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연세 채움 정신과, 윤혜진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뭔가 나아지는 듯하면서도 나아지지 않는 이 우울증과 자살사고를 어쩌면 좋을까요? 물론, 우울증만 있는 건 아니라 경계선 성격 특징도 강하게 있다고 하셨어요.

몇 년 전 두 차례 입원을 해서 자살사고가 많이 줄었다가 올해 초에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어요. 올해 입원을 통해서 정말 약도 열심히 먹고, 상담도 열심히 가고, 병원에서 읽은 책을 통해 또 새로운 운동을 시도해보기로 약속하고 퇴원했어요.

그 후, 운동도 되게 열심히 하고 있고, 코로나 타격이 있는 직종임에도 불구하고 무관하게 일도 열심히 해서 성과가 매우 좋은 편이기도 하고요.

상담치료도, 약물치료도 굉장히 열심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꾸준히 심리상담을 가고, 꾸준히 약을 먹은 게 처음일 정도로 겉보기에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제 마음은 지옥 같아요. 외부적으로 나아진 것이 여러 가지 있으나, 마음속은 여전히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거든요.

 

운동을 하고, 상담을 받고, 약을 열심히 먹고, 외래도 열심히 가면 줄어들 것만 같았던 죽음에 대한 갈망이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현타가 온 건가 싶기도 하고요.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나아짐이 보이질 않으니까요.

날씨가 추워지면 저의 충동도 주춤하는 것이 저의 사이클이라서 자살사고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는데, 이런 생각 속에 살아가고 있으니 너무 괴로워요. 특히 힘들게 운동하고, 퇴근하고, 잠들기 전 이런 끔찍한 생각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엄청 공허해지면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다가 약에 취해 자기를 반복하고 있네요. 외래나 상담시간에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봤지만 자기 상이 그렇게 하루 이틀 만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전 당장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요?

계속 이런 느낌이라면, 약도 상담도 운동도 다 중단하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순간 들기도 하네요. 이 어두컴컴한 터널은 언제 끝이 보일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윤혜진입니다.

올해 초에 우울증과 자살사고로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증상이 많이 심하셨다고 하셨는데요, 그래도 입원 이후에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잘 유지하고 계신 부분에 대해서 많은 칭찬과 격려를 드리고 싶네요. 매일매일 제 때에 약을 챙겨 먹고, 매주 심리 상담 치료를 빠지지 않고 가는 것만 해도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꾸준히 약을 먹고 심리 상담을 가는데도 불구하고 증상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서 실망감을 느끼고 계신 것 같아요. 사실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하고 있는데도 별로 나아지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좌절감을 느끼게 되지요. 그리고 겉으로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내면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괴리감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정말 나아지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할 것 같아요.

날씨가 추워지면 좀 나아지는 사이클이라고 하셨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회복의 과정은 직선 코스가 아니고 곡선 코스이니까요, 기복이 있고 그것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좋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만약 기복의 바닥에 있는 거라면,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서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이만큼 발버둥 쳐 왔는데 겨우 이만큼 밖에 못 왔나 자괴감이 들 거예요.

 

사실 지금 모든 것을 너무 열심히 하고 계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일과 운동, 치료 셋 다 열심히 유지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에요. 종일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에는 운동까지 하고 집에 돌아오면 너무 피곤하고 지칠 것 같아요. 몸이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서는 감정도 당연히 영향을 받게 되지요. 회복과 치유를 위해 시작한 운동이지만 그게 의무가 되고, 짐이 되고 노동이 된다면 버거울 수 있어요.

이럴 땐 잠시 쉬어가는 걸 추천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약도 상담도 운동도 다 중단하는 게 아니라 일단 운동부터 쉬어 보는 식으로요. 휴식을 취하면서 조금 회복되고 바닥에서 올라오면 그때 나에게 맞는 스케줄로 다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터널의 끝은 반드시 올 거예요.

다만 그때까지 지치지 않으면서 치료를 잘 유지하는 것이 회복의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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