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오가는 말들이 너무 스트레스가 되고 버티는 게 힘이 들어 이렇게 도움을 요청드립니다.

 

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아주 조심하는 편입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이기도 하지만 친하면 친할수록 더욱더 상대방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할 때나 행동을 할 때 상대방 입장부터 생각하고 물어보고 행동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요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스트레스가 심하여 우울해지고 감당할 수가 없는 기분이 되어버립니다.

 

가령 계속 도와주다가 그 도와줌이 당연하게 되어 한 번 도와주지 않았다고 비난의 말을 듣게 된다거나 본인의 생각대로, 그게 상처가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생각대로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보면 남을 생각하지 않는 배려가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 말을 애인에게 하니 저보고 네가 그저 예민해서 그런 거다, 모두가 너처럼 아닌, 다들 그냥 그렇게 산다 그러면서 제가 느끼는 감정이나 기분이 소수에 해당되며 전 소수자이고 다수는 저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저 착하고 예민한 거라면서요.

그 말 역시도 너무 상처를 받아 그 사람에게 우리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너무 저 좋을 대로만 생각을 하는 걸까요? 더이상 이런 배려 없는 행동이나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털고 일어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습니다. 정말 죽어버리거나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사라지는 상상만 하게 됩니다.

제가 너무 이상한 사람일까요? 도와주세요.
 

사진_픽셀

 

답변)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당연한 일이죠,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는 주인공이니까요. 

질문자 분은 타인과 관계를 할 때 상대방이 상처 받지 않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적어주신 내용을 토대로 살펴보면, 본인이 상대방에게 상처 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변의 다른 분들도 이런 점은 비슷합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원치 않고, 상대방에게 상처 받는 것도 싫어할 거예요. 질문자 분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요. 

 

사람은 다양한 정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콩, 갑각류, 오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콩에만, 어떤 사람은 오이에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죠. 어떤 음식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물론 있겠죠.

많은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의 삶은 고달픕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지 않으니까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호의로 건네준 음식을 먹고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 있고, 오이를 빼 달라는 부탁을 깜빡한 음식이 나오는 경우도 있겠죠. 이런 경우에는 상대방과 관계가 틀어지게 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배려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나오는 식당으로 가야 하고, 종업원에게 음식의 세부 사항을 기억해주는 것을 당부해야 하고, 간식을 선물로 줄 때도 꼼꼼히 성분을 확인해야 하죠.

이런 배려를 받기 위해서는,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먼저 알려야겠죠.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자 분이 배려를 받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표현해 주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인 농담을 싫어하신다면 그것을 상대방에게 표현하셔야 하고, 비속어를 싫어하신다면 역시 표현하셔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오이 알레르기가 없기 때문에, 아무 말을 안 하면 쫄면에 오이가 들어갑니다. 오이 알레르기가 있다면, 빼 달라고 표현해야 배려받을 수 있죠.

마찬가지입니다.

 

'배려받아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다 말할 수가 없어요.' 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거의 모든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은 드물 겁니다. 같이 갈 수 있는 식당이 없으니까요.

마찬가지로 배려받아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은 사람 곁에는 다른 사람이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피곤하니까요. 에너지를 훨씬 덜 들이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배려받아야 하는 사람을 포기하고 그 사람에게 가겠죠.

이런 이유로 본인이 받아야 하는 배려들을 포기할 수 없다면, 주변에 적은 사람이 있는 삶을 선택하셔야하겠죠.

아니면 다른 사람이 질문자 분을 배려하면서까지 반드시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 되는 거죠. 뛰어난 재능을 가진 몇몇 사람은 실제로 이런 생활을 하곤 합니다. 그 사람이 아니면 일이 돌아가지 않으니, 많은 배려를 하면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죠. 친밀감이 있는 관계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또 다른 선택은, 본인이 받아야 하는 배려를 스스로 줄이는 것입니다.

무작정 참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배려 중에서, 중요하지 않거나 다소 불합리한 것들을 정리하는 거죠.

이 선택을 위해서는 '나는 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배려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셔야 할 듯합니다.

글 내용만으로는 쉽게 상처 받기 때문에 배려를 원하시는 것 같은데, 이게 맞다면, '왜 나는 쉽게 상처를 받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길에서 넘어지는 아이를 보신 적이 있으시겠죠.

어떤 아이는 넘어져도 그냥 일어나서 가고, 어떤 아이는 넘어지면 울다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일어나서 걸어갑니다. 어떤 아이는 넘어지면 울면서 그 자리에 눕는 아이도 있고, 어떤 아이는 넘어지면 바로 일어나서 부모에게 안긴 뒤, 울기 시작합니다.

아이의 경험에 따라서 다르겠죠. 넘어진 아이의 4가지 행동 중에 무엇이 좋다 나쁘다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넘어져도 울지 않고 일어나는 아이를 예로 들자면, 부모가 넘어져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그런 정도의 아픔은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걸 수도 있고, 반대로 부모가 넘어졌을 때 잘 다독였기 때문에, '이건 별 거 아니야.'라고 여겨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질문자 분이 남들보다 쉽게 상처를 받으시는 이유가 있으실 겁니다.

과거의 이유를 발견하시고, 그 이유를 현재 상황과 연결 지어 보신다면, 지금 겪고 있는 아픔이 어느 정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글을 토대로 보면,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오셨을 것 같습니다.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보통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 애인이나 부모님에게 욕을 먹으면 큰 상처를 받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직장 동료나 길거리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욕을 먹는다고 해서 큰 상처를 받지는 않습니다.

인간관계 중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본인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이유는, 인생에 중요한 인물이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중요한 인물이 아닐 수 있죠. 왜냐하면 중요한 무언가가 있어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구별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사람과 중요하지 않은 사람을 구별할 기준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관계에서 큰 상처를 받게 되죠.

어린 시절 중요한 사람이 자신을 힘들게 했었다면, 중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기 더 어렵습니다. 기준 자체가 엉망이 되기 때문이죠.

 

스스로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혼자서 아는 것은 어렵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한 평생 살았는데, 내 색안경이 어떤 색인지를, 색안경을 낀 채로 파악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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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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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도움됩니다. 조언 들으며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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