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올해 대학을 졸업한 20대 여자입니다. 저는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말이 없고 부끄러움도 많이 타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힘들고, 남의 시선을 과하게 많이 의식했어요. 너무 말이 없어서 ‘쟤는 왜 저렇게 말이 없냐, 왜 말을 안 해?’, ‘안녕하세요 라고 말해봐’, ‘너무 조용해서 문제야.’ 이런 말을 어릴 때부터 친구들, 어른들,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수백 번도 더 들었던 거 같아요. 원래 조용한 성격에 이런 말들을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서인지 가볍게 대화를 하거나, 일상생활 속에서도 '말'이라는 것이 힘들고 굉장히 예민해졌다고 할까요?

대화하는 타인의 표정이나 반응 등을 너무 의식하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표정이 조금만 안 좋아지면 내가 뭘 잘못 말했나? 말을 잘하고 싶은데 내 생각대로 말이 안 나오니까 ‘나는 말을 못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자신감도 떨어지고, 사람과의 관계가 안 좋아지거나, 상황이 잘못되면 그 원인을 내가 말을 잘 못 해서 이렇게 된 걸까, 이렇게 말해줬어야 했는데, 하고 항상 뒤에서 후회하고 나를 탓하면서 무너뜨렸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까지는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친구들하고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좋은 친구를 사귀고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려 다녔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친한 친구들 외에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웠어요.)

고등학교 때는 친한 친구들과 떨어져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친구들과 재미있게 장난도 치고, 말도 많이 하고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 잘하는 친구, 밝은 친구들이 항상 부러웠어요. 그래서 저도 웃으면서 다가가고 나름 말도 많이 걸었는데 그게 원래 제 성격이 아닌데 유지가 가능하지 않았어요. 원래 모습대로 말 못 하고, 말을 걸면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그냥 웃기만 하는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게 굳어져서 학창 시절을 보내는데 교우관계나 스스로에게도 힘들었고, 대학생 때는 더더욱 많이 힘들었고요.

 

그런데 제 성격이 집에서는 많이 다르다는 겁니다. 가족들 앞에서는 말도 잘하고, 짜증도 부리고, 농담도 하고. 이런 제 모습이 학창 시절 때는 이중인격인 거 같아서 그게 또 고민이었어요. 왜 가족들 앞에서는 편안하게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밖에만 나가면 작아지고 말이 안 나올까, 자책도 많이 했어요.

또 단체로 모이는 자리에서 한 마디도 못 하고 나올 때가 많아요. 그냥 리액션하고 웃고, 질문하면 답하는 정도. 그 자리에 있기가 너무 괴롭습니다. 근데 또 한 명과 같이 있으면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제는 저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제 모습을 개선해 나가는 게 힘듭니다. 저 사람은 원래 내가 말이 없고 소심하다는 것을 아는데 내가 말을 막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고민까지 하는 제가 참 한심해 보여요.

지금도 너무 조용하다. 말 좀 해라. 목소리 좀 크게 내라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한순간에 우울해지고, 그 말이 항상 머릿속에 남아서 괴롭힙니다. 이제 사회생활을 해야 되는 게 너무 두려워요. 알바하기도 두렵고, 회사에 가서 직원들과의 소통은 잘할 수 있을까, 회의는 잘할 수 있을까… 머리가 너무 복잡해요. 나름 노력한다고, 사람들을 만나면 한마디라도 더 대화를 하고 말을 건네보려고 하는데 참 쉽지가 않네요.

