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링크) 정신과 의사가 본 SKY 캐슬 ①

 

이전 연재에서 ‘욕망폭력’과 ‘사랑’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현시대의 어른들이 자식들에게 하고 있는 건 ‘사랑’이 아니라 ‘욕망폭력’일지도 모른다고요. ‘SKY 캐슬’에서 보듯이요.

‘욕망폭력’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갈 수 있는 마법의 다리를 이번 연재에서 알려드리기로 했는데요. 그 답은 ‘SKY 캐슬’의 교육 코디 역인 김주영 선생님이 알려주실 겁니다.
 

SKY캐슬 김주영 (사진_JTBC)


악역인데 아이러니하신가요? 저도 아이러니했지만(작가의 심중도 궁금했습니다), 김주영 선생님이 답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한서진(염정아 분)과 김주영 선생님이 우주와 예서 문제로 대화하는 장면에 답이 있기 때문에 그 장면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서진은 자식에 대한 ‘욕망폭력’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고요. 예서는 그 딸입니다. 김주영 선생님이 한서진에게 예서가 우주라는 남자아이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고 알려주는 장면입니다.

 

한서진: 그럼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될까요?

김주영: 우주를 좋아하는 예서의 감정을 지지하고 격려하고 공감해주셔야 합니다.

한서진: 못 하게 말려야죠. 말려도 시원찮을 판에. 

김주영: 예서가 어머니께 숨김없이 제 마음을 오픈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야 아이의 마음을 컨트롤하실 수 있으니까요.

 

자, 고등학생 딸을 둔 부모라면, 딸이 다른 남자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 거 같나요? 한서진과 비슷한 반응이지 않을까요?

딸을 불러다 놓고 한서진처럼 말리려 들지 않을까요? 내 자식이 미성년자인데, 다른 남자아이와 이성교제를 한다는 것은 원치 않는 욕망이니까요. 그 욕망 그대로 자식한테 투사하기 때문에, 그냥 말립니다.

그런데 김주영 선생님의 답변은 어떻죠? ‘그 감정을 지지하고 격려하고 공감해주라.’고 합니다.

보통의 부모라면, ‘한창 예민할 시기이고, 사춘기고, 공부할 시기이고.’ 온갖 생각이 떠오르면서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닙니다. 미성년자에게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을 지지해주라니요.

 

이전 연재에서 대인관계에서 가장 주의할 점은 ‘주어를 나로 바꾸는 연습을 해야 한다.’라고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이 지점과 맞닿아 있는 내용입니다.

‘내 자식이 미성년자 때는 연애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욕망의 주어는 ‘내’가 아닙니다. 사실 주어가 ‘내’가 아닌 모든 욕망들은 ‘욕망 폭력’에 속한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부모들에게는 자식들에 대한 이러한 욕망들이 너무나 많이 내재되어 있지요. 그래서 ‘욕망폭력’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_픽스히어


그렇다면 이러한 ‘욕망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김주영 선생님이 이야기한 방법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지지하고 공감해주는 것. 마음읽기의 시작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출발 자체가 상대방으로부터 가능해집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지 않고 내 욕망만 주입하는 것은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이러한 마음읽기가 아이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입니다. 예빈(한서진의 둘째 딸)이 편의점에서 절도를 하고, 가출을 하면서 있었던 일련의 과정에 대해 엄마인 한서진이 반응했던 방식과 옆집 아주머니인 이수임(이태란 분)이 반응한 방식의 차이를 보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엄마인 한서진의 반응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한서진: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편의점 일로 혼내기를 했어. 시험 망쳤다고 혼내기를 했어. 반성문을 써도 모자랄 판에, 가출을 해?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한서진은 딸이 어떤 마음으로 절도를 하고, 시험을 망친 후 어떤 마음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혼내지도 않았는데 가출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에 대한 화만 낼뿐입니다.

출발 자체가 상대방(딸)에게 있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이수임(이태란 분)의 반응은 완전 다릅니다. 

 

이수임: 예빈아, 무슨 일 있어? 아줌마한테 말해봐. 우리 예빈이 속상하구나. 괜찮아. 괜찮아. 울어. 마음 놓고 울어. 

강예빈: 엄마는 내가, 내가 왜 도둑질했는지 관심 없어요. 내가 도둑질한 거 덮기만 하면 땡이에요. 내가 왜 도둑질했는지 물어보지도 않는다고요. 상관도 안 한다고요. (울음)

 

예빈이의 반응을 보면,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봐 주기를 아이들은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부모들은 그렇게까지 잘하지를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서의 옳고 그름만 보고 판단을 합니다.

SKY 캐슬 드라마 초반 비극의 중심에 있는 영재의 일기장에서도 그런 말들이 무수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 곧 있음 나오는 성적표. 한바탕 집은 또 난리가 나겠지. 내 기분이 어떤지 따윈 중요하지 않아. 공부만 잘하면 돼. 넌 그냥 공부만 잘하면 돼!!!!! ]

 

SKY 캐슬 드라마에 나온 예시들을 보면, ‘마음읽기’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를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드라마에서 ‘마음읽기’를 가장 잘하는 역할이 김주영 선생님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의문이 생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김주영 선생님처럼 하면 되는 거야?

 

물론, 아니겠지요? 너무 끔찍하죠.

저는 김주영 선생님과 이수임(이태란 분)의 기본기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읽기가 기본이 되는 것이요.

SKY 캐슬 주민이 이수임에게 아들이 수석 입학한 비결을 묻자 ‘비결이요? 비결이라고 할 건 없고, 애 눈높이에서 생각하려고 한 게 전부인데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지점은 김주영 선생님과 이수임이 다를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김주영 선생님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읽기’한 재료가 나쁘게 쓰일 뿐이고, 이수임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읽기’한 재료가 좋게 쓰이고 있는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수임(좌), 김주영(우) _JTBC


여타 다른 SKY 캐슬 어머니들은 ‘마음읽기’조차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게 좋게 가고 있는지 나쁘게 가고 있는지도 모르게 그냥 가고 있는 것이고요.

한서진 말마따나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겠습니까.

‘마음읽기’를 잘못해서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갈 수는 있어도, ‘마음읽기’를 잘했는데도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많은 비극들의 근원은 ‘마음읽기’의 유무라고 생각합니다.

 

SKY 캐슬 드라마에서 ‘마음읽기’를 가장 잘하는 캐릭터가 누구냐고 물어보신다면, 단언컨대 김주영 선생님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쁜 의도’보다 더 나쁜 것이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일단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선택은 커다란 차이를 나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망폭력’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을 드렸던 것이고요.

부모들이 자신의 욕망을 먼저 앞세우기보다는 욕망을 한 발짝 물리고, 자식에 대한 ‘마음읽기’부터 노력을 기울인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 좋아질까 싶습니다.

부모로부터 전달되는 그 욕망의 무게가 어린아이들에게는 보통의 무게감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의 덩어리는 절대로 아이들이 옳은 방향으로 가게 두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처가 되어 어느 시점에서든 터지게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읽어주는 것, 그것이 선행되어야만 부모와 자식이 같이 발맞추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 모든 부모와 자식들이, 같이 발맞추어 가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님 없이는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모가 발맞추어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누구와 발을 맞추겠습니까? 이 연재를 통해 ‘욕망폭력’과 ‘마음읽기’라는 두 화두를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전 연재에서도 잠시 언급했었는데요, 이것은 제가 겪었던 일이기에 더 간절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더 이상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에 ‘욕망폭력’에 당하는 이 땅의 아이들이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방향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미약한 힘이나마 얹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렸을 때의 저를 구제하는 일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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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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