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남자입니다.

어릴 적부터 작심삼일, 아니 작심일일, 심할 땐 작심 반나절이라고 할 만큼 무엇이든 우직하게 하지 못했던 성격입니다. 당연히 ADHD인가 싶어서 중학생 시절 정신과를 갔고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약을 한 6개월 정도 먹은 다음엔 약간의 호전이 보이다가 그 후로는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임의로 단약했고, 고등학생 때도 4개월 정도 먹었는데 다시 변화가 보이지 않아 관두고, 군입대 후에 군병원에서도 범불안장애, 우울증 소견에 대해 듣고 ADHD 약물까지 먹었는데 그땐 괜찮아서 다행히 무사히 전역했습니다. 제대 이후 약을 안 먹을 땐 심하고 먹을 때도 그리 큰 호전은 안 보이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간 얼마 하지 않고 관둔 것만 해도 아르바이트 7개, 학교 수업이야 말할 것도 없고 단지 결석만 안 했을 뿐 언제나 성적은 바닥이었어요. 대인관계에서도 4차원 소리 듣는 건 부지기수였고.. 그러다 보니 항상 매사에 긴장하고 땀 흘리고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집착하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게 되더라고요. 피해의식도 커지고요.

 

솔직히 약물 말고 다른 치료법을 찾고 싶은데 그런 게 있을까요? 지금도 물론 대학병원 다니면서 약을 먹고 있는데 호전되지 않습니다. 이 생활이 벌써 10개월이에요...

아 그리고 덧붙이자면 오랫동안 외출을 안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시간 개념이 사라진 것 같아요. 이제는 취업준비니 뭐니 하면서 외부생활을 시작했는데도 날짜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은데 이런 것도 혹시 무슨 질환과 관련이 있을까요? 예를 들자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한두 달 지난 것 같은데 실제로는 반년씩 지났다던지 그런 경우 말입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입니다.

오래전부터 ADHD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계시군요. 그에 더해 우울증과 불안장애까지 함께 겪고 계시다니 질문자님께서 오랫동안 가져온 마음의 병이 얼마나 고되었을지 짐작이 됩니다.

 

ADHD는 기질적인 원인이 비교적 뚜렷한 병입니다. 즉 심리적인 원인보다는 뇌 자체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에 의한 원인이 더욱 두드러지는 병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물치료에도 반응이 비교적 좋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ADHD의 여러 가지 증상들 중, 질문자님께서 말씀하신 증상들-집중력 저하와 주의 이탈(distraction) 같은 증상들의 경우에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 증상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았을 때에 단순히 덜렁거리고, 깜박깜박하는 모습, 산만하고 어수선한 모습, 진득하지 모습 등과 같이 어떤 습성적 결함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환자분들이 자신의 그러한 모습이 실제로는 뇌의 병 때문에 그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격과 버릇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정말로 '얕은 사람'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제대로 치료되지 못하는 ADHD는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로 이어질 우려가 무척 큽니다. 제대로 된 사회적 기능을 해내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자기비하적인 우울과 불안이 ADHD 자체의 증상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ADHD는 비교적 약물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질문자님께서는 약효를 거의 보지 못하셨다는 이유 또한 이러한 원인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울과 불안이 심할수록, 낮은 자존감이 악화될수록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언가를 이루고 성취해내겠다는 의지와 목표가 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 깊게 자리 잡게 됩니다.

무의식이 실패를 회피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중도 포기입니다. 끝까지 모든 것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비극보다는, 중도에 포기해버리고 마는 길을 택하게 되곤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ADHD 증상에서 나타나는 집중력 저하와 주의력 이탈과 유사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우울증이 심화된 ADHD 환자분들의 악순환을 가속화시키게 됩니다. ADHD 증상을 치료하는 약물의 효과마저도 반감시켜버리게 됩니다.

지금 질문자님께서도 어쩌면 우울증을 유발하는 ADHD, 그리고 ADHD 증상을 따라 하게 되는 우울증 사이에서 끝이 없는 악순환을 경험하고 계신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치료과정조차도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고 거듭하여 지레 포기하게 되면서 말입니다.

 

마음의 병과 몸의 병, 뇌의 병과 심리의 병은 서로 다른 별개의 영역이 될 수 없습니다. 질문자님께서 이렇듯 점점 악화되는 순환에서 빠져나오시기 위해서는 그 악화일변도의 고리를 끊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ADHD 증상 호전을 위해서는 꾸준히 약물치료를 유지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10개월간 꾸준히 치료를 유지하고 계신다니 무척 마음이 놓이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약물만으로 증상이 충분히 좋아지지 않는다면, 기저의 우울과 불안 때문에 악화되어가는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를 주치의 선생님과 의논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또, 말씀하신 날짜 감각이나 약속을 잊고 깜박깜박하는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노트와 일기를 꾸준히 써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매일매일 하루를 정리하고 일과를 되돌아보기 위해서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무언가를 머릿속으로만 떠올리는 것과, 그것을 글로 직접 쓰고 다시 눈으로 읽어보는 것은 그 내용에 대한 뇌 속 각인의 과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포스트잇을 어디에나 손이 잘 닿을 수 있는 곳에 준비해놓고, 기억하고자 하는 내용 들을 그때그때마다 손으로 적어 붙여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과제를 완료할 때마다 포스트잇을 제거하는 과정을 반복해보십시오.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시간 감각과 주의력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찾게 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조차도 꾸준히, 진득하게 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을 꾸준히 실패 없이, 단 한 번의 끊김 없이 계속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도전하고, 중간에 흐트러지면 다시 도전하고, 그러다가 또 얼버무려지면 다시 또 도전하는 것. 실패하더라도 반복하는 그 도전의 과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모쪼록 질문자님의 오랜 고민에 새로운 해결의 빛이 깃들기를 응원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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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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