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올해 27살인 남자입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잘 먹고살고 있습니다.

홀로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람과의 만남은 거의 없고 집에서 홀로 일을 하고, 운동 나가는 그런 일상을 약 2년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휴식 시간도 넉넉하고 수입도 전혀 나쁘지 않습니다. 집에 어려움도 딱히 없고 저 자신도 현재의 삶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11월 말 갑자기.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며 엄청난 공포와 불안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습니다. 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의식하니 그냥 무슨 일을 하든 이 불안함과 공포, 그리고 우울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고 싶지 않습니다. 자살은 너무 무서워서 상상도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공포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니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가자고 다짐하고 스스로 좋은 동영상과 좋은 글귀들을 보면서 자기 위안을 하지만, 이 불안함과 공포심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처음에 비하면 좋아졌다고 생각하지만, 길을 갈 때, 일을 할 때, 운동할 때, 샤워를 할 때 갑자기 이 불안함과 공포심이 솟구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전처럼 하루하루 만족스러운 삶에 행복해하며 살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니 그것이 불가능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이 불안함과 공포심을 해결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쇼.
 

사진_픽사베이

 

답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이 글에서도 느껴집니다.

사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유사 이래 전 인류가 공유해오던 것입니다. 종교가 있는 이유도 결국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이겠지요.

죽음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불교에서는 윤회를 말하고, 기독교에서는 사후세계, 천국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보편적인 형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종교, 철학, 인문학, 혹은 개인의 신념 등을 통해 각자의 방법으로 극복하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질문자님은 11월 말 갑자기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으며, 그러한 공포가 하루 종일 지속되어 마음을 힘들게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럴 때는 앞에서 이야기한 죽음의 본질, 죽음 자체에 대한 논의보다는 무엇이 질문자님에게 그러한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신분석적으로 '불안'은 금지된 욕망이 표출되고 행동으로 옮겨질 위험에 처했을 때 무의식적 갈등이 보내는 신호라고 가정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질문자님은 해결되지 않은 갈등, 고민이 있어 이것이 죽음에 대한 불안이나 공포로 표출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릴 적에 겪었던 특정한 사건과 관련되어있을 수도 있고,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어 의식적으로 알아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행복하고 아무 걱정이 없다고 단순히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지금의 감정상태가 많이 우울하거나 크게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는 것처럼 적어주셨지만, 우울증과 같은 기분장애가 있는 것은 아닌지도 고려해보아야 합니다.

지금이 '살아온 인생 중 가장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성공했을 때 역설적으로 우울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은 이런 성공을 할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에 이 성공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느껴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것이지요.

질문자님은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우울과 공포,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적어주셨지만 사실은 다른 이유로 우울, 공포, 불안이 먼저 생겼고 죽음에 대한 생각은 부수적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휴식이나 운동, 생활환경의 변화 같은 것들을 시도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면서 불안감이 줄어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포와 불안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라면 더 심해지기 전에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무의식적 갈등이 원인이라면, 혹은 우울증이 있는 것이라면 혼자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명쾌한 답변은 아니지만, 저의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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