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20대 중반 남자입니다. 저는 홀로 부푼 가슴을 안고 떠난 해외 여행에서 첫날, 호텔 계단에서 현기증으로 쓰러지면서 낙상 과정에서 머리를 다쳤고, 현지 병원에서 외상성 뇌출혈 증상과 우측 측두골 골절이라는 증상을 진단받았습니다.

사고 당시에는 단발성 간질 발작을 보이긴 했으나 다행히 증상은 빠르게 호전되었고, 지금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지만 아직 가시지 않은 후유증과 머리를 다쳤다는 트라우마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전부터 전 성격이 굉장히 예민한 편이었고, 걱정과 불안함을 달고 사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겪고 이 같은 증상이 훨씬 심해졌습니다. 

다친 부위가 측두엽이라는 곳이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는 기억력이 저하될 수는 있으나 심각한 편은 아니라고 하셨음에도 현재의 제 상태에 저 스스로가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단정 짓고,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깎아내립니다. 

무엇보다 간질 발작 및 안면 마비가 이후에라도 드물게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에 불안감에 휩싸이고, 얼굴에 마비가 온 건가 볼을 꼬집어보고 지속적으로 감각을 확인하다가 얼굴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습니다. 후유증 중 가장 흔한 두통에도 혈관 어딘가가 터진 게 아닌가 하는 공포감에도 사로 잡혔습니다.

이런 불안감은 계속해서 인터넷으로 혼자 검색해보고 저와 관련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증상과 저를 연결시키고, 이런 습관은 빠져나오기 힘든 절망의 구렁텅이로 스스로를 밀어 넣습니다.

현재도 남아있는 어지럼증이 없어지지 않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떨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몸에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빈번한 이상증세에도 걱정하고, 큰 질병과 연관시키는 '건강염려증'마저 생긴 것 같습니다. 하루는 가슴이 답답해서 숨 쉬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전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데 정신적, 감정적 소모가 심한 직업군에 있는 일이니 만큼 거기에 대해서도 걱정을 미리하고, 혹여 이번처럼 또 쓰러지면 일어나게 될 일들을 상상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가 정신과 상담과 처방으로 나아지고 제가 하고 싶은 이 일을 다른 현직 소방관들처럼 수행할 수 있을까요?
 

사진_픽셀

 

답변) 

정신과 의식, 무의식의 존재에 대한 이론이 없던 시기에는 우울증이나 불안증 같은 질병 자체를 알 수 없었죠. 사람에게 관절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관절에 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현재는 일반 대중들도 의식과 무의식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정신에 병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정신과 몸이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은 알고는 있지만,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죠. 

정신이 몸에 미치는 영향은 뭘까요? 가장 흔한 예는, 사람이 긴장하면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오는 거죠. 인간의 기분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이 머릿속에도 있지만, 장에도 존재해요. 그래서 특정 감정에 대해 세로토닌의 반응이 발생하면, 장에 있는 세로토닌도 함께 반응해서 속이 불편하고 설사가 나오는 증상이 생기죠.

 

그러하면 반대로, 몸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뭘까요? 사고가 나서 하반신 마비가 됐다고 생각해 볼까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고 극복하겠지만, 극복하기까지는 많은 우울과 분노를 느끼게 되겠죠. 

정신과 몸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동시에 영향을 주고받아요. 지금까지의 설명이 혹시 이해가 되셨다면, 이제 질문자 분의 상황을 한 번 적용해 보죠. 

먼저, 사고로 머리 골절과 뇌출혈이 있었고, 뇌 자체의 충격으로 한 번의 간질 발작을 겪으셨네요. 이후 신체적으로는 후유증은 없는 것으로 추측되네요. 젊은 건강한 성인이 머리 외상으로 후유증이 남으려면 적어도 외상 때문에 머릿속에 출혈이 생기고, 그 피를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급히 뽑아낼 정도의 상황은 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혹은 뇌 자체에 염증 반응이 생기거나요.

문제는 신체적인 후유증은 없지만, 불안이 심해진 거죠. 불안, 어지러움, 가슴답답함, 숨쉬기 어려움 같은 정신적인 증상이 생긴 거예요.

 

말씀하신 것처럼, 원래 예민하고 잘 불안해하는 성격을 가진 분들이 있어요. 이런 분들은 자신이 걱정하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한 경우 남들보다 더 큰 불안이 생기고, 오랜 기간 불안이 유지되지요. 가끔은 눈 덩어리가 굴러가듯이 불안이 더 큰 불안을 만들어내기도 해요.

주치의 선생님이 기억력 저하나, 발작, 안면 마비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 이런 불안을 더 크게 만들었겠죠. 주치의 선생님 입장에서는 0.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사전에 경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드물지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원래 불안하신 분들은 '드물다'라는 정도가 0.1%가 아니라 10% 심하게는 50% 이상의 가능성이 있다고 받아들이시죠. 현재 질문자 분도 그런 상황인 듯해요. 0.1%의 가능성이라고 믿는다면, 숨을 쉬는 게 어려울 정도의 불안이 생길 리가 없으니까요. 

다행히 이렇게 특성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우울과 불안은 비교적 쉽게 호전될 수 있어요. 주 1회의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면, 2~3개월 정도면 호전이 되고, 호전이 된 이후에는 보통 병원에 다시 올 일은 없어요. 하지만 약만 먹어서는 증상 호전이 느리고, 완치가 어려워요. 그러니 본인이 믿을 수 있는, 상담이 가능한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방문하시기를 권할게요. 

 

다른 한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도 얘기는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은 자신이 가장 걱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써요. 생각만 해도 두려운, 그런 걱정거리를 머릿속에서 치우기 위해 하는 흔한 방법 중에 하나는, '쓸데없는, 다른 것을 걱정하는 것'이에요. 

직장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직장을 잃는다는 것을 걱정하는 것을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다면, 이 사람은 오늘 신은 신발이 이상해서 사람들이 눈치를 줄 것 같다든지, 아니면 오늘 머리가 지저분해 보인다든지 하는 쓸데없는 것을 걱정하기 시작하죠. 그 걱정을 하는 동안은, 다른 중요한 문제는 잊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것으로 잠시간의 안정을 찾을 수 있어요. 이렇게 한 번 안정을 경험하게 되면, 이 방법을 지속해서 사용해요.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면 ‘저 친구는 저게 중요한 문제가 아닌데 왜 다른 걱정만 하지?’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바로 이런 경우죠. 

질문자 분도 혹시, 본인이 두려워하는 다른 걱정을 피하기 위해서, 이미 안정화된 신체 증상을 계속 걱정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고민해 보셔야 할 필요는 있을 듯해요. 지금 겪고 있는 정신적 증상들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두려워하는 고민을 없애야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상황에서 쉽게 스트레스를 받고, 또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잘 해소할 수 있는지를 미리 파악하고 가는 것이 도움이 돼요. 이런 부분도 정신과 상담을 통해 미리 파악할 수 있으니, 결정하시는데 참고하셨으면 좋겠어요.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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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도움됩니다. 조언 들으며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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