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명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늘 뭐 먹을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반가운 얼굴로 묻습니다.
미간을 찌푸린 친구는 “아무거나….”
맘 좋은 친구가 제안합니다. “국수 어때?”

“나 면 싫어해.”
“그럼 돈가스?”
“아침부터 웬 튀긴 음식?”
“그럼 백반?”
“그건 너무 뻔하잖아?”
“그래서 뭐 먹을 건데?”
“아무거나!”

점심 한 끼 선택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사진_픽사베이


선택 장애를 가진 사람과 같이 있으면 힘들어집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결정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맘 편하게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길 어려워합니다.

정신 의학에서 정신 질환을 판정하는 척도로 사용하는 DSM에서는 선택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질환을 따로 분류하고 있지 않습니다. 선택의 어려움이 특정의 질병을 가리킨다고 보지 않고 서로 다른 원인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책임을 두려워하는 경우입니다. 선택의 결과가 잘못되면 어마어마한 처벌이 올 거라고 예측하면 선택을 할 때 극도로 주의하게 됩니다. 타고나길 겁이 많고 예민한 성격인 사람이거나 과도하게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갖게 됩니다.

두 번째,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유아기적 사고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일이 자신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들이지요. 누구나 어릴 때는 이런 식의 사고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자신이 그렇게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지요. 이런 사고의 성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이 너무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선택하기를 주저하는 선택 장애에 빠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어 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택은 선택되지 않은 것들을 포기하는 겁니다. 포기하길 어려워하고 다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역시 선택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경험하기보다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즉 희망과 꿈을 더 좋아하는 경우입니다. 현실의 고통을 피하고 희망의 달콤함을 취한 거지요. 이들은 항상 가능성을 꿈꾸면서 현실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왜 이렇게 선택의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자신의 주관을 드러내고 선택을 하며 그 책임을 경험하는 훈련은 평생에 걸쳐 일어납니다. 하지만 특징적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시기가 있으니 걸음마기와 청소년기입니다. 걸음마기의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애를 먹는 시기이지요. 청소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정체성을 정립하고 주관을 세우는 시기이고 부모와 갈등이 깊어지는 시기이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방법, 취향을 알아가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요?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세상과 자신을 경험하기에는 부모의 간섭과 통제가 너무 심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선택을 하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성장해 나가야 하는 시기에 부모가 선택해준 답지대로 공부하고 전공도 부모가 정해준 대로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의 기준과 가치를 알아야 하고 스스로의 취향에 따른 선택을 해 가면서 선택과 책임을 배워야 하는데 그럴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선택 장애는 단순히 점심 메뉴를 정하지 못하는 문제만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선택해 준 대로 사는 삶은 자신의 삶이 아닙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선택하고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교훈을 얻는다면 우리는 인생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비록 돌아가고 힘들지라도 자신의 삶을 사는 자유인의 삶이 안전하고 안락한 대리자의 삶보다 가치 있고 행복하다는 걸 선택 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면서 배웁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뜹니다. 오늘 국수를 선택해서 후회했더라도 내일 다시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에 나만의 답을 다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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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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