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근 SKY 캐슬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노승혜(윤세아 분)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편 역인 차민혁(김병철 분)과 대립각을 세워 아이들의 편에 서서 입장을 대변해주는 것이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전해주는 거 같습니다. 저도 노승혜를 응원하면서 스카이 캐슬 드라마를 보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노승혜도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굴레 속에서 다른 캐릭터와 다르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최근에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노승혜가 크게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사건이 아마도 친딸인 차세리(박유나 분)가 가짜 하버드생 흉내를 냈다는 거짓말이 드러나면서부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승혜가 딸의 거짓말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은 후 이수임(이태란 분)과 진진희(오나라 분)에게 자신의 기분을 털어놓는 장면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모르겠어요. 박사과정을 수료하고도 애들 잘 키우는 게 우선이지 싶어서 내 꿈은 다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내 인생이 빈 껍데기 같아요.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어요.”
 

사진_jtbc


이 표현이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의 본질을 잘 나타내 주는 것 같습니다. 노승혜(윤세아 분)는 자식(타자)때문에 자신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았습니다. 자신에 대한 욕망을 욕망하면서 살아왔던 게 아니라, 내 꿈은 다 포기하고, 타자(자식)에 대한 욕망만 욕망하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노승혜의 표현대로 결국은 ‘빈 껍데기’입니다. 나 자신에 대한 욕망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되어도 빈 껍데기로 남을 공산이 큽니다. 스카이 캐슬 드라마는 극단적인 경우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자식(타자)에 대한 욕망을 욕망하다가 결국은 허무함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하지요.

자식들은 결국 독립해야 하는 타자입니다. 그럼에도 욕망의 경계를 세우지 못하고 자식(타자)에 대한 욕망만 욕망하고 살게 되면, 허무함은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런 타자에 대한 욕망은 자신만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욕망이 투사된 타자(자식)도 무너뜨리는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나에게나 그에게나 모두 독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차세리(박유나 분)가 아빠인 차민혁에게 반항하며 쏟아내는 말은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빠 뜻대로 아빠가 원하는 대로 살아주려고 내가 얼마나 용썼는 줄 알아? 들킬까 봐 쩔쩔매면서 사는 내가 얼마나 초라했는지 아냐고. 그래도 참았어. 난 괴로워도 아빠는 좋을 테니까. 

그냥 차세리 가지고 아빠가 만족을 못 했잖아. 누군 거짓말하고 싶어서 해? 뻥 치고 싶어서 치냐고. B만 받아도 당장 목소리부터 달라졌잖아. 공부 잘하는 자식만 자식이라고 생각되게 만들었잖아.

들통나니까 차라리 후련하더라. 멍청하게 나 여태 왜 이러고 살았나 싶고. 난 이제 더 이상 아빠가 원하는 딸 노릇하기 싫어.”

 

차세리의 목소리를 한 번 더 들으니, 차세리도 응원하고 싶어 지네요. ‘난 괴로워도 아빠는 좋을 테니까.’라는 말이 부모의 욕망을 투사받은 자식의 힘든 짐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니까 가짜 하버드 대학생으로 표현이 된 것이지, 이것을 비유로 받아들인다면, 더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로 불리 우는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실제로 다니는 학생들도 차세리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성적에 쩔쩔매면서 사는 것이, ‘나는 괴로워도 부모님은 좋을 테니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욕망을 투사하게 되면, 자식도 스스로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부모로부터 투사된 욕망을 내재화하여 욕망하면서 살게 됩니다. 이런 순환 고리가 긍정이든 부정이든 너무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식을 해야 긍정적인 것은 살리고, 부정적인 것은 줄일 수 있으니까요.

그 방법에 관해서는 26번째 연재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자식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사랑으로 표현하고 살고 싶다면 자식을 하나의 객체로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할 수 있는 힘이 어른인 부모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자(자식)를 하나의 객체로 인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26번째 연재에서 언급한 ‘마음 읽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의 입장에서도 스스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욕망의 원동력이 나의 본래 모습으로부터 유래된 것인지, 부모로부터 투사된 욕망인지를요.

같은 공부를 하더라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동기를 가지고 하는 것과, 외부의 부모로부터 투사된 동기를 가지고 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다른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학문적으로도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는 커다란 차이를 낳는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고요.

또 개인의 행복 측면에서는 더더욱이 학문이라는 수단으로 측정될 수 없는 커다란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차세리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왈칵왈칵 쏟아졌던 것입니다. 차세리의 마지막 멘트를 다시 한번 언급해보고 싶네요.

“들통나니까 차라리 후련하더라. 멍청하게 나 여태 왜 이러고 살았나 싶고. 난 이제 더 이상 아빠가 원하는 딸 노릇하기 싫어.”
 

사진_jtbc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살지 않으면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속이고 사는 것은 일정 기간은 가능할지 모르더라도 언젠가는 들통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죽을 때까지 들통나지 않는 것이 최악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세리의 말마따나 들통나면 차라리 후련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들통나게 만들어야 할 것이 성인이 된 하나의 독립된 개체가 해야 할 의무입니다.

가짜 하버드 대학생이 은유적인 표현이라면, 그 본래의 의미는 부모로부터 투사된 욕망을 자신의 욕망인 줄로 착각하고 사는 것을 ‘가짜 하버드 대학생’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 번쯤은 꼭 생각해봐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욕망들이 ‘진짜’ 내 욕망인지, 부모로부터 투사된 욕망인지를요.

부모로부터 투사된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고 살게 되면 결국 괴로울 건 나 자신입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세 단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신체적 독립, 집에서 나와 따로 사는 것이지요. 또 하나는 경제적 독립,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는 것이지요. 마지막 하나가 정서적 독립입니다.

세 가지 중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이 뭐냐라고 물어보신다면 마지막 정서적 독립입니다. 이것은 평생 해 나아가야 할 숙제일 정도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숙제는 ‘나로부터 유래된 욕망’인지, ‘부모로부터 투사된 욕망’인지를 구별할 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20살이 넘은 성인이면 마땅히 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만약 성인이 되기 전에 그 숙제의 양을 부모가 줄여줄 수 있다면 그 자식은 얼마나 더 행복할 수 있을까요?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자식이 성인이 되기 전에는 자식 스스로보다 부모의 영향력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노승혜가 깨달은 지점이 이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차세리가 노승혜와 길거리 데이트를 하다가 노승혜에게 말합니다. 아빠 화가 평생 안 풀릴 거 같다며 그때 노승혜가 했던 말로 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왜 화가 안 풀려? 자식인데. 아빠도 지금 괴로우시겠지만, 차차 아시게 될 거야. 너보다 엄마, 아빠 잘못이 더 크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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