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편: 생애 첫 한 시간- 어머니 편

 

1편 요약: 인간의 아기는 다른 젖먹이 동물의 새끼에 비해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훨씬 일찍 태어나도록 진화했습니다. 따라서 출생 후 1년까지는 어머니와 찰싹 붙어서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남편과 가족, 그리고 사회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안타깝지만, 출생 직후부터 어머니와 분리되어 지내는 아기들이 많습니다. 의학적으로 불가피한 경우는 물론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출생 직후부터 모자가 같이 지내는 것은, 아기뿐 아니라 어머니의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722

 

모유의 진화학

인간을 포함한 모든 포유류는, 유선에서 분비되는 젖을 새끼에게 먹입니다. 물론 여성의 유방은 다양한 사회문화적인 의미가 있지만 (그래서 자칫하면 오해받기도 쉽지만), 진화생물학적으로는 젖을 생산하기 위해 특수하게 발달한 기관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유 활동은 여성, 즉 어머니의 건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왜냐하면 모유 수유는 믿을 수 없이 에너지가 많이 드는, 값비싼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요구되는 자원을 열량(Calorie)으로 계산해보면, 9개월의 임신기간동안 여성은 평소보다 약 340,000칼로리를 더 소모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평균 1,200칼로리를 더 소모하는 셈입니다. 물론 이 열량을 다 먹어서 보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기를 위해서 사용하는 에너지가 대략 이 정도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출산 이후 9개월 간의 수유를 위해서는 무려 670,000칼로리가 필요합니다. 하루에 무려 2,500칼로리 입니다. 그래서 모유 수유를 하는 어머니는 잘 먹어야 하고, 무리한 외부 활동도 줄여야 합니다. 뜻하지 않게 다이어트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어머니의 몸을 축내서, 아기에게 주는 것입니다.

시중에는 산모를 유혹하는 고가의 분유들이 많지만, 모유 생산에 드는 비용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모유 수유가 이렇게 값비싼 활동이기 때문에, 아기의 자극이 없으면 곧 중단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출산 중에, 혹은 출산 이후에 아기가 죽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슬픈 일이지만) 더 이상 모유를 생산할 필요가 없습니다. 젖은 금새 마르고, 생리(월경)가 다시 시작됩니다. 다음 임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몸은 그렇게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갓난아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머니에게 젖이 더 나오게 하려고 진화했습니다. 아기가 젖을 힘차게 빨면, 어머니의 대뇌 속 뇌하수체에서는 옥시토신이 분비됩니다. 옥시토신은 일차적으로 젖이 잘 나오도록 해주는 기능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아기를 더 사랑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아기와 사랑에 푹 빠진 어머니는, 아기 우는 소리만 들어도, 심지어 아기를 머리 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젖이 나옵니다. 동시에 어머니는 그동안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안타깝게도 남자들은,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아기가 어머니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죠.

Figure 1 모유 수유를 받고 있는 신생아. 산모는 종종 임신 중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모유 수유에 사용해야 한다. (Petr Kratochvil, Little baby breastfeeding [온라인], 출처: http://www.publicdomainpictures.net/view-image.php?image=17108 [Accessed 21 October 2016] )

 

출산 스트레스와 베이비 블루

특히 첫 한시간 동안 어머니와 아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은, 모자 애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산모는 진통 끝에 낳은 아기를 안고, 만지고, 냄새 맡으면서 첫 사랑에 빠집니다. 초유를 주면서 경험하는 부드러운 자극은, 임신 중에 늘어나 있던 자궁을 수축시킵니다. 태반도 일찍 배출되고, 산후 출혈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친 어머니를 사랑과 애착의 감정으로 위로해줍니다.

하지만 모든 출산이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수의 어머니는 산후에 우울감을 느끼는 베이비 블루스(Baby Blues)를 경험합니다. 아기에 대해 공연한 걱정이 많아지고, 쉽게 짜증이 납니다. 반대로 아기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젖도 잘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잠도 잘 자지 못하고, 식욕도 떨어지곤 합니다. 베이비 블루스는 곧 좋아지기도 하지만, 몇 주 이상 지속되는 산후 우울증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주 드물게는 심각한 수준의 산후 정신병을 경험하는 산모도 있습니다. 아기를 방임하거나 혹은 학대하기도 합니다. 

