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 10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LOL.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계의 전설이죠. 그만큼 완성도 높게 잘 만들어진 게임이라서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만들어진 게임 생태계를 망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명 패작러라고 하지요. 이들은 일부러 게임을 망치고 져서 하위 2% 티어에 속하려 애씁니다. 원래 실력은 상위 3% 티어에 속하는 사람들이 부계정을 만들어서 일부러 그런 짓을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나는 한 게임이라도 이겨서 올라가고 싶어 안달인데, 이 놈? 분? 들은 왜 그런 것일까요? 오늘은 저와 함께 이 놈? 분? 들의 심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 중 대부분은 ‘here & now’에서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먼 과거, 즉 ‘there & then’에서 형성된 것이지요. 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 진화심리학입니다. 우리 조상의 진화 역사에서 만들어진 마음이 현재에도 반복 작동하고 있다는 이론입니다. 진화 심리학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 한번 살펴볼까요?

몇 백만 년 전 우리 조상에게는 생존을 위해 어떠한 것이 중요할까요? 지금이야 우리는 세상에 대한 정보도 많이 알고, 문명의 이기로 인해 꽤 많이 통제되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은 환경이 완전히 달랐죠.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통제되지 않는 위험들이 가득한 세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조상들은 조금씩 통제되지 않는 환경들을 통제 가능하게 만드는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불도 그렇고, 농경도 그렇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의 이기가 그렇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것들을 통제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유전자 깊은 곳에서 ‘접근 동기’로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됩니다.

어라? 이러한 흐름은 게임에서도 보이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우리가 게임을 시작하면 모르는 것이 가득합니다. 통제되지 않고 어설픈 것들이 가득합니다. 게임을 반복하면서 그러한 것들을 알게 되고 통제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약간 비약해서 비유하자면, 게임 속에서 우리 진화 역사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유전자 깊은 곳에 새겨진 ‘접근 동기’를 활성화하는 것이지요. 게임이 주는 재미가 이런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 진화 역사는 실패하면 곧 죽음이 될 정도로 위험했죠. 마치 영화 ⌜헝거게임⌟처럼요. 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습니다. 안전한 시뮬레이션의 세계 속에서 실패를 해도 다시 쉽게 기회를 줍니다. 안전한 환경 속에서 통제되지 않는 것들을 점점 통제되게 만들면서 우리는 희열을 느낍니다.

 

진화 역사 속에서 하나 더 우리에게 중요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서열 싸움인데요. 지금이야 상대적 서열 싸움에서 최악으로 밑바닥에 떨어져도 생존의 문제까지는 연결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현재 대한민국에서는요. 복지 체계가 그 정도로는 갖추어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진화 역사는 달랐습니다. 자원이 턱 없이 부족한 환경이었죠. 그리고 20~30명 되는 작은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었죠. 여기서 상대적 서열 싸움은 생존 및 자손 번식과 연관된 중요한 자극이었습니다. 다른 동물들을 살펴봐도 알 수 있는데요. 소수의 알파맨이 많은 자원과 많은 성관계 기회를 독점을 합니다. 그 말은 나머지 알파맨이 되지 못한 개체들은 자원 획득과 성관계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뜻입니다.

분명 우리 진화 역사 속에서 상대적 서열 싸움은 생존과 번식에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여전히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에도 똑같이 작동되고 있습니다. 게임에서 레벨을 나누고 더 높은 레벨로 올라가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죠.

결국 우리는 게임을 통해 ‘통제력 획득’과 ‘상대적 서열 싸움’이라는 진화 역사를 가상공간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화 역사에서 그 두 가지 요인은 접근 동기로서, 사람이면 누구나 추구하도록 마음 세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 세팅을 이용해 게임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이고요.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패작러들은 이러한 이론에 일견 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통제력을 획득하고 레벨을 올리는데서 사람들은 희열을 느끼는데 반해서 이 패작러들은 거꾸로 가는 듯한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통제력 획득은 분명 우리에게 긍정적인 정서경험을 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살펴보면 어떠한 통제력을 획득하는 것에는 상당한 에너지와 노력이 소요가 됩니다. 학교 공부만 살펴봐도 알 수가 있죠. 그런데 게임은 일상생활에서 얻는 통제력 획득에 비해 조금 더 쉽게 통제력 획득이 가능합니다. 수학 문제처럼 어려우면 그때부터는 게임이 아니라 경시대회가 되겠지요. 게임은 보다 쉽게 통제력 획득이라는 경험을 하게 해 주기 때문에 재미라는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위 3% 티어에 속해있는 게이머들을 한 번 살펴보죠. 여기서부터는 통제력 획득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일상생활, 수학 문제만큼이나 어려운 수준에 도달하게 된 거죠. 그러니 재미가 반감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위 3% 티어의 게이머들이 하위 티어에서 게임을 한다면? 게임의 본래 기능을 즐길 수 있습니다. 쉽게 통제력 획득을 경험하는 바로 그것이요. 여기까지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진화적으로 상대서열을 높이는 것에 접근동기가 있고, 흥미를 느낀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맞습니다. 그 명제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긴 진화 역사 동안 20-3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집단을 이루며 생활했습니다. 즉, 30명이 넘어가는 수준에서의 자극은 우리 피부에 쉽게 와 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일상 경험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나와 거리가 먼 친구,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가 성적을 잘 받을 때는 우리에게 커다란 감정자극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친구가 아무리 전국 1등을 하더라도요. 그런데 바로 옆에 내 친구가 나보다 조금이라도 성적이 뛰어나면 그건 커다란 감정자극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인간에게 상대서열에 대한 추구는 뿌리 깊은 욕망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부에 와 닿게 느껴지는 작은 그룹에서의 자극만이 커다란 의미로 다가와집니다. 패작러들이 상위 3%의 티어에서만 플레이를 하다 보면, 실제로는 상위 3% 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느껴지는 것은 중하위권으로 느껴지는 것이지요. 주변이 다 상위 3%의 플레이어들이니까요. 결국 흥미는 감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지요. 하위 티어로 내려가는 방법입니다. 주변에 다 나보다 못하는 게이머들밖에 없으니, 자신이 최고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화 역사의 비유로 하면, 알파맨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지요. 이러한 기분은 유전자 속에서는 자원 독점과 성관계 기회 독점이라는 너무나도 중요한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그 중요한 의미만큼이나 그 희열의 크기도 무척이나 크지요. 알파맨이 되어 집단 내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희열이겠습니까. 자신보다 현저히 못하는 사람들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행위에 비견하는 희열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앞서 기술한 내용에서 보다시피 패작러들이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게 하는 심리적 유인 요소의 크기는 작지 않습니다. 뼛속 깊은(유전자 속 깊은) 곳에서 유래한 심리에 기인한 것이니까요. 시스템적인 접근 없이 패작러들에 대한 비난만으로는 쉽게 그러한 행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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