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혹은 여자? - 진화의학으로 보는 여성의 건강

 

'여인이 유모 일을 시작한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남편의 경제력도 형편없었다. 여인은 ‘살려고 발버둥치는’ 심정으로 유모일을 시작했다. 마침 아들을 낳은 지 석 달 되던 때였다. 남의 집 아이에 젖을 물릴 때마다, 자기 아들이 생각난 그녀는 가끔 집으로 돌아가 ‘뼈만 남은 어린 것을 품고’ ‘눈물 섞인 젖’을 먹였다. 그런데 주인집에서 그 일을 알아차렸다. 주인은 ‘우리 집 아기 젖을 마음대로 하려거든 일없으니 가라’고 하였다. 유모살이를 할 수 없다면, 온 식구가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여인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주인에게 맹세했다. 엄마의 ‘젖을 빼앗긴’ 아들은 다섯 달 만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동아일보 1928년 3월 6일자, <이승원, 사리진 직업의 역사>에서 재인용]

 

• 젖을 주지 못하는 엄마의 아픔

할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나 모유를 주고 싶은 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아마 분유가 모유보다 더 좋기 때문에, 모유를 주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은 어머니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산업화된 국가의 경우, 최소 6개월의 모유 수유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최소한의 모유 수유’도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죠.

 

의학적으로 어머니의 건강(결핵이나 에이즈 보균자, 항암치료, 유방 수술 등) 상의 문제가 있거나 신생아의 대사 장애, 알러지 등이 있으면 모유 수유를 하지 않도록 권유합니다. 햇빛이 부족한 캐나다에서는 비타민 D가 포함된 분유를 병행하도록 권장하고 있고, 철 결핍이 우려되는 경우에도 혼합 수유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약 2-5%의 여성은 젖이 너무 적게 나오는데, 이런 경우에도 소위 ‘완모수’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모유 수유를 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이런 불가피한 의학적 이유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이보다는 산모가 육아에 전념할 수 없게 만드는 경제적 어려움이 주된 이유입니다. 게다가 당장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단지 몇 달의 수유를 위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직장에 보육시설을 두어, 업무 중에 틈틈이 젖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죠.

 

Figure 1모유를 먹고 있는 아기. 일부 의학적인 이유로 모유 수유가 어려운 경우가 있지만, 대개 모유 수유를 원하는 만큼 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available at: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reastfeeding_baby.jpg]

 

• 유모의 전통

사실 모유를 주지 않는 어머니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17-18세기 유럽에서는 유모를 두는 것이 인기였는데, 과거 왕족이나 귀족들만 유모를 두던 것에서 나아가 신흥 부르주아나 중류층에서도 유모를 들이고는 했습니다. 당시 영국 아이 중 절반 이상이 유모가 주는 젖을 먹고 자랐다고 합니다. 심지어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는 무려 열 명 중 아홉 명의 아기들이 유모의 손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서양만이 아닙니다. 조선 시대에도 왕가의 자손이나 지체 높은 양반집에서는 반드시 유모가 있었죠. 유모의 자식들은 과연 무엇을 먹고 허기를 달랬을까 싶습니다만.

 

그러나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유모 붐은, 아기보다는 어머니의 원활한 대외 활동을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돈과 지위를 이용하여 낮은 계층의 아이가 먹을 젖을 빼앗아, 자신의 아이에게 먹인 셈입니다. 사교계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래서 이러한 유행은 곧 도덕적 비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개신교도들은 젖을 먹이지 않는 어머니의 행동은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여겼죠. 게다가 때마침 등장한 국민 국가의 정치적 움직임으로 인해, ‘건강한 국민’을 길러내는 ‘숭고한 어머니의 모유’가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교 활동을 위해 유모를 들였던 상류층의 의식이나, 모유를 먹여 국가를 위한 노동자와 군인을 양성해야 한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그 입장은 달랐지만, 모두 순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빈민들은 자신의 아기에게 줄 젖을 팔아 생계를 이어야 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식에게 어설픈 대용식을 주어 ‘건강한 국민을 양성할’ 여성의 의무를 게을리한다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죠.