출산 후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는, 모성애가 부족하거나 혹은 어머니로서 자질이 모자라서 그러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 에드 하겐(Ed Hagen)이라는 인류학자는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산후의 우울감은 주변의 가족과 친척, 특히 남편으로부터 지지를 요청하는 절박한 신호라는 것입니다. 긴 진화적 역사동안, 아기를 건강하게 낳아 키우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습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로마시대 영아 사망률은 무려 75%에 달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세 명의 아기 중 한 명은 곧 죽었습니다. 아기를 위해서 당분간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어머니는,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충분한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면, 당신의 아기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강력한 신호가 바로 베이비 블루스입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아기를 낳아 키워야 했던 어머니가 사용할 수 있었던 최후의 협상전략입니다. 절대 모성애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베이비 블루스나 산후 우울증이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아기의 질병입니다. 막 낳은 아기가 건강하지 못하면, 어머니는 곧 우울감에 빠집니다. 원치 않는 임신이었거나, 혹은 부부관계가 좋지 않을 때도 그렇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남편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싱글맘 혹은 미혼모 에게도 산후 우울증이 잘 찾아옵니다. 모두에게 축복 받는 임신을 통해서 건강한 아기를 무리없이 순산할 때, 베이비 블루는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Figure 2 산모는 아기를 충분히 잘 키울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하거나, 남편, 가족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혹은 아기의 건강이 나쁠 때 산후 우울증에 쉽게 빠진다. (Alma Ayon, Mother and baby sleeping while breastfeeding [온라인],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almitaayon/8667992858 [Accessed 21 October 2016] )

 

모자 애착과 염증, 불면 그리고 스트레스

아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머니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진화적인 의미에서 말이죠. 그러니 아기 입장에서는 우울한 엄마가 좋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모유 수유가 어머니의 호르몬 수준을 변화시키고, 또한 임신 이후 증가된 각종 염증을 줄여준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염증 반응은 산후 우울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즉 아기에게 젖을 주면, 다시 말해서 아기가 젖을 빨면 산후 스트레스와 염증이 감소하고 이는 우울감을 줄여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득은 물론 어머니와 아기에게 돌아가고, 서로의 애착은 더욱 강해지게 됩니다.

게다가 아주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인류학자 짐 멕켄나 등의 연구에 의하면, 야간에 아기와 같이 자는 어머니의 정서가 더 안정되고 수면양상도 호전되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다가 중간중간에 젖을 주려면 분명 긴 수면을 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기와 같이 자면서 얻는 이점이, 조각난 수면이라는 결점을 보완하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산후 우울증을 종종 불면을 유발합니다. 그러면 의사들은 편안한 수면을 위해서, 아기와 각 방을 쓰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를 보면 아기와 따로 자는 것이 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동부 아마존의 한 부족은 이른바 ‘40번의 낮과 40번의 밤’이라고 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기를 낳은 후 약 40일 동안 산모에게 다른 일을 시키지 않고 격리하는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은 온전하게 아기와 지내라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먹을 것도 잘 주지 않습니다. 우리도 ‘삼칠일(三七日)’이라고 하여, 3주 동안 산모가 외부인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아마 분명 모자 애착을 돈독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외부인이 안에 들어 오지도, 어머니가 밖에 나가지도 못했으니 말입니다.

