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일단 저는 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 30대 초반 여자입니다. 제가 가진 정말 많은 문제들 중 오늘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두 가지 정도의 특정 패턴이 반복적으로 문제가 되어 제 자신을 힘들게 만듭니다.

먼저 저는 상대방의 표정에 과도하게 신경을 씁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러는 것은 아니고, 제가 유난히 예민하게 관찰하고 반응하는 특정 대상들이 있습니다. 요즘은 그 대상이 엄마입니다. 저는 엄마의 표정과 반응에 과하게 집착하고 신경 쓰고 반응합니다. 엄마가 우울하거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으면 저도 덩달아 침울해지고 한없이 우울해집니다. 엄마가 표정이 안 좋은 날엔 많이 불안해집니다.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을 다 닫고 핸드폰을 꺼버립니다. 밖에서 작은 소리만 들려서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그러고 나서는 혼자의 세계에 갇혀 하루 종일 생각합니다. 왜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을까...부터 시작하여, 우리 집은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왜 엄마는 밝고 따뜻한 엄마가 아닐까.. 왜 나는 항상 불행해야만 하나.. 왜 난 길거리에 밝게 웃고 다니는 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중 한 명이 될 수 없을까.. 왜 엄마는 내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딸을 위해 변해줄 수 없을까.. 무한 반복되는 이 지긋한 우울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결국 마지막은 '죽고 싶다.'입니다..

엄마가 매우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격하며 우울한 성향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항상 우울한 사람인 건 아닙니다. 평범한 날이 더 많죠.  누구나 우울한 날은 있으니 '그런가 보다..' 하면 되는데 저는 저 혼자 저 멀리까지 가버리곤 하지요. 반복적으로 그러다 보면 나를 자꾸 혼자 갇히게 만드는 엄마에게 원망과 분노감이 생깁니다. 제가 계속 날카롭게 신경 쓰고 예민해지니 엄마가 조금이라도 표정이 우울한 날엔 엄마에게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곤 합니다. 

 

둘째, 제가 원하는 걸 왜곡된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저는 부탁을 잘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뭐가 먹고 싶은데 같이 먹으러 갈래?" 식의 권유를 거의 한 적이 없습니다. 가족들에게 유독 심하고요. 제가 제안을 했을 때 엄마가 원하지 않는 표정을 지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죠.

또 하나의 사례는 오늘 있었던 일입니다. 가족들끼리 축구 경기를 보러 가기로 하고 표를 예매했습니다. 어렵게 표를 구했고 모든 계획을 세웠고 그에 맞춰 공부 계획도 변경하고 새 옷도 샀습니다. 전 많이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어떤 계획을 세워도 엄마의 감정적 불안함으로 자주 계획이 틀어지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역시나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길래 엄마에게 "난 꼭 안 가도 돼. 취소할까?"라고 물어봤더니 '괜찮다. 그냥 예매했으니 가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표정은 너무 별로였습니다. 예매했으니 그냥 가자고 말하지만 이미 너무나 가기 싫은 표정입니다. 그런 엄마를 데리고 축구경기를 보러 가봤자 계속 인상만 쓰고 있을 것 같아서 몇 번이고 되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그냥 취소하자..'라고 합니다. 전 너무 화가 났죠. 이미 며칠 전에 제가 10일 동안이나 공들여서 계획하고 있던 여행이 파투가 났었거든요. 지난해 가족 여행도 여행 직전까지 번복의 연속이었고요.
 

사진_픽셀


이런 상황에서 제 표현방식에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엄마가 감정적이긴 해도 어떤 상황에 대해 논리적으로 얘기를 했을 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만약 제가 "엄마, 나는 계획을 세울 때 정말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온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고려해. 그리고 정말 정성을 들여서 고민 많이 하고 계획 세우거든. 그래서 엄마가 매번 이런 식으로 계획을 쉽게 엎는 거 나 좀 힘들어. 그리고 엄마랑 나랑 계속 싸우느라 엄마도 지치고 나도 지쳤잖아. 같이 여행 겸 축구 보러 가서 많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도 받고 즐기다 왔으면 좋겠어."라고 했으면, 엄마도 분명히 기분 좋게 갔을 거예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전 매번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괜찮다고 간다고 말했는데도 엄마에게 계속해서 다시 물어봅니다. "엄마가 표정이 안 좋잖아. 안 가고 싶은 거 같은데? 안 가도 돼. 진짜야." 이런 식으로 계속 말해서 엄마는 결국 '안 가고 싶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럼 저는 표를 취소해버리고 엄마에게 온갖 화를 다 내버립니다. 지난 몇 주간 내가 얼마나 엄마 때문에 고통스러웠는지 엄마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엄마 때문에 나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 쏘아붙이듯 말을 해버립니다. 그리곤 아주 오랫동안 엄마랑 선을 그어버립니다. 지난해에도 이런 식으로 거의 6개월 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나는 이런 걸 원해. 그래서 함께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식의 다정한 설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 갈 거야? 안 가고 싶은 거 같은데? 맞지?? 그럼 취소해??' 이런 식으로 물어봐놓고 안 간다고 하면 절망에 혼자 빠지는 것이지요. 엄마에게뿐만이 아니라 매우 한정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가장 가까운 남자 친구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늘 이런 식으로 제 의사표현을 하곤 합니다.

