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김재원, 김준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요즘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에서 자녀를 잘 키우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정말인가요?
 

김준원 : 저도 자녀를 두고 있는 아빠 입장에서 주변에서 많이 들어봤어요. 이게 진심인지 우스갯소리인지 저도 헷갈리는데, 이 말이 생긴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것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머님들이 대부분 ‘아빠가 치료에 무관심하고, 나만 애쓰고 있고..’ 이렇게 원망을 하는 경우가 있고요, 오히려 아버님들은 ‘엄마가 너무 간섭이 지나치다’ 이런 식으로 서로 원망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관심이 좋은 건지 무관심이 좋은 건지 결론을 내기가 참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요, 저는 아빠가 양육에 얼마나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무관심한 게 맞는 건지에 대한 내용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실제로 주 양육자는 엄마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엄마의 양육방법, 모자간의 애착관계, 그리고 엄마가 정신적으로 건강한지의 여부들이 자녀의 발달과 연결이 된다는 연구들은 많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워요. 왜냐하면 아빠 양육 여부가 고려가 잘 되지 않거든요.

실제로, 아빠 양육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기존에 있는 것도 찾아보면, 아빠의 어떤 행동이 자녀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가 아니라, 아빠가 부재했을 때, 엄마 아빠가 이혼을 했거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거나, 부재 상황일 때 아이가 어떻게 자라느냐에 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도 이런 연구들을 살펴보면, 2000~2001년 사이에 영국에서 18522개 가정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코호트 연구’라고 해서 전향적 추적 연구라는 게 있어요. ‘밀레니엄 코호트 연구’라는 이름인데,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매년 체크를 해서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확인을 했어요. 이 연구에서 아이가 9개월 때 아빠가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가 아이의 문제행동 여부와 연관성이 있다고 하고, 아이가 5세 때 아빠가 얼마나 놀아줬느냐가 나중에 아이가 우울하냐 불안하냐를 보여주는 증상들과 연관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연구들을 근거로 해서 아빠의 양육 무관심이 자녀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절대 내릴 순 없을 것 같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지만 무관심은 답이 아니에요.
 

사진_픽사베이


Q. 그런데 아무래도 아빠는 바쁘잖아요. 아무래도 양육에 참여하기가 힘들 텐데, 어떻게 참여를 하면 좋을까요?
 

김준원 : 실제로 아빠와 아이가 상호작용을 연구한 연구들이 있어요. 비디오 촬영을 해서 체크를 했는데 결과는 엄마랑 비슷해요. 아빠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양육에 참여하느냐, 놀아주냐가 아이의 향후 우울, 불안, 문제행동들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재밌는 건, 그것뿐만 아니라 아빠가 얼마나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민감하냐가 중요해요. ‘정서적 민감성’이라는 말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데, 쉽게 말하면 아이가 현재 어떤 기분이고 어떤 생각이고 어떤 상황인지 계속 관심을 갖고 있느냐, 이런 문제거든요. 이런 정서적 민감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는 조금 더 생각할만할 화두를 던져줘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아빠가 양육에 참여한다고 하면, 정형화되어있어요. 어렸을 때는 책 읽어주기, 초등학생이 되면 같이 뛰어놀기, 게임 같이하기, 이런 활동을 같이 하냐 안 하냐의 여부가 중요한 걸로 많이 알려져 있잖아요. 실제로 그런 활동이 중요하긴 하죠. 굉장히 중요한데, 그 못지않게 정서적으로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느냐가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Q. 사실 아이랑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모르는 아빠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잘 놀아줄 수 있을까요? 
 

김준원 : 우리 아이가 재밌다고 인정해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제가(아빠가) 진짜 재밌어야 돼요. 아이가 하고자 하는 놀이가 진짜 재밌어야 잘 놀아줄 수 있어요.

그런데 아빠들 대부분 그러시겠지만, 아이 한 명을 놀아주는 거랑 두 명 놀아주는 건 다르거든요. 에너지가 다르죠. 이때는 초점을 첫째 아이에게 맞춰야 할지 둘째 아이에게 맞춰야 할지, 상황에 따라서 이번에는 첫째 아이에 맞춰서, 그다음에는 둘째 아이 수준에 맞춰서 정말 재밌게 놀아주기, 내가 재밌어야 한다, 그것만 기본으로 삼으시면 될 거 같습니다.

