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혹시 이것도 치료가 필요한 것인지 궁금해서 묻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저는 그 사람에게 아주 빠르게 집착에 빠집니다. 물론 이 사실을 부정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거슬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전부 수집합니다. 동시에 가까워지려고 굉장히 노력해요. 그렇게 극도의 양가감정으로 괴로워하다가 노력 끝에 상대의 호의를 얻고 나면 행복에 겨워서 잠시 이 모든 것을 잊습니다.

그러다 다시 빠르게 환멸을 느끼고 더는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상대를 밀어내고 스스로 관계를 망쳐버리는데 그때마다 이유는 같습니다. '아마도 저 사람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저 사람은 속으로 날 경멸하고 무시하고 있을 것이다'와 같은 류의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역시 확인도 되지 않고 확인한다고 해서 의미도 없는 것이죠. 누구나 타인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고 마음에 들지 않거나 짜증이 나거나 무시하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좋은 부분만 보려고 노력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저는 상대가 완벽하게 절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게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요. 사소한 것에 극도로 예민해지고 그러다 보면 그냥 제 유해함에 그 사람과의 관계를 포기해버립니다. 이런 일을 거의 평생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하고 있어요.

두려움을 실현해 버리려는 자기 파괴적인 선택은 굳이 관계뿐만 아니라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어쨌든 원하는 건 상대와 잘 지내는 것이면서 막상 대화를 시작하면 상대를 공격부터 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데 이게 전혀 통제가 안 됩니다. 자주 내가 왜 이러는지 생각하고 정리하지만, 순간일 뿐 상대를 보면 또 분노가 치솟습니다. 그냥 그럴 때마다 관계를 포기하는 게 맞는 선택일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입니다.

반복되는 연인관계에서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군요. 서로 다른 상황에서 매번 같은 패턴의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무의식 속 문제를 암시하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똑같은 패턴이 반복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범인이 바로 나의 무의식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님께서는 이미 스스로 반복되는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본인 마음의 어떤 점이 자꾸 똑같은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보신 것 같습니다. 상대방에게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불안, 또 그 불안을 마주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모 아니면 도' 식의 극단적인 반응. 그 극단적인 반응 속에서 반복되는 불같은 감정의 소모.

어쩌면 질문자님의 지금 상황이 '두려움을 실현시켜버리는 자괴파괴적인 선택'이라고 말씀하신 그대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연인관계가 아니라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를 아는 것과 그것을 실질적으로 교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입니다. 불교에서는 '돈오점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오(頓悟)는 깨달음이고 점수(漸修)는 점진적인 수행입니다. 먼저 깨달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 뒤에 반드시 점진적인 수행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혹은 뒤집어 이야기하여 점진적인 수행 뒤에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로 통하기도 합니다.

지금 질문자님의 상황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돈오와 점수를 통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질문자님처럼 반복되는 문제를 포착하고 그 안에서 무의식의 문제를 눈치채는 것은 사실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그것이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첫걸음을 가장 어려워하고 그렇기 때문에 첫걸음이 가장 중요하지요.

하지만 질문자님께서도 말씀하셨듯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알면서도 매번 불같이 타오르고, 결국 파괴된 관계의 잿더미 속에서만 다시 한번 문제를 재확인할 뿐입니다.

그 첫걸음에서 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질문자님 스스로에 대한 발견을 실제적인 관계 속에 옮겨나가기 위한 점수(漸修), 즉 점진적인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은 그동안 살아오며 만든 나의 무의식적인 습관을 교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말투를 바꾸거나 자세를 교정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첫걸음에서 발견한 내 마음속의 무의식, 나를 힘들게 만드는 내 마음속 무언가의 정체에 대해서도 한층 더 깊은 이해와 분석이 필요합니다. 즉, 돈오(頓悟)가 필요합니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왜 그렇게 거절과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이 들끓고 있는지, 왜 나는 두려움과 불안 앞에서 모 아니면 도의 극단으로 치닫기만 하는지, 그 근본 속에는 어떤 감정이 어떤 사건이 숨어 있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탐색이 필요합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또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어려운 작업일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 전문가와 함께 오랜 시간 상담을 하며 지나야 할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간단한 글에 압축하여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질문자님께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을 떼어내고 있으심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나를 이해함을 통해 변화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입니다. 그 어려운 과정을 이어가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은 바로 '스스로에 대한 궁금증'에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님께서 갖고 계신 궁금증, 즉 나는 왜 이렇게 반복되는 문제에 빠지는가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모쪼록 질문자님의 반복된 혼란에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깃들 수 있기를 응원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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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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