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남들에겐 별일 아닐 수 있지만, 저에게 큰 고민이라 질문을 드립니다. 저는 새가 너무 무서워요. 종류를 가릴 것 없이 전부 다요. 친구들이 농담으로 ‘그럼 넌 치킨도 먹지 마라’하며 웃는데, 실제로 닭의 모습을 떠올리면 치킨을 봐도 소름이 돋아요.

언제부턴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때, 비가 쏟아지던 날 우산도 없이 뛰어가다 죽어있는 비둘기 시체를 밟고 미끄러졌거든요. 그 피, 깃털, 이상한 냄새 등이 뒤섞여 그날 엄청나게 울었던 것 같아요. 아마 그때부터였나 봐요. 비둘기, 참새, 새장에 있는 공작새 할 것 없이 보기만 해도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고, 그 검은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으면 속에서 공포감이 확 밀려오고 두려워져요. 중, 고등학교 때는 등교하다 교문 앞에 비둘기가 있으면 친구들 뒤에 숨어서 눈을 가리고 지나가기도 했고, 혼자서는 지나가지 못하고 그 앞에 서 있어야 했을 정도였어요.

산이나 나무가 많은 곳에도 가기가 불편해요. 새소리만 들려도 식은땀이 나거든요. 항상 그런 건 아닌데 어떨 때는 TV나 책에서 새들의 사진만 봐도 그냥 채널을 돌리거나 책을 덮어버리기도 했고요. 

주변 사람들은 그럼 새를 보지 않고 피해 다니면 되지 않냐고 하던데, 그게 어디 쉽나요. 여행을 가려 해도 비둘기가 먹이를 먹고 있을 것만 같은 광장이나 나무가 많은 환경을 피하게 되고요. 그것 때문에 남자 친구와 싸우기도 했어요.  

조류 공포증이라는 병이 실제로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걸까요?  저에게는 너무 절박한 문제입니다. 도와주세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공포증(phobia)에 대해 질문해 주셨네요. 공포증의 주제는 워낙 다양하고, 또 자신이 두려워하는 대상을 제외한 다른 영역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어보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이지요. 아마 질문자님께서도 남모를 고민을 안고 살아가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말씀드렸듯이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공포증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조류 공포증(Ornithophobia) 또한 공포증의 한 종류이지요. 조류 공포증의 스펙트럼은 다양해서 질문자님처럼 사진이나 연상만으로도 공포감이 생기기도 하고, 실제 대상을 직면할 때만 과도한 공포감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일상생활, 대인관계, 사회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면 치료를 받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질문자님처럼 삶의 일부 영역을 제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고요.

 

공포증의 해결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약물적 치료 방법입니다. 일상생활 중에 접하는 모든 조류, 심지어 화면으로 접하는 조류에도 심한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라면 벤조디아제핀 류의 항불안제 사용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질문자님께서는 조류 때문에 직장 생활을 비롯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부 다른 영역에서의 불안과 위축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럴 경우에 적극적인 평가와 더불어 약물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비약물적 치료인데요, 공포증에서 가장 흔히 사용하는 치료법은 체계적 탈감작(systematic desensitization)을 포함하는 행동 치료(behavioral therapy)적 접근입니다. 쉽게 설명드리자면, 서서히 단계를 높여가며 불안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겁니다. 먼저 자신이 경험한 조류의 형태에 대한 위계를 정하고(사진, ‘조류’라 적힌 글씨 등 형태의 분류 / 혹은 조류의 크기나 색에 따른 분류), 가장 덜 불안한 것부터 마주하여 회피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도록 합니다. 그렇게 대상에 따른 불안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가며, 견디는 시간을 10분 - 20분 - 30분 순으로 늘려가며 그 공포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합니다. 

예를 들어, 실제 치료에서는 '조류'라는 글자에서 시작해서, 조류의 사진, 조류의 영상, 그리고 실제 조류를 마주하는 것까지 조금씩 강도를 높여 나갑니다. 공포를 피하지 않고 견디고 있으면 점점 공포가 심해져 공황상태에 다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인간의 몸이 불안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불안이란 놈이 나타났을 때, 24시간, 365일 나를 따라다니지는 않아요. 파도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할 뿐이지요. 불안을 일부러 견디는 과정에서 두려움과 신체 반응이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이내 가라앉는 시기가 분명히 옵니다. 바로 그 첫 경험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체계적 탈감작화(systematic desensitization) 기법의 원리입니다. 원리가 단순하기에 불안감이 그리 크지 않은 대상에는 혼자 시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방법을 혼자 해내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 약물치료가 함께 필요할 수도 있고요. 

 

또 하나, 조류에 대해 자신이 가진 왜곡된 해석을 찾아보고, 이를 교정하는 인지치료적 접근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닌지, 조류를 마주하게 되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 왜곡하여 생각하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쪽이든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충분한 평가와 진단을 받은 후 치료를 시작하시기를 권유드립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멀리서 질문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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