제 자신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해서 많은 답을 얻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왜 이러는 건지.. 뭐가 뒤틀려서 이렇게 왜곡된 방식으로 상대를 괴롭히고 스스로 상처를 받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요. 저런 태도로 제 스스로가 너무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주변 지인들을 보면 비슷한 상황에서 상대를 다정하게 설득하거나 상대가 썩 내켜하지 않아도 가겠다고 하면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것이 일반적이더라고요. 근데 저는 가겠다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즐겁지 않은 표정에 포커스를 두고 우울해합니다.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을 수 없는 데도요.

이런 점 때문에 저는 매일매일 시들어갑니다. 사람들이 다 싫고 그냥 혼자 있고 싶어 집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제가 뭘 모르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저를 좀 도와주세요.. 엄마랑 싸운 직후라 글이 너무 두서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어머니와 싸운 직후 긴 글을 남겨주셨는데요. 그래서인지 더더욱 글쓴이 분의 답답한 마음이 더 잘 다가왔던 거 같습니다. 글쓴이 분도 치열하게 ‘반복되는 나의 패턴’에 대해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짧은 글에서도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글쓴이 분이 변화할 수 있는 강력한 자원과 에너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글쓴이 분의 그러한 노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답변을 달고자 합니다. 

글쓴이 분의 글을 읽으면서 하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바라는 아이 같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약간의 사랑 표현(축구 경기가 썩 내키지는 않지만 딸을 위해서 가주겠다고 하는 마음)을 하여도 글쓴이 분은 ‘더, 더, 더’를 바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 어머니가 좀 더 마음을 내셔서 밝은 표정으로 응대를 하시더라도 아마 글쓴이 분은 또 의심을 하면서 반응을 하셨을 가능성이 클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부정하고 응석을 부리더라도 내 마음을 받아줘.’라고 하는 아이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왜 엄마는 내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딸을 위해 변해줄 수 없을까.”라고 쓰셨는데요. 이게 글쓴이 분 기저에 늘 가지고 있는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안 갈 거야? 안 가고 싶은 거 같은데? 맞지?? 그럼 취소해??' 이런 식으로 물어봐놓고 안 간다고 하면 절망에 혼자 빠지는 것이지요.”라고 써주셨는데요. ‘안 갈 거야?’라고 반복적으로 묻는 것이 ‘내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나를 위해서 변해줘.’라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이가 응석을 부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도 나를 사랑해주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 욕망’이 응석에는 깔려 있습니다.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아이의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게 되면, 결국 그 마음은 공격성으로 변질이 된다는 것입니다. 늘 양극단은 맞닿아 있어서, ‘무한한 사랑’을 바라게 되면, 늘 ‘실패’가 뒤따라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실패의 원인을 어머니에게서 찾게 되고(엄마는 나를 위해서 왜 못 해 주는 거야?) 결국 공격성이 됩니다.

‘나를 자꾸 혼자 갇히게 만드는 엄마에게 원망과 분노감이 생깁니다.’라고 써주셨는데요. 사실 나를 혼자 갇히게 만든 것은 엄마가 아니라 나의 과도한 욕망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루어주지 못한다면, 글쓴이 분은 어머니에게 늘 ‘무한한 사랑’을 바라게 되고 이는 곧 좌절로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어머니에 대한 공격성으로 변질이 됩니다.

글쓴이 분께서 ‘엄마가 감정적이긴 해도 어떤 상황에 대해 논리적으로 얘기를 했을 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라고 써주셨는데요. 그런데 “괜찮다고 간다고 말했는데도 엄마에게 계속해서 다시 물어봅니다. 엄마가 표정이 안 좋잖아. 안 가고 싶은 거 같은데? 안 가도 돼. 진짜야. 이런 식으로 계속 말해서 엄마는 결국 '안 가고 싶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럼 저는 표를 취소해버리고 엄마에게 온갖 화를 다 내버립니다.”라는 패턴이 반복된다고 하셨습니다.

패턴이 조금 보이시나요? 결국은 어머니에게 이상적인 바람(무한한 사랑)에 대한 결핍으로 어머니에 대한 공격성 자체가 목적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공격성(아이로 표현하자면 응석)을 표현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동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부정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물어보는 행위를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어머니를 공격할 명분이 생기니까요. 무의식과 관련된 문제라 쉽게 다가와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글로 무의식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psychotherapy를 전문으로 하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셔서 상담을 받아보신다면 자신을 좀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좀 더 행복해지시기를 늘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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