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성인이 된 후 저를 죽이는 상상이 종종 들어 고민이 되어 사연 남깁니다. 저는 가정폭력, 심각한 학교폭력을 경험하며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 우울증을 심각하게 달고 살았고,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성장기에 자해를 하지는 않았지만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몇 번이나 올라가 자살을 시도한 적도 많았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는 다행히 다른 지역으로 벗어나 더 이상 폭력을 겪지는 않았지만, 이상한 상상이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주로 공부하거나 집중할 때 이런 상상이 드는데요. 주된 내용은 방 안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특히 가족)이 있고 그 사람을 제가 죽이려고 달려드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저를 죽여버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려는 저를 제가 목 조르거나 칼로 찌르거나 죽을 때까지 욕하면서 패는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제3의 또 다른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데려가는 상상을 반복해서 꾸게 됩니다.

상상 속에서는 제가 네 명이 나옵니다. 한 명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려는 또 다른 나, 그런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또 다른 나를 죽이는 지금의 나,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는 제3의 나와 사랑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 이렇게 나옵니다. 간혹 그냥 스스로를 죽이는 상상(생각)을 하는데 그러면 제3의 나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정말 미쳐버리겠습니다. 집중할 때마다 가끔 이렇게 나타나는 상상 때문에 혹여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다치면 나 때문인 것 같고 무섭습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환청이 보이지는 않고 집중할 때 문득 생각나는 그 생각이 정말 기분 나쁘고 힘듭니다. 정신적으로 우울증이 아직도 좀 지속되는 편이지만 잘 견디고 있는데 왜 이러는 걸까요? 가족과의 관계는 다 풀리지 않았지만 점차 회복 중인데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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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가족을 해치거나 구하는 자신의 모습, 그런 자신을 죽이는 것에 관한 생각이 자꾸 떠올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군요. 더불어 성장기 경험하신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으로 많이 어려운 시간을 지나오셨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가정과 학교에서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셨던 성장기에는 청소년 우울증을 경험하셨던 것 같습니다. 직접 자해를 하거나 하지는 않으셨지만 자살 생각과 시도도 여러 번 하셨고요. 성인이 되신 이후 이런 환경에 더 이상 노출되지 않게 되면서 우울감이나 자살 생각, 시도가 감소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가족을 해치는 자신의 모습과 그런 자신을 죽이는 또 다른 자신, 가족을 구하는 자신의 모습 등이 의지와 상관없이 떠올라 마음의 괴로움을 겪고 계신데요. 성장기의 가정폭력과 함께 가족 내 관계에서 경험하신 역동이 이런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연에 정확하게 어떤 가족 구성원을 해치거나 구하는지, 또 가족의 구성이나 역할, 각 가족과의 관계에 관해서까지는 남겨주지 않으셨기에 모든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해치는 자신의 모습, 그런 자신을 해치는 또 다른 자신, 가족을 구하는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이 가족 구성원들에 대해 사연자님이 갖고 계시는 복합적인 양가감정(ambivalence)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양가감정은 어떤 대상에 대해 상충되는 감정이나 행동, 생각을 동시에 갖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가족을 해친다는 것은 가족에 대한 분노, 원망, 미움과 같은 감정을 표출하고 싶은 욕망, 가족을 해치는 자신을 해치는 또 다른 자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안 된다는 윤리적, 도덕적 의무감과 죄책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가족을 지키고 구하는 제3의 자신은 역기능적인 가족관계 안에서 구원자로서 자신의 모습, 가족의 방패막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반영하는 것이지요. 이런 욕구와 바람들이 의식의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계속되면서 상상(생각)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는 원초아(id), 초자아(superego), 자아(ego)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데요. 원초아는 무의식의 차원으로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를 계속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욕구를 즉각적으로 충족시키며 긴장을 해소하는 데 목적이 있고 사회적인 규범이나 의무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반면 초자아는 도덕적 원리, 사회적 규범을 따르며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하는 것’, 윤리적 의무와 양심의 지배를 받습니다. 옳고 그름과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구별하며 자신을 조절하는 힘이 이 원초아로부터 비롯됩니다.