 

Figure 2 유모(the wet nurse). 알프레드 롤 (1890년 작).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류층에서 유모를 들여 젖을 주는 것은 보편적인 관행이었다. 하지만 정작 유모는 자기 자식에게는 제대로 젖을 주지 못했다. 19세기 후반 모유 대체식이 개발되자, 유모(wet nurse)에 빗대어 건모(dry nurse)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available at: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oll_Wet_nurse.jpg]

 

• 분유의 승리

유모의 인기가 점점 사그라지면서 유아 대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우유와 같은 동물의 젖을 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위생이나 영양에서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죠. 그러던 중에 1867년 헨리 네슬레(Henri Nestle)가 아기를 위한 농축 우유를 개발하면 꽤 인기를 얻게 됩니다. 네. 다국적 식품회사 네슬레의 창립자입니다. 하지만 초기의 대용식은 큰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영양 수준이 부족하여, 아기들이 각기병이나 괴혈병에 걸리곤 했던 것이죠. 멸균할 방법도 없어서, 위생적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분유의 질이 상당히 좋아집니다. 지금도 시판되고 있는 시밀락(Similac)이 1920년대에, 그리고 엔파밀(Enfamil)이 1950년대에 개발됩니다. 영양학적으로 큰 손색이 없었을 뿐 아니라, 위생적이었죠. 6-70년대 미국 사회를 지배한 과학 만능주의의 분위기에 휩쓸려, 모유를 주는 엄마는 뭔가 ‘원시’적인 것으로 취급되게 됩니다. 일부 통계에 의하면 온전한 모유 수유율이 무려 2%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70년대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 네 명 중 세 명은 오로지 분유만 먹고 자랐습니다. 심지어 소아과 의사들이나 육아 전문가들이 분유 수유를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죠. 분유가 영양학적인 면에서는 별로 손색이 없다 하더라도, 면역인자의 전달이나 정서적 교감 등의 다양한 점에서 불리하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미국의 분유 수유율은 상당히 떨어집니다. 유니세프(UNICEF)나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 국제기구에서는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Baby Friendly Hospital Initiative, BFI)’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분유 회사가 병원에 ‘무료 분유’를 제공하거나 유아 관련 지원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후 대형 유아 식품 회사들은 밖으로 눈을 돌려, 절반 이상의 매출을 아시아 등 미국이나 유럽보다 분유에 대한 규제가 덜하고, 모유 수유에 대한 인식이 적은 지역에서 거두고 있습니다.

 

Figure 3 네슬레의 유아식 광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위생적인 분유는 유모의 역할을 상당부분 대체했다. [available at: https://en.wikipedia.org/wiki/File:Nestl%C3%A9_Food_advertisement,_1915.jpg]

 

• 모유의 반격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분유(Formula)가 모유보다 더 ‘우수’합니다. 분유를 먹고 자란 아기들의 체중과 신장은, 모유 수유아에 비해서 훨씬 빠르죠. 그러나 진화인류학자 웬다 트레바탄에 의하면, 이러한 ‘빠른’ 성장은 ‘정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급속한 성장이 불러오는 비만, 당뇨 등 대사성 장애의 문제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되는 표준 성장 곡선은, 대개 분유 수유가 보편적이던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모유 수유를 하면 정상보다 더 ‘작고’, 더 ‘가벼운’ 것으로 오인할 수 있죠.

 

모유의 우수성에 대해서 들자면 책을 한권 써도 모자랍니다. 대충 제목만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두 2000년 이후 보고된 과학적 논문에서 모은 것입니다.

 

“흉선 크기의 증가, 림프구 생산 촉진을 통한 면역기능의 강화, 모유 내 면역글로불린(Ig) 증가, 항염증작용, 락토페린과 철- 항감염(특히 대장균과 이질균), 모유단백질 카세인- 세균 감염을 방어(특히 연쇄상구균과 헤모필루스균), 소화기관 성숙을 촉진, 소화 기능을 향상시키는 효소 증가, 성장과 발달을 촉진하는 호르몬이나 성장인자 증가, 프로락틴-영아기 및 그 이후 시기에 신경내분비계통 발달을 조절, 젖병이나 물, 음식물 내의 오염원과의 접촉 제한, 예방접종에 대한 반응 강화, 설사, 기타 소화기계 질병 및 탈수의 발생률 감소, 호흡기계 질환 감소, 중이염 및 요로감염 감소, 영아 돌연사 증후군(sudden infant syndrome)의 감소, 제1형 당뇨병, 셀리악병(celiac disease), 염증성 장질환, 아토피성질환, 다발성경화증, 비만, 크론씨병과 같은 만성 질환에 대한 보호효과, 동맥경화로 인한 사망률을 완화, 초기 영아기의 우수한 지질 프로파일, 천식발생률 감소, 소아기 백혈병 및 림프종에 대한 보호효과, 어머니의 생식능력을 억제하여 적절하게 출생 간격을 연장, 우수한 인지발달, 우월한 시각 기술 / 조기 운동발달 / 후기 행동문제의 감소, 제2형 당뇨병의 발생률 감소, 과체중의 위험성 감소, 생애 후반 수축기 및 이완기 혈압의 감소, 상향사회이동성 증가, 신장 증가, 우수한 시력, 조현병 발생 위험 감소, 전반적인 면역 기능 강화, 모유수유가 어머니에게 갖는 이점, 산후 출혈 방지, 신속한 산전 체중 복귀, 유방암 발생률 감소, 빈혈, 방광 및 기타 감염의 중증도 약화, 골다공증 및 관련 골절의 위험도 감소, 동맥경화 및 심장마비 위험도 감소, 제2형 당뇨병 발생률 감소)"

