 식사는 어떻게

그렇다면 임신 중에 건강한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임신 중 권장 음식에 대한 문헌은 아주 많습니다만, 다 읽기도 지키기도 어렵습니다. 차라리 그냥 내 몸이 시키는대로, 내키는 것을 다 먹으면 될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진화적으로 여성의 몸은 태아, 그리고 본인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입덧이나 혹은 음식 갈망이 생기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따라서 입덧이 일어나는데, 무리해서 싫은 음식을 우겨넣는 것은 좋지 않죠. 반대로 시큼한 과일이 먹고 싶으면, 한겨울이라 좀 비싸더라도 사먹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 몸의 신호를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몸은 또한 기름지고 달콤한 음식을 선호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임신과 무관하게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임신 중에 “내 입맛이 당기는 음식이 바로 자연이 나에게 내린 명령”이라면서, 이것저것 마구 먹어서도 곤란합니다. 밤에 치킨과 콜라가 땅기는 것은, 아기가 먹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원래 그랬잖아요). 만약 그렇다면 술 좋아하는 분은 술도 마시고, 담배 좋아하는 분도 담배도 피워야 합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주 간단하고 유용한 방법이 있습니다.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부디 먹어주었으면 하는 음식을 드시면 됩니다. 소중한 자녀가 나중에 무슨 음식을 즐기게 되길 원하시나요? 그것을 드십시오. 아마 나중에 어머니가 이유식을 직접 만들거나 고르고, 이후에도 주로 어떤 음식을 먹으라고 교육과 지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음식 교육을 미리 시작한다고 생각하시고, 우리 아이가 나중에 좋아할 (정확하게 말하면, 좋아하게 되기를 바라는) 음식을 많이 드십시오. 진정한 태교는 식사입니다.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경희대학교 의학 전공,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호주국립대학교 인문사회대 석사
서울대학교 신경인류학 박사과정 수료,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강사
의생명연구원 연구원,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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