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안녕하세요 몇 년 동안 저를 괴롭히는 고민이 있어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20대 초반에 처음 정신과를 갔었고, 그 당시 매우 많이 힘든 상황이어서 매주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했습니다.

처음에 의사 선생님께서는 정말 잘 대해주셨어요. 하지만 어느 날 저를 너무 차갑고 성의 없게 대하시는 게 느껴졌어요. 그 날 저는 정말 상처를 많이 받았고, 매일 울며 자살시도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다시 병원에 갔을 때 전 어차피 죽을 거고 이제 병원에 안 올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선생님께서는 너무 따뜻한 얼굴로 다음 주에도 다시 오라고 저를 잡아주셨어요.

그 이후로 선생님께서 저를 많이 신경 써주시는 게 느껴졌어요. 아무도 없고 외로웠던 저를 정말 많이 위로해주셨고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저는 그 선생님을 존경하고 좋아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 게 너무너무 좋았지만 언젠간 다시 절 차갑게 대하시고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올까 봐 너무 불안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씀드렸고, 저는 원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그 선생님을 떠나서 너무 힘들고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잊히기를 바라면서 몇 년이 흘렀고 아직 낫지 않은 증상들로 다른 병원에 가서 그 선생님이 아닌 다른 선생님께 진료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다른 선생님께 치료받을 때도 자꾸 생각나고 아직도 저는 마지막에 선생님을 뵈었던 그날이 너무 생생해요. 대사 하나하나 감정까지도 모두 기억나고 그 생각 때문에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하루 종일 의사선생님 생각으로 매일 밤 눈물을 흘렸고 마음이 너무 아프고 힘들었어요. 존경하고 좋아하게 된 사람을 이제 영원히 볼 수 없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 모든 순간에 그 기억 때문에 아무것도 집중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었고 빨리 그 기억을 잊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다시 찾아가서 진료받으면 되는 건데 어차피 절 기억 못 하실 거 아니까 너무 두렵고,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자신을 이해를 못하겠어요.

 

나중에 찾아보니까 이런 게 전이현상과 비슷하다는 것을 대충은 알게 되었지만, 그 선생님께 진료받은 기간은 고작 몇 개월뿐이고 지금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도대체 왜 저는 그 선생님을 잊지 못하는 걸까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히겠지 생각했는데 아직도 너무 힘든 걸 보면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요?

정신과 의사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희주입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이전 주치의 선생님과의 관계가 아직도 그립고 심지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고 하셨네요. 다시 찾아가고 싶지만 기억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차마 찾아가지도 못하고 이래저래 마음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정신과 의사와 환자는 두 가지 차원에서 치료관계를 형성하는데요, 크게 현실관계와 전이관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현실관계는 말 그대로 의사와 환자의 현실의 모습을 바탕으로 맺는 관계입니다. 실제 관찰되는 행동들, 치료자의 관심,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태도 등을 통해서 의사와 환자라는 틀 안에서 관계를 형성합니다. 현실관계를 통해서 흔히들 라뽀라고 하는 신뢰감을 형성하게 됩니다. 아마 이전 선생님과 글쓴이분은 기본적으로 이 라뽀가 잘 형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전이관계는 과거에 중요한 사람과 가졌던 경험, 감정들이 현재의 의사선생님과의 치료 관계로 옮겨지고, 상대방을 마치 옛날의 그 사람인 것처럼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앞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과거의 사람과의 관계를 반복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현실관계와는 매우 다르지요. 치료의 방향에서 의사의 의도, 치료 시간이나 기간 같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서 전이관계가 커지거나 작아질 수 있습니다.

 

글쓴이분과 이전 선생님과의 관계는 온전히 현실관계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전이관계가 상당히 형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감정은 일반적인 현실세계에서의 의사-환자 관계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일단은 예전 선생님과의 관계가 그 사람과 사이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예전 관계의 복사본일 뿐이라는 객관적인 인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부모님이나 다른 중요했던 사람들의 모습 혹은 그들에게 바랐던 이상적인 모습이 당시의 의사선생님에게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위에 적어주신 내용들, 예컨대 먼저 병원에 안 올 것이라고 했지만 잡아주셨던 것, 외로움에 대한 위로, 너무나 따뜻한 얼굴. 이런 것들은 글쓴이분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잠깐 경험했지만 이후의 이런저런 이유로 충족되지 못하게 되면서,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게 되는 핵심적인 요소일 수 있습니다.

 

전이관계는 정신과에서 매우 중요한 치료요소입니다. 굳이 그때의 선생님에게 찾아가지 않더라도 지금의 주치의 선생님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이야기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강력한 전이관계는 오히려 치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디 좋은 선택을 하시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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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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