 

아니 이렇게 모유 수유가 좋다면, 도대체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이유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캠페인과 의사, 병원의 노력 등에 힘입어, 미국의 모유 수유율은 1970년대 최저점을 찍고,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최근 미국의 모유 수유 경험율은 73.9% (2007-8년 기준)입니다. 이른바 완모수, 즉 6개월 완전모유수유율도 세계적으로 약 35%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모유 수유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이제 모두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상황은 조금 예외적입니다. 한국의 모유 수유율은 1970년대 무려 90%에 이르던 것이, 80년대 들어서 점점 낮아져 현재 6개월 완전 모유 수유율은 18.3%에 지나지 않습니다(유니세프 조사). 더 흥미로운 것은 출산 초기에는 수유율이 무려 95.2%에 이르다가, 3개월 무렵에 47.5%로 하락하여 6개월에 18.3%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본의 경우 생후 1개월 모유수유율이 45~6%이고, 4~6개월이 되어도 41~45%를 유지하는 경향과 아주 다른 양상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Figure 4 젖을 주고 있는 어머니. 미국 중심의 문화에서 여성의 유방은 성적 대상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유방의 본연적 가치를 되찾으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이른바 ‘모유 수유 정상화 (normalize breast feeding)’라는 자생적 문화 운동은 공공장소나 직장, 학교 등에서 공개적인 모유 수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려는 것이다. #normalizebreastfeeding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수유 사진을 올리는 행동을 포함한다. [available at: https://goo.gl/TjpkZI]

 

• 수유권을 박탈당한 엄마들

한국의 출산 초기 모유 수유율 95.2%는 엄청난 수치입니다. 거의 모든 산모가 모유 수유를 시도한다는 것인데, 이는 모유 수유율이 높기로 유명한 스웨덴(97.3%)에 버금가는 대단히 높은 비율입니다. 참고로 중국이나 일본은 1개월 모유 수유율이 각각 48, 45%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국은 29%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어머니들은 최대한 젖을 주고 싶어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모유 수유율은 3개월까지, 절반 가량의 어머니가 지속할 정도로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뚝 떨어집니다. 혹시 3개월의 출산 휴가가 끝나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여성의 교육 수준이 아주 높은 국가입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모유 수유에 대해 잘 몰라서 하지 않을 가능성은 아주 낮습니다. 의료진과 의료시스템의 수준도 높기 때문에, 산전부터 정확한 정보와 교육을 받게 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모유 수유에 대해서 비협조적인 직장과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유방은 성적인 대상으로만 간주되며, 꽁꽁 가려야 하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공공장소나 직장에서의 수유는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수유실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직접 수유는 고사하고 유축기로 젖을 짜서 보관할 냉장고도 구하기 어려운 직장이 많습니다.

 

물론 모유 수유를 할지 혹은 대체식을 줄지 여부는 전적으로 어머니가 선택할 권리입니다. 의학적 이유로, 혹은 그 외의 다른 개인적인 이유로 분유를 줄 수도 있습니다. 절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어머니는 모유를 주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출산 초기 모유 수유율 95%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사교계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 유모를 들인 17세기 유럽 귀족 여성에게 적용한 잣대를 들이대면 안된다는 것이죠.

 

1928년 동아일보에 등장하는 불쌍한 유모는, 남의 아기 젖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굶겨 죽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이제는 분유가 있으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유 수유를 원하는 엄마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출산 후 3개월만에 직장으로 복귀하라고 강요하는 것일까요? 육아 휴직은 왜 이렇게 눈치가 보이고, 왜 직장 내 영아 보육시설은 꿈도 꾸기 어려운 것일까요? 갓난아기에게 젖을 주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시간을 빼앗아가면서까지 이룩해야 할 사회적 가치란 과연 무엇일까요? 어떤 의미에서 1928년 유모의 비극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자 약력: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 ‘여성의 진화(2017, 근간)등을 저술했다.

 

참고문헌:

여성의 진화-몸, 생애사, 건강 (2017, 에이도스)

사라진 직업의 역사 (2011, 이승원, 자음과 모음)

보건복지 이슈앤포커스 (2011,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경희대학교 의학 전공,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호주국립대학교 인문사회대 석사
서울대학교 신경인류학 박사과정 수료,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강사
의생명연구원 연구원,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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