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용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대학에 들어갈 19살 여자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심한 따돌림을 겪었습니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라 따돌림을 당하는 것, 그리고 앞담 혹은 뒷담을 하루 종일 반년 내내 듣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매일 밤 다음날 아침엔 눈을 뜨지 않길 바랐고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있다는 사실에 낙담했습니다. 

 

1학년 2학기부터 시작된 우울감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2학년 땐 1학년 때 힘들었던 일들이 다른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너무나도 생생하게 저를 덮치곤 했습니다.

몇 분에 한 번씩 그랬고 너무나 생생한 기억에 몸이 굳은 채로 기억이 지나가는 동안 버텼습니다. 그러고 나면 무척 답답하고 우울해지고 가만히 앉아서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 스스로 저를 칼로 찌르는 상상을 많이 했는데 그러면 기분이 좀 나아졌습니다. 그게 점점 심해져서 자살 생각을 하게 됐는데 계획은 점점 구체적으로 변해갔습니다.

 

다행히 학교 상담선생님과의 지속적인 상담으로 자살이나 자해를 시행하지는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시시때때로 별 일이 없어도 기분이 바닥을 치고 울고 싶어 집니다. 그 기분은 자고 일어나지 않으면 쉽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너무 우울하고 슬픕니다. 화도 잘 조절하지 못하고 정말 작은 일에도 순식간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서 폭발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지쳐서 힘이 빠져 심각하게 우울하고 슬퍼집니다.

 

이제 고등학교도 졸업해서 상담선생님이랑 더 이상 상담할 수도 없는데 상태가 나날이 심해져서 걱정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길벗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용진입니다.

대학 입학을 앞둔 시점은 설렘과 기대뿐만 아니라 성인으로서 넓은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다는 부담감도 함께 느껴지는 시간이라 생각됩니다.

제게도 알아서 꾸려가야 할 시간과 인간관계들에 대한 기대뿐만 아니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느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과거의 힘든 경험들과 더불어 고민이 깊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경험을 하셨네요. 물론 잘 극복하면서 2, 3학년을 보내셨고 대학 입학까지 앞두고 계신 모습을 보니, 글쓴이님은 기본적으로 용기 있고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됩니다.

 

1학년 때의 따돌림의 경험을 간략하게 쓰셨지만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지 상상하기 힘듦이다.

당시에 경험으로 인하여 우울감 및 자해 사고까지 경험하시고, 그때의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 상대적으로 괜찮았던 이후의 고교생활도 때때로 괴롭히곤 했던 것 같습니다.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경험이지만 자꾸 떠올라서 괴롭히는 시간들에 대한 기억을 어떡할까요?

기억을 지우는 방법은 알다시피 없습니다.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일도 없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나간 일이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나는 2년의 시간을 잘 견뎌왔고 대학을 앞둔 사람입니다. 고교 1학년 때의 나는 과거에 존재하는 사람인 거죠.

인간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듯 사람들은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와 미래를 봅니다. 지금 글쓴이님은 현재의 시각이 아닌 과거의 나에 아직까지는 붙잡혀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닌 과거의 시각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떠나버린 버스를 붙잡을 수 없지만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서 정류장에서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변합니다. 성장합니다.

특히 아직 어린 글쓴이님은 한해 한 해가 아니고 매달 성장해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어려웠던 나를 이제는 보내버리세요. 지나간 버스. 나에겐 지나가서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로 말이죠.

글로 이렇게 쓰고 있지만 사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문득문득 힘들어질 때마다 앞서의 말씀들을 생각하면서 계속 연습해 나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깊은 우울증을 겪은 경우, 그 원인이 되었던 트라우마의 기억뿐만 아니라 생리학적으로 영향을 미쳐 비슷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상이 재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반복되면 ‘재발성’ 또는 ‘지속성’ 우울증이 되는 경우도 많이 관찰됩니다.

그렇기에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반복되면, 학창 시절 용기 내어 상담선생님을 찾아갔듯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의 선생님을 찾아가 보세요. 더욱 전문적인 상담과 해결책을 함께 만들어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글쓴이님의 앞에는 새로운 시간. 사람. 환경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것은 새롭고 때론 두려울 것입니다. 나에게 다가올 사람과 환경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그저 기대하고 때론 두렵고 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입니다. 나에 대해 현재와 미래에 대해 기대에 차고 긍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가십시오.

그러면 그렇게 긍정적이고 희망을 찾는 그런 사람으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며, 대학 입학 축하도 함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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