어머니의 정서적 안정은 아기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사실 아기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자연선택의 긴 과정을 통해서, 아기는 어머니의 신체적 회복과 정서적 안정을 돕도록 진화했습니다. 물론 출산 스트레스는 분명 ‘아기’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일이지만, 또한 ‘아기’가 가장 잘 다독여줄 수 있습니다. 많은 산모들은 아기와 같이 지내는 경험을 통해서, 스트레스보다는 오히려 힐링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건강한 교감의 핵심에 모유 수유와 따뜻한 살갗의 접촉, 속삭임, 눈맞춤 등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기는 그렇게 서로 돕도록, 다시 말해서 서로 열렬히 사랑하도록 진화했습니다. 아마 아마존의 어떤 부족도, 그리고 우리 선조도 이런 사실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다양한 이유로 직접 모유 수유를 잘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의학적 사정에 따라서, 분유를 줄 수 밖에 없을 수도 있고, 또 아기와 따로 잘 수 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은 이러한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모유 수유 및 출산 초기의 접촉은 애착을 형성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주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애착은 입양한 아기와도 강력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부 동물은 초기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면, 좀처럼 애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면에서 아주 독특합니다. 애착은 수년에서, 심지어는 수십년까지 지속되는 과정이므로, 육아 초기에 애착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기도 중요하지만, 지속성이 더 중요합니다.

Figure 3 1955년 토론토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를 안고 있다. 출산의 의료화는 분만과정에서 어머니와 아기를 서로에게서 박탈하였다. (Canadian Nurses Association(1955), Two nurses with baby in nursery at Toronto East General and Orthopaedic Hospital [Online], 출처: http://collectionscanada.gc.ca/pam_archives/index.php?fuseaction=genitem.displayItem&rec_nbr=3604072, [Accessed 21 October 2016])

 

‘생애 첫 한 시간’이 어머니에게 주는 의미

앞서 말한 것처럼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애착의 경험은, 그 둘의 신체적, 정서적 건강에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단지 건강상의 이득때문에, ‘생애 첫 한 시간’부터 아기와 같이 지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갓 낳은 아기를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고, 냄새 맡아야 하는, 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몇 달 동안 아기의 존재를 느껴왔다. 태아의 움직임을 경험하고, 심지어 대화를 하기도 했다. 막 태어난 갓난아기는 비로소 자신을 보여주며, 숨쉬기 시작한다. 랩에 싸인 상품을 막 뜯는 순간이다. 아마 여러분은 포장을 뜯고 선물 상자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짜릿한 경험을 기억할 것이다. 어머니는 바로 그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 선물 포장을 뜯어주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사실 길게 보면, 선물의 가치와 의미는 누가 선물 포장을 개봉했는지 와는 무관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게다가 그 선물은 바로 갓난아기가 아닌가? 물론 모자 간의 기나긴 관계는, 사실 첫 한 시간을 같이 보냈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 지와 별로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특별한 순간이 그 자체만으로 엄청나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생물인류학자 웬다 트레바스탄, 1987년.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우리는 ‘생애 첫 한 시간’을 의사나 간호사와 같이 보내게 되었습니다. 사실 현대인의 대부분은 ‘생애 마지막 한 시간’도 보통 병원에서 의사와 같이 보내고는 하죠. 물론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산모나 아기의 건강이 위험한데도, 무리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합니다. 반드시 의사의 조언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정상 분만이라면,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첫 사랑의 고백이나 결혼 프로포즈를, 다른 이에게 대신 맡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기와의 첫 조우입니다. 아기가 ‘생애 첫 한 시간’을 누구와 보내고 싶어하는 지는 분명합니다.

 

4줄 요약

모유 수유는 에너지가 아주 많이 드는 일이지만모자 애착을 강화시키고 스트레스와 염증 반응을 조절하며베이비 블루나 산후 우울증도 호전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유를 통한 교감과 애착을 통해아기와 깊은 사랑에 푹 빠지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멋진 경험입니다

물론 의학적 이유로 인해 모유수유나 모자 접촉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안타깝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이러한 어려움을 결국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아기의 생애 첫 한 시간을의사도 간호사도 아닌어머니와 같이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어머니는 아기의 첫 사랑입니다

 

참고문헌: Wenda Trevathan, Ancient Bodies, Modern Lives: How Evolution Has Shaped Women’s Health(2010).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경희대학교 의학 전공,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호주국립대학교 인문사회대 석사
서울대학교 신경인류학 박사과정 수료,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강사
의생명연구원 연구원,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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