마법처럼 말이 술술 나오진 않겠지만, 지금까지 받은 스트레스 계속 받으면서 직장 생활하고 싶지 않고. 천천히 개선해 나가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절박함이 묻어나는 고민을 나누어 주셨군요. 사람들 사이에서의 불안을 겪고 계시는 것 같아요.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뿌리가 깊은 불편함으로 보이네요. 질문자님께서 겪고 계시는 현상을 정신의학에서는 사회불안(social anxiety)이라고 지칭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사회불안의 핵심에는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어요. 그 두려움은 타고난 유전적 기질과 성장 과정에서 사회적 상황에서 위축됐었던 수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생겨나게 됩니다.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위축되어 피하기만 했던 이라면, 사회불안이 습관이 된 상태에 가까워요. 이를 극복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변하는 방법은 존재하며, 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회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단계는 사회불안을 마주할 때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겁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회적 상황에 대해 자신이 떠올리는 해석을 찾아보는 거죠. 자신이 느끼기엔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기만 해도 불편해져서, 이 반응이 거의 자동 반사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실은 사회적 상황을 자신이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반응이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의 시선에 왜곡되고 부정적인 해석을 내린다면, 사회적 상황은 더욱 불편하고 두려워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어요. 아래 그림을 살펴볼까요?
 

그림_신재현


우리는 상황에 따라 반응이 나타난다 생각하지만, 사실 상황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집니다. 상황에 대한 해석을 ‘자동적 사고’라고 부릅니다. 글에도 드러나있듯 사회불안에서 흔히 하는 왜곡된 해석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거야’ 같은 독심술(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식의) 오류나, ‘나는 절대 이 상황에서 잘 대처하지 못할 거야’라는 식의 과소평가 오류를 포함하지요. 또, ‘이상하게 보이지 말아야지’, ‘사람들에게 말 잘하는 사람으로 비쳐야지’와 같은 왜곡된 자기 기준도 상황을 굉장히 불편하게 만듭니다. 충족될 수 없는 기준이기 때문이지요. 자신에 대한 왜곡도 많아요. 평범하게 했던 대화도 실수한 것 같고, 상대방이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생각이 불편한 반응을 만들어내거든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황에 대해 내리는 왜곡된 평가는 불편함을 더 가중시킵니다. 원효대사가 자신이 마신 물이 해골에 담긴 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와, 몰랐을 때의 반응이 천차만별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니 자신도 모르게 상황을 상황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상황을 바라볼 때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오래된 습관을 깨기 위해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으로 좀 더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불안한 상황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노트에 적는 연습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좀 더 익숙해지면 상황을 마주했을 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고 전두엽에서 비롯된 이성의 힘이 작동하여 불안감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불안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단계입니다. 사실 사회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중요한 핵심은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과 부딪혀 견디는 힘을 기르는 거지요. 아마 질문자님께서는 불편한 상황을 회피해왔고, 시간이 흐르며 불안을 마주할 용기가 사라졌을 것 같아요.

거창하고 대단한 것부터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쉽고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노트를 펼치고, 자신이 불안해하는 상황을 10가지 정도 적어보세요. 그중 가장 덜 불편한 상황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지요. 상황에서 ‘잘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잘 해야 해’라는 것도 왜곡된 자동적 사고입니다. 다만,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행동목표를 설정하고, 그저 그 행동에 집중합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불편했다면, 행동 목표는 ‘사람들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거기 머물러 있는 것’이 되겠지요. 결코 ‘대화를 잘 이끌어 나가고,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 것’ 같은 주관적인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상황을 마주하며 불안이 올라온다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성의 고삐를 죄면서 불안을 견디는 힘을 조금씩 키울 수 있습니다. 첫 경험이 성공하고 나면, 그다음 단계로의 진행은 더욱 힘을 얻을 수 있겠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자동적 사고를 인식하고, 왜곡된 생각을 알아차리는 연습 또한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길게 설명드렸지만 변화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오랫동안 몸과 마음에 쌓인 습관이 쉽게 바뀌기도 어렵지요. 위의 과정은 사회불안증(social anxiety disorder)을 치료하는 데 가장 널리 사용하는 인지행동치료의 일환이고,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한다면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와 같은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도 좋겠습니다. 든든한 동반자가 있다면 멀고 험한 길을 가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멀리서 질문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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