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자존감이 어릴 때부터 참 부족했고, 지금까지도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자존감이 좀 괜찮아지다가 다시 밑바닥을 되찾아가기 일쑤인 20대 여자입니다.

전 인간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극도로 불안해집니다. 친구와 사소하게 다투기라도 하면, 누군가와 언쟁을 하거나 누군가 언짢은 표정으로 헤어지면, 그 사람과 다시 약속이 생겨 만나게 되어 우리 관계는 아무 문제없다는 무언의 확답을 받을 때까지 미칠 듯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한 사람과 어긋나면,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잠도 잘 못 잡니다.

불안한 상태가 되면 전 주변의 모두에게 연락해 술을 무리해서 마시고 안심하곤 했어요. 자주. 또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쳐다보질 못합니다. 무슨 연락이 왔을지 무서워서.

전 항상 사람을 사귈 때도 오래된 친구를 보면서도 ‘이 사람은 언제든 나를 떠나갈 것이다.’라는 걸 염두에 두곤 합니다. 언제든지 버려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 세상 아무도 믿지 않고 믿을 사람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전 사랑받지 못할까 봐, 누군가 나에게 주는 애정과 관심이 식을까 봐, 정말 믿을 사람이 없는 걸까 봐, 그래서 제가 상처받게 될까 봐, 그게 너무 무섭고 두려워요.

불안인지 우울인지, 걷잡을 수 없는 정신적인 괴로움이 너무 무겁습니다. 중학생 때, 너무 친했고 소중했던 친구와 한순간에 관계가 틀어지면서 그 친구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상처와 기억이 아직까지도 문제인 건지. 웃으며 만나는 사람들을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하며 스스로를 보호하기 급급한, 그러면서 보호는커녕 불안의 늪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제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이 힘겹습니다.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하든 무던하고 의연하게, 평온하게 지내고 싶은데. 저는 늘 조급하고 날 버리지 말라고 날 사랑해 달라고 애걸복걸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습니다. 평온해지고 싶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본인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듯합니다. 특히 부정적인 면을 더 잘 알고 계시는 듯해요.  정리를 하면, '다른 사람은 언제든 나를 떠나갈 것이다.'라고 믿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불안해지시는 거죠. 가만히 있어도 떠날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데, 관계에 문제가 생겼으니 진짜 떠날 가능성이 더 높아진 상태니까요.

원하시는 평온을 찾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고민해야 할 듯합니다.  첫째는, 주변 사람이 떠나가면 본인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신가요? 우리가 어린아이일 때는, 주변 사람이 없으면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돈을 벌기 어렵고, 법을 모르고, 보호받을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질문자 분은 현재 성인입니다. 주변 사람이 없더라도 생존하실 수 있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분들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이 떠나가고, 혼자가 되는 상황을 어떤 의미로 믿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평가해 봐야겠죠.

 

질문자 분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시곤 합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요.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혹은 '다른 사람이 떠난다는 것 자체가, 내가 별로인 사람이라는 뜻 아닌가요.' 이것이 바로 두 번째 고민입니다. 그리고 이 고민이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이고, 질문자 분도 그래서 글 첫머리에 적어놓으신 듯합니다. 이런 고민들은 자존감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죠.

자존감이 부족하다는 말은 굉장히 많은 것을 요약해 놓은 말입니다. 그중 질문자 분에게 해당하는 몇 가지를 말하자면, 자신이 가진 단점을 극대화해서 보고 장점은 볼 수 없는 것과 자신이 부족해서 어떤 재앙이 닥친다면 대처할 능력이 없다는 믿음이 있을 수 있겠네요.

이런 믿음들이 타당한 믿음이라면 상관없겠죠. 하지만 질문자 분이 본인에 대해서, 또는 타인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믿음은 잘못된 비현실적인 믿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 생활이 고통스러워지는 거죠. 내가 실외에서 숨을 쉴 수 없다고 믿으면, 얼마나 삶이 고통스러워질까요. 실내에만 있으려 할 거고, 밖에 나갈 때는 최대한 가까운 곳만 가거나, 혹시 모르니 공기통을 챙겨 가겠죠. 단 한 개의 잘못된 믿음일 뿐인데, 삶은 완전히 망가져 버립니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믿음은 현실을 왜곡시키고, 고통스럽게 만들죠.

본인이나 타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비현실적이고 왜곡된 믿음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고, 이미 잘 연구되어 있습니다. '스키마'라고 부르죠. 지금까지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지금까지 언급한 '나에 대한 잘못된 믿음' 즉, '스키마'를 수정해야만 합니다.

 

아까 실외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는 믿음을 다시 예로 들게요.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삶을 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하겠죠. 실내에서 수영을 해서 심폐 지구력을 키운다든지, 실내에서 실내로 연결되는 길을 많이 찾아 놓는다든지 이런 거요. 삶이 조금은 편해지기는 하겠죠. 하지만, 근본적인 믿음을 바꾸지 않는 이상, 왜곡된 삶의 모양처럼 자신을 왜곡해서 적응하는 셈이죠. 결국 작은 충격에도 망가지게 되고요.

'다른 사람이 나를 떠날 것이다.'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현재 정신적인 고통이 크고, 실제 생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가까운 정신과 병원을 방문하셔서 상담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가기 편한 병원을 인터넷에서 몇 군데 검색하신 뒤에, '스키마 치료'가 가능한 전문의를 찾으시는 것이 본인에게 가장 잘 맞을 듯합니다. 스키마가 현재 질문자 분에게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에 초점을 맞춰 치료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네요.

본인과 잘 맞는 치료자를 만나 잘못된 믿음을 바꾸시고, 원하시던 평온을 찾으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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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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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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