마지막으로 자아는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잘 적응하며 기능할 수 있도록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 등을 고려하여 어떤 욕구는 충족시키고 어떤 것은 지연시킬지를 결정하면서, 원초아가 원하는 방식으로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적응적이지 않다고 판단될 때는 대신할 수 있는 방안을 탐색합니다.

원초아가 원하는 본능적 욕구에만 지나치게 치우치거나, 반대로 초자아의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와 이상, 도덕적 원리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중간에서 조율자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렇게 원초아와 초자아, 자아는 상호작용하면서 무의식적 소망과 욕구를 조절하고 충족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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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자님의 경우 가족을 해치는 자신의 모습은 원초아에, 가족을 지키고 구하려는 또 다른 자아는 초자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을 해치는 자신을 죽이는 또 다른 자신은 자아 또는 초자아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의 모든 가정사와 그 안에서 가족 구성원들에게 느끼신 복합적인 감정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가족에 대한 미움과 분노, 원망과 같은 감정을 공격이라는 일차원적인 방식을 통해 해소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그래도 가족이니 그러면 안된다는 도덕적, 윤리적 규준 사이에서 무의식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고, 그 과정이 여러 개의 자신(자아)이라는 이미지로 상상(생각)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초자아와 원초아의 싸움을 중재하고 균형을 찾는 역할을 해야 할 자아의 모습은 아직 희미하거나 굳게 정립되지 않은 채 내적 괴로움과 고민을 겪고 계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스스로를 죽이는 상상을 하면 제3의 나라는 존재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이는 무의식적 갈등과 가족에 대한 양가감정을 아예 느끼지 못하도록 자신이라는 존재를 없애버리는(거세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갈등을 느끼지 못하도록, 아예 자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없애버리는 것이죠. 자신을 죽이는 상상까지 한다는 것은 무의식의 갈등과 여러 자아 사이의 충돌로 인한 심리적 부담이 사연자님께 그만큼 크게 느껴진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우울증이 지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전보다 많이 좋아지셨고 가족과의 관계도 다 풀린 것은 아니지만 회복 중인데 왜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시기도 하고, 속상하시기도 하실 것 같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또 과거의 일들에 대해 새롭게 평가하고 정리하기도 하며, 가족 구성원에 대해서도 예전에 가졌던 시각과 또 새로운 시각을 통해 바라보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런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 속에서 양가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예전에 나를 힘들게 했던 것에 대해 복수하거나 분노를 표출하고 공격하고 싶은 마음, 동시에 가족이기에 지키고 아끼며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들이 아직 복잡하게 얽혀 있고, 상상을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의지와 관계없이 떠오르는 이런 생각들로 많이 힘드시겠지만, 상상이 떠오른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그 상상 이면에 숨어 있는 사연자님의 감정, 무의식적인 욕구나 소망,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더 깊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에 대해 사연자님이 느끼시는 양가감정, 남아 있는 미움이나 원망, 서운함 등은 무엇인지, 또 그럼에도 지켜주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더 느끼시면서 가족과의 관계에서 느끼시는 본인의 솔직한 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수용해 주시는 연습을 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상상 자체를 하지 말아야지.’라고 무조건 억누르다 보면 그로 인해 더 스트레스를 받으실 수도 있고, 상상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과 관계없이 생각이 더 많이 나는 것을 경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상상 자체를 무조건 피하기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더 깊이 살펴보시면서 가족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이해하고 다뤄 가는 계기로 사용하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이 과정을 혼자 진행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신다면 정신과 전문의나 상담사를 통해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내면에 대한 더 깊은 탐색과 본인의 감정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수용을 통해 양가감정을 잘 다루고 무의식의 갈등이 통합되는 경험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의 균형을 찾고, 불완전한 현실이나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굳건한 '자아(ego)'를 확립해 나가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수면센터
대한민국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 이사, 사무총장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자문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감사자문위원회 위원
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 위원
생명존중정책민관협의회 위원, 산림청 산림치유포럼 이사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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