 

Q. 아빠들이 딸이랑은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고민일 수도 있을 텐데, 성별이 다르잖아요? 같이 병원놀이를 해주거나 공주놀이를 해주거나 하면서 그렇게 같이 맞춰주면 되는 건가요?
 

김재원 : 아이가 원하는 놀이를 맞춰주면 될 거예요. 김준원 교수가 몇 년 전에 얘기했던 기억이 나는데, 자기는 주말이면 몸이 깨지도록 아이랑 놀아준다고 해요. 실제 놀이를 많이 해주는 거죠. 남자아이들 하고는 몸을 부대껴가며 놀아주면 되고요. 그러면서 부모도 같이 즐거워해야 되고요. 결국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정서적인 교감이 있으려면, 아이하고 부모가 같이 서로 즐거워야 해요. 그런데 사실 놀이의 종류가 중요하지는 않아요.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고, 정서적인 교감이 있을 수만 있다면, 놀이 종류는 상관이 없어요.

 

Q. 양육에 아빠가 참여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 친밀감도 높아지잖아요. 그렇게 오는 긍정적인 효과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김준원 :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굉장히 긴 연구가 있었어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의과대학생들을 상대로 75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가 있거든요. ‘그랜트 연구’라고 하는데, 이 연구는 부모 자녀관계가 성인기 이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에 대한 정보로 저희에게 메시지를 던져줘요. 

신기한 건 엄마 아빠의 관계가 서로 차이가 있었다는 거거든요. 엄마와의 관계가 좋은 성인들은 이후의 삶에서 노년기 치매 발생률이 낮아졌고, 연봉도 87000불 이상 높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빠들은 오히려 생각한 것과 다르게 성인기 이후에 불안 증상을 낮춰줬고, 75세 이후의 진짜 노년기가 됐을 때 삶의 만족도를 높였다는 거예요. 저도 이 결과를 보면서 되게 조금 흥미로웠는데, 오히려 엄마보다는 아빠랑의 관계가 성인이 돼서 정서적인 부분을 더 많이 보완시켜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결과들은 우리나라에도 있어요. 2016년도에 보고된 ‘한국 어린이 행복지수 국제 비교연구보고서’가 있거든요. 거기서 재밌게도, 엄마와의 좋은 관계가 있을 때, 아이의 성적과 상관없이 아이의 삶의 만족도가 높았고, 아빠와의 관계가 좋을수록 경제력이 부족하더라도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는 거죠. 

그런데 엄마 아빠들이 가장 관심 있는 게 그거잖아요. 엄마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성적을 높여야 하고 아빠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쉽게 안 되는 게 그 두 가지거든요. 아이의 성적은 안 올라가고, 아빠는 최선을 다하고 계시잖아요. 더 이상 돈을 벌 수가 없는데. 그런데 그런 노력보다는 아이랑 조금 더 적극적으로 놀아주는 게 아이의 삶의 만족도가 결정이 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결과였던 거 같아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아빠 양육에 대해서 전달하고 싶으신 게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준원 : 책을 집필하다가 알게 됐는데, 미국하고 일본에는 ‘아버지의 날’이 제정이 되어 있더라고요. 잘 모르시죠?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의미를 생각하자면, 가정에서 아버지들이 희생하고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감사하는 것과, 아버지들은 가정에 대해서 자신의 역할을 다시 한번 고민해볼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우리나라에는 아버지의 날은 제정되어 있진 않지만 아버지 역할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실제로 방송 프로그램도 아빠랑 놀러 가는 소재의 내용들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님들은 실제적으로 놀러 가기 참 어렵잖아요.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놀이 시간의 ‘양’보다는 ‘질’이거든요. 그리고 참여 정도가 정량화된 지표, 몇 시간을 놀아주느냐 몇 번을 놀아주느냐도 중요한데, 그것 외에도 얼마나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고민하느냐도 아이의 정신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재원 : ‘정서적 교감’ 이야기를 했는데요, 아빠든 엄마든 아이가 어떤 기분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들여다 봐 줘야 합니다.

‘정서적 공명(Emotional Tuning)’이라는 전문용어가 있는데, 거울처럼 아이의 정서나 행동에 대해서 반응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게 놀이의 형태일 수도 있고 대화의 형태일 수도 있긴 한데요, 정서적으로 잘 반응해주는 것이 양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해요. 부모 자녀 관계가 좋으면 그런 아이들은 나중에 사회에서 대인관계도 좋거든요. 사회성의 근간은 부모 자녀 관계에서 시작이 된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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